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
이희근 지음 / 다우출판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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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이 책을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다.  한번쯤은 가져 보았음직한 의문점들을 다루어주고 있는 이 책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청소년이 읽기엔 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책 띠를 보니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이라고 써 있기에 하는 말이다.  역사의 뒤편 혹은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한 사실을 안다는 것에 대해서는 옳다. 하지만 '한국사'라는 테두리가 확실하게 정해지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사실이 이렇고 저렇단다 이야기 해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의문은 그 다음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알고 난 뒤에 그것에 따르는 진정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소리다.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물음표를 찍었음직한 주제가 많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김수로왕의 부인이었던 허황후가 정말 인도에서 왔을까? 라거나 숙종대의 도적이었던 장길산이 의적으로 거듭나게 되는 이유처럼.. 나 역시 이런저런 역사서를 읽으면서 그 당시를 이해하지 못해 상황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역사를 많이 안다는 말은 아니다. 짧은 소견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점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책은 고대사를 시작으로 고려와 조선을 지나 근현대사까지 다루고 있다. 고대사는 사실 우리에게 그저 한편의 신화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더 크다. 알에서 태어났다 이야기쯤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주몽이 부여를 탈출하면서 자연을 부렸다는 이야기도 그다지 신비롭지 않다. 언제였던가 고대의 건국신화를 찾던 중 두 편으로 나와있던 백제의 신화를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온조와 비류가 하나가 아닌 둘로 건국신화를 갖고 있었는데 읽어보니 내용은 비슷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둘로 나뉘어져야 했을까? 그런 기록은 왜 생겨난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는 역사의 진실 또한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혹은 시대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이상 그것은 추론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역시 추론일 뿐이다. 그런 것들을 좀 더 사실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다지 많지 않았던 백제사를 돌이켜보면서 백제가 과연 중국의 요서지방에 또하나의 백제를 건설했을까 하는 것을 밝혀내고자 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도 홀대한다는 점이다. 얼마전부터 국립대학이나 모신문지상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해야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의 역사도 모르면서 어찌 세계사를 논할까 싶은 나의 마음도 거기에 백퍼센트 공감하지만 과연 얼마나 힘을 얻을 수 있을런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주변국들의 역사서가 필수라는 건 어쩌면 아이러니가 아닐까? 우리에게는 없는, 아니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그들은 귀하게 보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서글프게 다가온다. 어찌보면 폐쇄적이기까지 했던 우리의 역사, 그런 까닭에 더 홀대받아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홀대받는 역사의 되새김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거울속의 자신을 보듯 역사를 보아야하기에 지금의 지배층들이 역사를 배척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정도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런 책은 꼭 한번 읽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 역사와 좀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물론 역사는 쓰는 자의 이념에 따라 달라졌다는 게 사실이고 보면 주관적인 견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주장에 나름대로 또하나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을 듯 하다. 평소 고려의 무신들이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왕이 되지 않았을까 궁금했었다. 고려의 불상을 보면서 미륵을 기이한 모습으로 만들었던 백성들의 속마음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런 궁금증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고려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는 걸 알고 복잡한 현실속에서 일어났던 한 건의 소송(시집간 딸도 상속을 받아야 한다는)이 떠올라 씁쓸했다. 현실속 모든 문제의 해답은 역사속에 있다는 유명인사의 말이 다시한번 떠올랐다. 정말 역사속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을 통해 그가 결코 신분해방을 외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는 그의 속셈을 알게 된다. 그런 저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를 외치는 나의 모습이 그 순간만큼은 어색하지 않다.

세종대왕은 정말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을까?  그토록이나 많은 장경들은 어떻게 해인사로 옮겨졌을까?  농민들이 동학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정말 억불정책을 썼을까?... 재미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승은 원래 경계선의 의미였다. 원래의 이름은 장생표로 장승은 잘못된 표기다. 사찰이 성행할 때 여기까지 혹은 여기서부터는 사찰권역입니다-라는 표시로 세워둔 것이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하나의 경계표로 사용되었고, 또한 이정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지금의 표지판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은 왜 무속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간단했다. 우리의 풍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잣대로 선을 그어버린 초기 기독교도들에 의한 잘못된 판단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아전인수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속깊이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끝도 없을 것 같은 사건과 연대, 그 안에서 살았던 수많은 이름만 외우는 것은 죽은 역사다.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일제가 왜 우리 조선의 궁궐 파괴에 그토록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제가 우리의 궁궐을 파괴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를 바로 알아야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시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금도 지나쳐가면 역사가 된다. 후대에 어떻게 기록되어질런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시간들. 나중에 우리가 제대로 된 역사였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었던 지나간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한번 말을 보태고 싶다. 한국사는 필수과목이 되어야만 한다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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