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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 52 ㅣ 주말이 기다려지는 여행
고규홍 글.사진 / 터치아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 생각만으로도 설게게 하는 말이다. 어떤 주제로 길을 떠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떠나는 여행도 있다. 흔히 여행을 일러 '나를 찾기 위한 길 떠남'이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거기에 기다려주는 이가 있다면 더 좋을게다. 그 기다림의 존재가 나무라면 어떨까? 이 책은 바로 그 나무가 나를 기다려주는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 상큼할까? 나무를 만나러가는 여행길이니 상큼할 것이다. 나무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곳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었다. 그러다가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되었고 그 다음엔 주산지의 나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그 길은 광고덕을 톡톡히 보았던 길이기도 하다. 길마다 색다른 맛이 있었지만 나무길은 뭐니뭐니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독여준다는 것이다. 이름없는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함께 어울어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채 혹은 외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갈구하는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평온함일 것이다. 우리의 오만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점점 사라져가거나 변형되어지는 자연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에 차가운 바람이 한줄기 지나간다.
옛날 우리네 정서를 만들어주었던 풍경속에는 빠짐없이 나무가 있었다. 마을어귀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들.. 간혹 울긋불긋한 띠를 두르고 있었던 탓에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음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나무를 보면서 이곳이 마을의 시작점이구나 했었던 적도 많았었다. 생뚱맞게 논두렁 어디쯤에 자리한 괴목들을 보면서 사라졌거나 이전한 마을의 모습을 생각한다는 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나무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의지의 대상이 되어주기도 했다. 마을입구에 지키고 서서 들고 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장기나 바둑을 두는 일상의 여유를 선물해주기도 했던 나무..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 라는 노래를 불렀던 나 어릴적의 추억만큼 지금은 미루나무를 본다는 것이 쉽진 않은 듯 하다. 그 뾰족하게 키가 큰 미루나무를 여행길에 만나기라도 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보통은 미류나무라고 불리웠던 것 같은데 그것이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차! 했다.
나무에 얽힌 전설이나 사랑이야기는 많다. '삽목전설'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중에서 은행나무가 참 많은 것 같다. 마의태자가 꽂아두었다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그렇고 큰 스님이 우물가에 꽂아둔 지팡이가 자랐다는 반계리의 은행나무가 그렇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역시 스님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인지.. 그 삽목설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색다른 맛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속리산을 찾아가는 길에 만났던 정이품송을 기억한다. 왕이 지나갈 때 가지를 들어올려 벼슬까지 하게 되었다던 정이품송의 전설을 들으며 얼마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던지... 단지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정이품송의 가지를 보면 정말 그랬을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옛못습을 많이 잃어버린 그 소나무가 결혼을 해서 정이품송의 기풍을 닮은 부인송이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젠가 배롱나무를 두고 옥신각신했던 적이 있었다. 무슨 나무냐고 묻던 친구에게 백일홍나무라고 하니 백일홍은 나무가 아니라고 우겨대던 친구..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식물 백일홍도 있지만 그 작은 꽃과 다른 나무라해서 백일홍나무라고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기어코 확인을 해 보았던 친구는 지금도 배롱나무를 보면 베시시 웃는다. 나무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우리네 정서를 한번쯤 짚어보게 된다. 나무의 생김새만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짐작케 한다는 층층나무, 쥐똥나무, 팔손이나무, 박태기나무,화살나무등도 재미있지만 그 특징을 따라 붙여진 이름도 괘나 재미있다. 호랑이 등긁개로 쓰여서 호랑가시나무, 물을 푸르게 한다고 물푸레나무, 불 속에 던져넣으면 꽝꽝소리가 난다고 꽝꽝나무,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 가지를 꺾을 때 딱 소리가 나는 닥나무, 댕강소리가 나는 댕강나무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나무도 있다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된다. 지금은 많이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라고 불렀던 것도 그렇고 후박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사실은 일본목련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토종 후박나무와는 엄연히 다른 나무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기엔 만만찮을 거라는 생각이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어디 나무만을 보자고 떠나는 여행길이 쉽겠는가 말이다. 그러한 까닭인지 이 책속에는 그 나무를 배경으로 생겨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유적지나 관광지를 함께 소개해 주고 있다. 나무와 함께 들러볼 수 있는 여러곳을 소개해주면서도 그곳에서 또다른 맛으로 만날 수 있는 나무를 빼놓지 않았다. 유적지 탐방을 자주하다보면 고택을 만나기가 쉽다. 고택에 멋진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못의 중심부에는 어김없이 작은 섬 하나 떠있는데 그 섬의 주인은 커다란 나무 한그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날 사람들은 연못을 음의 기운이라 여겼고 그 음의 기운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연못의 중간에 공간을 만들어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후학을 양성했다던 남간정사가 떠오른다. 우암사적공원안의 고택인데 냇물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둔 채 그 위로 집을 지었다는 남간정사의 앞에도 연못과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왕버들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다. 나도 참 무심하다...
나무... 가는 곳마다 나무는 많다. 하지만 나무를 알지 못하니 잘생기고 멋진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유명세를 치르는 나무만을 알아보았을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모르고 지나친 나무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가기 어려운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어쩌면 너무 흔한 것이기에 관심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이 책을 통해서 나무에 관한 경이로움이 느껴져 새삼스럽기도 하고 자주 갔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사자산 법흥사의 밤나무와 청령포에서 어린 단종의 아픔을 보고 들었다던 관음송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책장을 덮으면서 한번쯤은 찾아가고 보고 싶은 나무들을 떠올린다. 세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대표하는 마을이라 하여 三松里라 불리운다는 곳의 왕소나무가 궁금하고, '3750-00248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해마다 토지세를 납부한다는 반송이 궁금하다. 석송령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무려 324평이나 된다고하니 그 그늘 아래서 잠시의 쉼을 얻어보는 것을 상상해보니 꽤나 멋지다. 그런가하면 줄기를 뻗어올린 뒤 일제히 가지를 낮춰 바닥으로 늘어뜨리고 있다는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뽕나무, 소나무, 참나무, 향나무, 전나무, 이팝나무... 나무도 참 많다. 그 많은 나무들을 공부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무의 특징과 재미있는 이름들, 어원, 나무의 생김새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나무바로알기'는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이 책이 나에게 전해주는 보너스였다. 소나무만 하더라도 반송,육송,적송,유송,곰솔등 분류되어진 이름이 많다. 보통 해송이라 부르는 것이 곰솔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아울러 함께 찾아 갈 수 있는 유적지들을 소개해 준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유익한 정보였다. 꽃을 배우고 나무를 배우는 일, 자연을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예부터 우리의 일상속에서 함께 살아왔던 소나무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본다. 소나무는 순 우리말로 '솔나무', '소오리나무'라고 부른다. 모두가 '솔'을 어원으로 한다. 여기서 '솔'은 '으뜸'을 뜻하는 우리말 '수리'에서 변성한 것으로, '나무 중의 으뜸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한자로는 '송松'을 쓴다. (215쪽).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