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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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독자 가운데는 거의 처음으로 김상옥과 황옥, 김시현, 김원봉의 이름을 접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60쪽)

바로 내가 그렇다. 나는 정말로 이 책을 보고서야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했다. 어디 그들 뿐이겠는가? 앞장서지 않았을 뿐 뒤에서 묵묵히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름들이 얼마나 많았을런지 그것은 짐작조차도 못할 일이다. 무관심이라는 말은 참말이지 무서운 말이다. 오죽했으면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을까? 문화 유적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다보면 표지석 하나만 덩그마니 서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무슨 무슨 표지석이라고 아주 간단히 한두줄 적어 놓기는 했지만 그것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역사가 아무리 승리한 자에 의해 쓰여진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우리의 역사에 대한 흔적을 도외시하는 민족도 없을 듯 싶다. 신문을 읽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갯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품어안을 수 있는 우리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보게 된다. 보여주기 위함보다는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나이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단순히 이러이러한 항일투쟁이 있었다고만 말할 수 없는, 뭔가 안타까웠기에 저자도 이렇게 책으로나마 그들을 알리고 싶어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은 많았다. 그런데 의열단이 무엇일까?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단체다. 암살과 파괴, 테러와 같이 과격한 방법만이 식민통치에서 헤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 그랬기에 그들은 폭탄제조법을 배웠고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폭파 실험도 하며 그 위력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기발한 작전도 도모했다.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만약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더라면 지금의 우리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3.1운동으로 한바탕 호되게 당했던 일제는 기만적인 '문화정치'를 내세워 우리 민족을 두갈래로 찢어 놓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게 만들었다. 물론 살기 위해 그랬을테지만 그들의 기만은 친일파를 만들었고 우리 민족의 분열을 불러왔다. 그렇게 그들의 손안에서 놀아난 우리의 현실은 참담했다. 항일의지를 불태우며 투쟁을 감행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같은 민족이면서도 그들을 밀고했던 자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경성 삼판통에서 벌어졌던 김상옥 최후의 순간은 보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제발 빠져나갈 수 있기를.... 총에 맞았으면서도 입 밖으로 고통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던 김상옥의 결의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가 하면 황옥은 또 어떤가? 겉으로는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속으로는 우리의 의열단과 함께였다. 그러니 그의 투쟁의지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도 감옥에서 얻은 병마로 인하여 쓸쓸히 여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앞서 말했던 삼판통은 지금의 용산구 후암동이라고 한다. 일제의 총독부는 우리의 지명조차도 자기식으로 편하게 고쳐 불렀다. 서울의 행정명인 한성부를 경성부로 부르기도 했고 정, 정목, 통 등의 한자를 붙여 각 지역의 이름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서울의 황토마루(지금의 광화문)는 광화문통, 구리개(지금의 을지로)는 황금정, 웃다방은 다옥정, 명동은 명치정 등으로 바꿨다. (- 68쪽)  그렇다면 광화문이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였었나?  황토마루라는 멋진 이름이 아쉽다. 뭐 따지고보면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수없이 많겠지만 말이다.

책의 서두에서 역사가 궁극적으로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후손들이 기억해 줄 때에 그 역사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이 찬란한 순간이었든 처절한 아픔의 순간이었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정부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들을 허술하게 다루고 있다는 말에도 적극 공감한다.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을 되새겨보게 하는 우리 정부의 반응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물론 역사인식이 제대로 되지않은 탓도 있겠지만 앞장서야 할 정부가 그 모양이니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듯 하다. 개발만이 능사는 아닌데..... 언제쯤이면 우리가 '보여주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을런지... 서울성곽의 흔적위에 세워진 집들,  도로를 만들기 위해 뚝 끊겨져버린 남한산성의 성곽길 (그 도로는 통행량이 그다지 많지도 않아 보인다. 살펴보면 성곽을 끊어버리지 않고도 도로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전탑의 어깨를 스치듯 휘돌아나가던 열차의 철로, 문화재 밑으로는 지하철이, 위로는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잠시나마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웠던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역사의 아픔이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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