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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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독자 가운데는 거의 처음으로 김상옥과 황옥, 김시현, 김원봉의 이름을 접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60쪽)

바로 내가 그렇다. 나는 정말로 이 책을 보고서야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했다. 어디 그들 뿐이겠는가? 앞장서지 않았을 뿐 뒤에서 묵묵히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름들이 얼마나 많았을런지 그것은 짐작조차도 못할 일이다. 무관심이라는 말은 참말이지 무서운 말이다. 오죽했으면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을까? 문화 유적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다보면 표지석 하나만 덩그마니 서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무슨 무슨 표지석이라고 아주 간단히 한두줄 적어 놓기는 했지만 그것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역사가 아무리 승리한 자에 의해 쓰여진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우리의 역사에 대한 흔적을 도외시하는 민족도 없을 듯 싶다. 신문을 읽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갯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품어안을 수 있는 우리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보게 된다. 보여주기 위함보다는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나이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단순히 이러이러한 항일투쟁이 있었다고만 말할 수 없는, 뭔가 안타까웠기에 저자도 이렇게 책으로나마 그들을 알리고 싶어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은 많았다. 그런데 의열단이 무엇일까?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단체다. 암살과 파괴, 테러와 같이 과격한 방법만이 식민통치에서 헤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 그랬기에 그들은 폭탄제조법을 배웠고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폭파 실험도 하며 그 위력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기발한 작전도 도모했다.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만약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더라면 지금의 우리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3.1운동으로 한바탕 호되게 당했던 일제는 기만적인 '문화정치'를 내세워 우리 민족을 두갈래로 찢어 놓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게 만들었다. 물론 살기 위해 그랬을테지만 그들의 기만은 친일파를 만들었고 우리 민족의 분열을 불러왔다. 그렇게 그들의 손안에서 놀아난 우리의 현실은 참담했다. 항일의지를 불태우며 투쟁을 감행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같은 민족이면서도 그들을 밀고했던 자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경성 삼판통에서 벌어졌던 김상옥 최후의 순간은 보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제발 빠져나갈 수 있기를.... 총에 맞았으면서도 입 밖으로 고통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던 김상옥의 결의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가 하면 황옥은 또 어떤가? 겉으로는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속으로는 우리의 의열단과 함께였다. 그러니 그의 투쟁의지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도 감옥에서 얻은 병마로 인하여 쓸쓸히 여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앞서 말했던 삼판통은 지금의 용산구 후암동이라고 한다. 일제의 총독부는 우리의 지명조차도 자기식으로 편하게 고쳐 불렀다. 서울의 행정명인 한성부를 경성부로 부르기도 했고 정, 정목, 통 등의 한자를 붙여 각 지역의 이름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서울의 황토마루(지금의 광화문)는 광화문통, 구리개(지금의 을지로)는 황금정, 웃다방은 다옥정, 명동은 명치정 등으로 바꿨다. (- 68쪽)  그렇다면 광화문이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였었나?  황토마루라는 멋진 이름이 아쉽다. 뭐 따지고보면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수없이 많겠지만 말이다.

책의 서두에서 역사가 궁극적으로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후손들이 기억해 줄 때에 그 역사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이 찬란한 순간이었든 처절한 아픔의 순간이었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정부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들을 허술하게 다루고 있다는 말에도 적극 공감한다.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을 되새겨보게 하는 우리 정부의 반응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물론 역사인식이 제대로 되지않은 탓도 있겠지만 앞장서야 할 정부가 그 모양이니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듯 하다. 개발만이 능사는 아닌데..... 언제쯤이면 우리가 '보여주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을런지... 서울성곽의 흔적위에 세워진 집들,  도로를 만들기 위해 뚝 끊겨져버린 남한산성의 성곽길 (그 도로는 통행량이 그다지 많지도 않아 보인다. 살펴보면 성곽을 끊어버리지 않고도 도로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전탑의 어깨를 스치듯 휘돌아나가던 열차의 철로, 문화재 밑으로는 지하철이, 위로는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잠시나마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웠던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역사의 아픔이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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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박준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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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적에는 50환짜리 은전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5원짜리 동전과 같은 의미였다. 1원짜리 은전도 사라졌고 백원과 오백원짜리 지폐도 지금은 사라져  모두 옛일이 되어버렸지만 처음 오백원짜리 동전이 나왔을 때의 신기함은 아직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돈이라는 가치로써 따지기조차 힘든 십원짜리 동전이 아주 작은 크기로 바뀐 것도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돈의 가치보다 돈을 만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 작아진 십원짜리 동전을 보면서 옛날 학창시절에 썼던 토큰이 생각났었다. 버스 안내양이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에 우리를 밀어넣으며  "오라이~" 를 외쳤던 그 시절... 엽전같이 생겨 여러개를 한꺼번에 사서 줄에 꿰고 다녔었는데 그 모양이 정말 옛날의 엽전같아 우리끼리는 엽전꾸러미라고도 불렀었다. 호지키스라고 불렸던 스테이플러로 한쪽 구석을 콕 찍어서 갖고 다녔던 종이로 된 회수권보다는 이용하기가 훨씬 수월했던 것도 같다. 만원버스에 몸을 구겨넣으며 죽네사네 했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참 좋았었다.

시장은 통通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소통하고 물화가 모여들어 사방으로 흩어지니, 막힘이 없는 곳이다. 또한 시장은 욕망이 들끓고 서로 이익을 다투는 곳이다. - 그리고 시장은 언제나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139쪽)
그 통通함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돈이 생겨났다. 돈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가 오로지 편리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당시의 사람들은 몰랐다. 대저, 진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편리함을 추구하며 변해가는 것이다. 좀 더 간편하게 그리하여 좀 더 편리하게... 하지만 '당백전'만큼은 달랐다. 간편과 편리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생겨났다. 그 돈이 생겨남으로써 겪어야 할 수많은 폐단들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백성들은 울부짖었다. 그리고 서로 통하여 언제나 다시 가고 싶은 시장이 그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변화에 민감한 시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그들이 이상하게 보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세상속에서 '당백전'과 같은 돈이 생겨난다면 어떤 반응이 일까?

"동전을 상평常平이라 이름 한 것은 항상 물건 값과 균형을 이루고자 함이다" (-250쪽)
역사팩션이라는 말은 다분히 유혹적이었다. 어떤 소재가 되었든 역사의 한귀퉁이를 찢어내어 자신만의 글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거기다 배울 수 있는 점을 가미시켜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별전의 조각이 불러왔던 살인을 쫓아가는 주인공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저  아주 옛날에 대원군이라는 사람이  경복궁 중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냈던 것이 '당백전'이었다는 작은 상식의 틀을 깨기에 충분함이 느껴졌다. 하나의 돈이 만들어져 유통되기까지의 과정.. 그 흐름을 읽어내려가던 주인공의 해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일거양득이었다. 오래도록 조선의 백성들 사이에 머물렀던 '상평통보'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내린 '당백전'의 결말은 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가 배운 것을 올바르게 펴지 못하고 세상에 아부하여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 곡학아세曲學阿世..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말.. 책을 읽는 내내 내 주변을 맴돌았던 말이다. 돈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대체 간사한 짓을 하게 만드는 근원이 무엇일까? 그것이 돈일까? 그렇다면 돈의 유통에는 반드시 악의 유통이 뒤따르는 것일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돈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근원은 돈이 아니라 오로지 이익만을 얻고자 하는 인간들의 그릇된 마음일 게야... 또한 오늘의 이런 한심스러운 세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고....'(-377쪽)
그랬다. 그 때나 지금이나 무에 다를게 있을까? 주인공의 생각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런 한심스러운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잘못된 마음이 원인일거라던 주인공의 말이 아프게 허를 찌른다. 금전만능주의라는 말을 겉으로는 혐오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일테니...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진화하는 인간의 표본은 바로 욕망이며 욕심일거라고.. 글의 흐름속에서 저마다 누군가의 위에 서기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저마다 채우지 못한 자신만의 창고를 바라보며 좀 더 채우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높이 올라야 하고 많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 진정 약육강식의 생태일까?

언젠가는 알게될거라는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그 진실도 때에 맞춰 나타나야 빛을 발한다.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한 말로 치장한 진실은 제대로 된 진실이 아닐 거라는 말이다. 정랑 박일원이 찾아헤맸던 진실은 끝내 몸을 숨겼다.  단 몇사람의 입을 통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던 당백전의 진실.. 깨어진 별전 조각으로 인해 살인이 일어나야만 했던 그 순간조차도 어느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어두운 진실은 숨어있었다. 그 진실을 찾아가는 일원의 발걸음속에서 많은 것을 본다. '당백전'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현실과, '당백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내비쳤던) 사람들의 욕망과, '당백전'으로 인해 울고 웃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그리고 '당백전'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던 경제의식과... 이 책의 내용이 비단 그 시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우리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악화惡貨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잘못된 욕망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일만큼은 생겨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흥미로웠던 책이다. 역사적인 사실 한조각에 얹혀진 작가의 상상력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풍성한 지식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긴장감이 부족했던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꽉찬 느낌을 안아든다. 추천인의 말처럼 묵직한 주제였을 테지만 그리 무겁지 않게 다가와 주었던 책이기도 했다. 복잡한 이 시대를 바라보며 역사속에 모든 정답이 들어있다던 어느 명사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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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전 : 악몽일기
박승예 글.그림 / 책나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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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솔직하게 말해 좀 당혹스럽다. 책표지의 그림은 무한한 소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악몽일기라는 제목조차도 '꿈'이라는 낱말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을 거부할 수 없게 했다. 그림에세이... 그림과 글이 서로 어우러져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 꽤나 난감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야말로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기록들이라니... 이 책에 호기심을 느낀 것은 단순히 책표지의 그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나에게 꿈이라는 것, 그리고 악몽이라는 것은 그다지 먼 존재가 아닌 까닭이다. 꿈 좀 꾸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다보니 꿈이라는 소재가 궁금했던 거다. 내노라하는 사람들의 거창한 꿈이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나에게 어떤 이들은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서 그리도 꿈에 시달리느냐고 하고, 어떤 이는 그냥 머릿속을 비우면 잠을 잘 잘수가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 역시도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해 꿈에 끌려다닌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왠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말이다. 보다못해 <수면의 기술>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던 지인은 지금도 가끔 요즘은 어때? 라고 물어온다.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 세마리.... 100,99,98,97, 100부터 거꾸로 숫자세기... 잠이 올 때까지 책읽기(하지만 이 방법은 절대 안된다. 나는 책만 읽으면 오던 잠도 달아나는 판이니)..  해 볼 건 다 해봤지만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잠이 올 때까지 자연스럽게 기다리기다. 어쩌면 이 책을 구원의 심정으로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꿈을 꾸면서 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그 혹시나 하는 마음을 이제는 접어야겠지만 무의식의 존재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무의식의 양면성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작은 아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있지만 이건 그 의미와는 별개인 듯 하다. 현실과 꿈은 정말로 그 반대의 현상일까? 무의식적으로 내 감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들이 꿈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일까?  악몽 자체를 두려움과 불완전함이라던 저자의 말에 어느정도는 공감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불완전함이 아니라 불안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림에세이 인지라 그림 반, 글 반이다. 그런데 그림이 주는 느낌은 너무 강렬하다. 꿈의 재해석쯤으로 보고 싶은데 그 꿈, 악몽이라는 것이 그토록이나 강렬하게 우리를 잡아채는 모양이다. 자연스러운 상상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틀에 얽매인 상상같다는 생각을 한다. 정석에서 살짝 비틀어놓은 그런 느낌 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라고 나는 혼자서 생각한다. 꿈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비틀린 현실일 것이라고... 내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는 나의 꿈조차도 현실속에서 무언가에게 쫓기듯하는 내 생활의 일부일 것이다. 좋은 뜻의 꿈이라고 하면 일단 돼지꿈? 용꿈? 똥꿈? 대체적으로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어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꿈해석도 다양하다. 그만큼 우리의 주체적인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일게다. 그러니 어쩌면 꿈조차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데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내면서 작가의 말이나 누군가의 해설을 어느 한쪽에 첨부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극히 주관적인 관념의 세계를 아무런 장치도 없이 들여다 본다는 것은 그다지 상쾌한 일은 못된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그리 많은 것을 던져주지 못한 듯 하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또다른 괴물의 존재라는 말보다도 공생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불안과 불만의 삶을 극복하려 하려고 합니다.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거울 밖의 실제 모습에서 또 다른 기준의 욕망을 발견 (책소개글에서).. 이라는 말은 가슴에 와 닿는다.  악몽이었지만 꿈에 대한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로 무언가를 극복하려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이겨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내어주고는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은 아닐까? 비워야 한다는 것, 비운다는 것의 의미가 강하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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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꿈, 세상을 바꾸다 -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부처님의 생애
백승권 지음, 김규현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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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일러 부처라 일컫기에 그저 부처님이라고만 알고 있는 존재.. 석가모니란 말이 단순한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 담긴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보통의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을 일러 '대웅전'이라 하는데 '대웅()' 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 를 한역한 말로 이는 곧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집이라는 뜻도 된다.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항상 사찰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찾게 되었던 사찰의 벽화는 나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었다. 팔상성도를 그린 벽화를 둘러보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십우도를 그려놓았던 벽화는 정말이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림의 뜻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불교는 탱화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일상적으로 불교적인 행사나 의미를 보면 우리가 무속이라고 말하는 것과 많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그때문인지 불교를 아직도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불교의 나라였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는 국교로 정해져 나라의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태어나게 된 배경만 보더라도 우리에게 불교의 의미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기도 했지만 국난이 일어났을 때마다 불교에 의지했던 것은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유적이나 유물등은 불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불교라는 종교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왠만한 사찰들이 모두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보니 민중불교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까이 하기에는 쉽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나부터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불교용어들에 대한 낯섬이 불교와 친해질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의 종교를 바라보건데 온전히 종교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여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아들에게 읽기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사람들에게 읽히는 성경과는 달리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지 못하는 불경의 아쉬움때문이기도 했고 불교라는 종교가 어떤 것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종교인지를 먼저 알게 해 주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니편 내편을 가르며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방면으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보다는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무심히 '부처'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게 해 준다면, 그리고 이름뿐인 무형의 신이라는 것보다는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많은 고행을 겪으며 진리를 찾아 떠났던 수행의 과정을 알게 해주고도 싶었다. 일종의 위인전을 대하듯이...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서  주어진 편한 삶을 마다한 채 진리를 찾아 떠나게 되는 과정이 쉽게 표현되어져 있다. 동문 밖에서 늙음(老)을, 남문 밖에서 병듬(病)을, 서문 밖에서는 죽음(死)을, 북문 밖에서는 승려를 보고, 마침내 출가할 뜻을 굳히게 되는 '사문유관'의 과정도 잘 풀이되어져 있다. '왜?' 라는 물음을 갖게 되는 '사문유관'을 통해 싯다르타가 품었음직한 생각을 아이의 입장에서 유추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다음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설파했다는 팔정도와 연기법(인연법)을 보면서 그 뜻을 하나하나 헤아려가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시간이 어디 있을가?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탑과 부도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쉽게 풀이되어진 석가모니의 생애였다.  부록으로 덧붙여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불교상식' 편은 어렵지않게 다가와 좋았다. 석가모니 부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하였으며 이 부처가 됨을 성불(成佛)이라 한다는 말과 함께 그 뜻을 다시한번 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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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 52 주말이 기다려지는 여행
고규홍 글.사진 / 터치아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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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생각만으로도 설게게 하는 말이다. 어떤 주제로 길을 떠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떠나는 여행도 있다. 흔히 여행을 일러 '나를 찾기 위한 길 떠남'이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거기에 기다려주는 이가 있다면 더 좋을게다. 그 기다림의 존재가 나무라면 어떨까? 이 책은 바로 그 나무가 나를 기다려주는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 상큼할까? 나무를 만나러가는 여행길이니 상큼할 것이다. 나무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곳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었다. 그러다가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되었고  그 다음엔 주산지의 나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그 길은 광고덕을 톡톡히 보았던 길이기도 하다. 길마다 색다른 맛이 있었지만 나무길은 뭐니뭐니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독여준다는 것이다. 이름없는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함께 어울어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채 혹은 외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갈구하는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평온함일 것이다. 우리의 오만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점점 사라져가거나 변형되어지는 자연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에 차가운 바람이 한줄기 지나간다.

옛날 우리네 정서를 만들어주었던 풍경속에는 빠짐없이 나무가 있었다. 마을어귀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들.. 간혹 울긋불긋한 띠를 두르고 있었던 탓에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음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나무를 보면서 이곳이 마을의 시작점이구나 했었던 적도 많았었다. 생뚱맞게 논두렁 어디쯤에 자리한 괴목들을 보면서 사라졌거나 이전한 마을의 모습을 생각한다는 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나무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의지의 대상이 되어주기도 했다. 마을입구에 지키고 서서 들고 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장기나 바둑을 두는 일상의 여유를 선물해주기도 했던 나무..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 라는 노래를 불렀던 나 어릴적의 추억만큼 지금은 미루나무를 본다는 것이 쉽진 않은 듯 하다. 그 뾰족하게 키가 큰 미루나무를 여행길에 만나기라도 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보통은 미류나무라고 불리웠던 것 같은데 그것이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차! 했다.

나무에 얽힌 전설이나 사랑이야기는 많다. '삽목전설'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중에서 은행나무가 참 많은 것 같다. 마의태자가 꽂아두었다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그렇고 큰 스님이 우물가에 꽂아둔 지팡이가 자랐다는 반계리의 은행나무가 그렇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역시 스님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인지.. 그 삽목설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색다른 맛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속리산을 찾아가는 길에 만났던 정이품송을 기억한다. 왕이 지나갈 때 가지를 들어올려 벼슬까지 하게 되었다던 정이품송의 전설을 들으며 얼마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던지... 단지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정이품송의 가지를 보면 정말 그랬을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옛못습을 많이 잃어버린 그 소나무가 결혼을 해서 정이품송의 기풍을 닮은 부인송이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젠가 배롱나무를 두고 옥신각신했던 적이 있었다. 무슨 나무냐고 묻던 친구에게 백일홍나무라고 하니 백일홍은 나무가 아니라고 우겨대던 친구..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식물 백일홍도 있지만 그 작은 꽃과 다른 나무라해서 백일홍나무라고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기어코 확인을 해 보았던 친구는 지금도 배롱나무를 보면 베시시 웃는다. 나무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우리네 정서를 한번쯤 짚어보게 된다. 나무의 생김새만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짐작케 한다는 층층나무, 쥐똥나무, 팔손이나무, 박태기나무,화살나무등도 재미있지만  그 특징을 따라 붙여진 이름도 괘나 재미있다. 호랑이 등긁개로 쓰여서 호랑가시나무, 물을 푸르게 한다고 물푸레나무, 불 속에 던져넣으면 꽝꽝소리가 난다고 꽝꽝나무,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 가지를 꺾을 때 딱 소리가 나는 닥나무, 댕강소리가 나는 댕강나무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나무도 있다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된다. 지금은 많이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라고 불렀던 것도 그렇고 후박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사실은 일본목련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토종 후박나무와는 엄연히 다른 나무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기엔 만만찮을 거라는 생각이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어디 나무만을 보자고 떠나는 여행길이 쉽겠는가 말이다. 그러한 까닭인지 이 책속에는 그 나무를 배경으로 생겨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유적지나 관광지를 함께 소개해 주고 있다. 나무와 함께 들러볼 수 있는 여러곳을 소개해주면서도 그곳에서 또다른 맛으로 만날 수 있는 나무를 빼놓지 않았다. 유적지 탐방을 자주하다보면 고택을 만나기가 쉽다. 고택에 멋진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못의 중심부에는 어김없이 작은 섬 하나 떠있는데 그 섬의 주인은 커다란 나무 한그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날 사람들은 연못을 음의 기운이라 여겼고 그 음의 기운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연못의 중간에 공간을 만들어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후학을 양성했다던 남간정사가 떠오른다. 우암사적공원안의 고택인데 냇물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둔 채 그 위로 집을 지었다는 남간정사의 앞에도 연못과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왕버들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다. 나도 참 무심하다...

나무... 가는 곳마다 나무는 많다. 하지만 나무를 알지 못하니 잘생기고 멋진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유명세를 치르는 나무만을 알아보았을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모르고 지나친 나무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가기 어려운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어쩌면 너무 흔한 것이기에 관심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이 책을 통해서 나무에 관한 경이로움이 느껴져 새삼스럽기도 하고 자주 갔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사자산 법흥사의 밤나무와 청령포에서 어린 단종의 아픔을 보고 들었다던 관음송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책장을 덮으면서 한번쯤은 찾아가고 보고 싶은 나무들을 떠올린다. 세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대표하는 마을이라 하여 三松里라 불리운다는 곳의 왕소나무가 궁금하고, '3750-00248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해마다 토지세를 납부한다는 반송이 궁금하다. 석송령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무려 324평이나 된다고하니 그 그늘 아래서 잠시의 쉼을 얻어보는 것을 상상해보니 꽤나 멋지다. 그런가하면 줄기를 뻗어올린 뒤 일제히 가지를 낮춰 바닥으로 늘어뜨리고 있다는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뽕나무, 소나무, 참나무, 향나무, 전나무, 이팝나무... 나무도 참 많다. 그 많은 나무들을 공부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무의 특징과 재미있는 이름들, 어원, 나무의 생김새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나무바로알기'는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이 책이 나에게 전해주는 보너스였다. 소나무만 하더라도 반송,육송,적송,유송,곰솔등 분류되어진 이름이 많다. 보통 해송이라 부르는 것이 곰솔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아울러 함께 찾아 갈 수 있는 유적지들을 소개해 준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유익한 정보였다. 꽃을 배우고 나무를 배우는 일, 자연을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예부터 우리의 일상속에서 함께 살아왔던 소나무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본다. 소나무는 순 우리말로 '솔나무', '소오리나무'라고 부른다. 모두가 '솔'을 어원으로 한다. 여기서 '솔'은 '으뜸'을 뜻하는 우리말 '수리'에서 변성한 것으로, '나무 중의 으뜸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한자로는 '송松'을 쓴다. (215쪽).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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