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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평점 :
팔만대장경... 유네스코가 정한 한국의 문화유산중 하나이다.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경판도 그렇지만 사실은 판전의 오묘함이 더 큰 신비로움이다. 원활한 통풍구조도 그렇고 실내의 적정온도를 유지하도록 만든 것과 진열장치등을 살펴보면 놀라움 그 자체이다. 대장경판이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인 것이다. 그것말고도 우리에게는 유네스코가 정한 문화유산이 꽤나 된다. 예전에 비해 우리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변화가 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지금, 이런 책이 나와 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의천이 만들었다. 몽고의 침략으로 초조대장경은 불타 없어져버리고 고종때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재조대장경이다. 적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자는 뜻이었다고는 해도 그것으로 인해 하나의 마음으로 합쳐질 수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 대장경의 이야기가 이 책속에 펼쳐져 있다.
대장경에 얽힌 이야기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나 동기보다는 그 뒤에 숨은 뜻을 말하고 싶어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떠올렸다. 바라보는 각도가 어느정도는 비슷하게 다가왔던 까닭이다. 단순히 역사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그 일의 뒷편에 숨겨진 힘없는 백성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보여주고자 했던 두 작품에서 나는 질긴, 그러나 맑았던 백성들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음을 감사했던 백성들의 마음이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음이다. 경판의 글씨를 한 점 부끄럼없는 마음으로 새기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젊은 장균이가 그랬고, 혼신의 힘을 불어넣어 판전을 짓고자했던 근필 역시 성도 없이 이름뿐인 풀뿌리같이 여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신명을 다 바쳤다.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도. 그런 백성들의 마음은 항상 나의 가슴 한켠을 울먹이게 한다.
많이 들어왔던 것처럼 판각을 하기 위해서는 각수들을 숙달시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판목제작 과정에서도 벌채한 나무를 바닷물에 3년여를 담가두어 강도를 강하는 만드는 시간이 걸린다. 건져낸 나무는 다시 그늘에서 말려 뒤틀림을 방지해야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 만들어진 판목을 소금물에 끓여 자체 부패를 막아야 했으니 그 제작과정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어가야 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유적지를 찾아가면 어김없이 이걸 누가 다 만들었어요? 하고 묻는 아이가 있다. 누가 했을까? 물으면 왕이나 군사들이 하지 않았나요? 되묻는 아이도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웠었다. 역사가 아무리 승리한 자 혹은 힘있는 자에 의해 쓰여진다고는 하나 진정한 역사의 뒷모습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여러번... 그때마다 나는 힘주어 말했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너희와 같은 일반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그런 까닭인지 마지막장을 넘기는 나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지만 담은 뜻은 컸다. 판각수 장균이와 판전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했던 목수 근필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느것 하나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니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도 경건해야만 한다는 것을... 불법을 일정한 규준 아래 집성해 놓은 불교성서를 대장경이라 한다. 장(藏)이란 말은 광주리를 뜻하는 범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대장경이란 말은 불교성전이 담뿍 담겨져 있는 큰 광주리하는 뜻이다. (318쪽) 그 광주리안에 힘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안녕과 권세를 지속하기 위한 마음을 담았지만 백성들은 모두의 안녕과 복을 위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렇게 백성들은 하나된 마음으로 서로를 위했다는 말이다. 그런 마음이 담긴 것이 대장경이요 판전인 것이다. 한순간의 흐트러짐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장균이의 마음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던 근필의 마음처럼 이 시대를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판치는 세상에서 묵직하게 다가온 한 권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시끄러운 이 시대에 한번쯤은 새겨들어야 할 듯한 수기대사의 말을 음미해본다. /아이비생각
"종교를 정치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지만 당초부터 그 생리는 판이한 것이지요.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일 뿐이며 정치의 위에도 아래에도 놓이지 않습니다." (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