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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허균 지음 / 돌베개 / 2000년 5월
평점 :
사찰에 가면 나는 무엇을 보는가? 들어서는 입구의 일주문을 보고,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상을 보고, 사천왕상을 지나 불이문을 보고, 불이문을 지나 대웅전앞에 머무는 것이 다는 아니었을진데... 사찰에 가면 내 눈에 띄는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니 답은 간단하다. 유적지를 돌며 답사를 한답시고 시답잖게 돌아다니기를 반복하면서도 과연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를 새삼 다시 묻게 되었던 책이다. 한편으로는 늘 궁금했었던 그 뒷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알고 싶다는 욕심도 부려보았었다. 전등사의 나목상이 사실은 벌거벗은 여인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그 충격은 내게있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범종루를 바라보면서도, 오래된 부도를 살펴보면서도 그안에 들어있음직한 의미를 단 한번도 헤아려보려 하지 않았었다. 그 화려한 공포의 단청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불전에 들러 참배를 하면서도 그 불상들을 유심히 바라보지 못했다. 기웃거리며 찾아내는 것이 고작 탑과 부도... 그 탑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어떤 형식을 취했는지 그저 보여지는 형식만 따지고 들었을 뿐이다. 법당 전면의 용두를 보면서 그것이 왜 거기에 있는 것인지 진즉에 한번쯤은 눈치챘어야 했다. 그 수많은 장식들이 저마다 안고 있을 상징성에 대해서, 전각마다 걸려있던 편액의 글자들이 무슨 뜻을 안고 있는지를 진즉에 한번쯤은 생각을 했어야 했다...
오채라고 하는 청(靑)·황(黃)·홍(紅)·백(白)·흑(黑)의 다섯 가지 색을 쓴다는 단청이 장식의 의미뿐만 아니라 비바람에 나무가 썩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쯤은 왠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색이 음양오행을 의미한다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온 사상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찰이나 궁궐의 단청을 오방색이 방위에 맞게 잘 조화되도록 꾸민 것을 볼 수가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단청은 오방정색이라고 하여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색을 말한다고 한다. 홍(紅)색과 적(赤)색의 구분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장식들이나 전각들 모두가 다들 화려한 단청으로 칠해져있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큰 사찰은 대개 삼문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절입구의 일주문과 중간쯤에 있는 사천왕문, 그리고 참배장소로 들어가지 직전에 있는 불이문이다. 불이문이란 흔히 말하는 해탈문이기도 하다. 일주문은 절대적인 진리, 즉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상징한다. 사천왕문은 각 방위별로 칼을 들고 있는 동방의 지국천, 비파를 들고 있는 서방의 광목천, 용과 여의주를 들고있는 남방의 증장천, 탑을 들고 있는 북방의 다문천을 말하는데 이들은 덩치도 큰데다가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어 무섭다고 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 하지만 그 사천왕의 얼굴이 그토록이나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불이문은 생사가 둘이 아니며 유무(有無) 또한 서로 다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가 둘이 아니라는 절대 평등의 경지를 상징한다고 하니 가히 해탈문이라 할 만 하다.
불전을 살펴보자면 대웅전이라 하기도 하고 대웅보전이라 하기도 한다. 대웅전이라 함은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는 전각을 말함이고 대웅보전이라 함은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협시불로 모시는 전각을 말함이다. 우리나라 대웅전에서는 선종의 삼신설을 따라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전각을 비로전이나 대적광전 또는 화엄전이라 하고,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을 약사전 또는 유리광전이라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극락전이나 아미타전 혹은 무량수전이라 불리는 곳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라고 보면 된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신다. 관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을 관음전이나 원통전이라 하고, 미륵불을 모시는 미륵전 혹은 용화전, 지장보살을 모시는 지장전, 문수보살을 모시는 문수전등을 볼 수가 있다. 이 중에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의 중생을 교화하도록 부처의 명을 받았다는 지장보살은 염라대왕의 화신이라고도 하여 십대왕등 명부의 권속들과 함께 명부전에 모시기도 한다.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으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갖춘 곳을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양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 인제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이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이다. 불상의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그린 8폭의 <팔상탱화>를 봉안하는 영산전과 팔상전도 있다. 그 밖에도 치성광대제 즉 북두칠성을 모시는 곳을 칠성각, 토속신인 산신을 모시는 곳을 산신각, 말세 중생에게 복을 베푸는 나반존자를 모신 곳을 독성각이라 하는데 이 세분을 함께 모실 경우 삼성각이라 하기도 한다. 승려들이 좌선, 정진하는 승당으로 심검당이나 수선당, 선불장이라는 편액을 걸고있는 곳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요사채와는 구별된다.
책속의 내용은 아니지만 일단 사찰을 가게 되면 반드시 보게 되는 대웅전이 있다. 그곳에 모셔진 부처를 삼세불(삼존불) 또는 삼신불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삼세불은 과거불과 현재불. 미래불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과거불은 연등불이라 하고 현세불은 석가모니불을 말하며 미래불은 미륵불이다. 삼신불은 부처의 몸을 셋으로 나누어 부르는 말로 법신불과 보신불, 응신불(화신불)을 한꺼번에 이르는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처의 몸이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법신불이라 함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우주의 진리를 인격화하여 부른다고 보면 된다.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다. 비로자나불을 가리킨다. 보신불은 오랜 수행을 거친 부처로 성불한 아미타불을 이른다. 마지막으로 응신불 즉 화신불은 직접 현세에 나타난 부처를 말한다. 석가모니불이다.
그렇게나 많은 불,보살상들이 사찰안에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이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볼수록 놀라는 것은 단연코 닫집이 아닐까 싶다. 닫집을 천개라고도 하는데 하늘덮개라는 뜻이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닫집의 지붕은 그 자체가 아무런 무게도 없이 허공에 매달려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그 형식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둥은 있지만 보통의 경우처럼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그저 아래로 내려왔을 뿐이다. 도대체 저런 집을 왜 전각안에 그것도 가장 중심이 되는 대웅전에 만들어둔 것일까? '따로 지어진 또 하나의 집'이라는 이름 그대로 작은 집의 형상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뜻하는 의미는 상당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극락정토, 즉 열반의 세계를 현실화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걸 알고 그 작은 집이 왜 거기에 존재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사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닫집과 후불탱화쯤은 한번쯤 눈여겨 볼만한 장식이 아닐까 싶다.
사찰에 숨겨진 그 많은 장식들의 의미를 다 새기며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평소 많이 궁금했었던 장식들의 의미를 알 수 있어 좋았고, 내가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게서 찾아낸 상징성은 정말 놀라웠다. 나에게 불화에 대해, 그리고 사찰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주었던 심우도.. 그 심우도의 뜻을 이제사 기억속에 담게 되었다. 사찰의 전각을 배치하는 것조차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파랑새의 전설을 가진 무위사의 벽화가 생각난다. 내가 좀 더 일찍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었더라면 그토록이나 소중하고 귀한 벽화들을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안타까움이 찾아든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무위사 벽화와 개암사의 닫집을 떠올리며 책장을 덮기로 한다. 아직은 한참을 가야 할 나의 길이 아득하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