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왕의 역사 - 고구려부터 조선까지
박영현 편저, 한종수 감수 / 삼양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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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다 외울 수 있는게 있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이다. 조선을 주물렀던 왕의 계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왕의 계보를 외우기 위해 애를 썼는지 모르겠다. 시험에 그다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래야만 했을까? 조금 비약시킨 말일수도 있겠지만 왕의 계보를 외운다고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주입식으로 넷 중 하나만 찍으면 그만인 역사를 공부해왔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우리와 같은 식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일까? 역사에 대한 홀대도 조금은 나아진 듯 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광화문에 서울광장이 생겨나고 처음으로 그 곳을 찾았을 때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 작은 물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이야 있는 듯 없는 듯 흐지부지한 느낌을 주지만 당시만해도 많은 시선을 받았었다. 실개천(?)을 따라가며 그 시대에 있었던 일을 하나씩 서로 돌아가며 말하기도 했었는데... 역사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이나 열심히 왕의 계보를 외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삼국시대까지 아우르는 왕의 연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얼른 받아들었던 책이다.

가끔 관심을 끌기도 하는 소재를 다루어주는 사극을 볼 때마다 궁금했던 점은 그 많은 왕중에 선택되지 못한 왕의 시대였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렇다하게 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았거나 무탈하게 보낸 왕의 시대가 그러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드라마 성격상 무언가 자극적인 소재가 있어야 할테니 말이다. 그런 까닭인지 제일 먼저 살펴보았던 부분이 바로 삼국시대의 연보였다. 몇 명의 왕이 그 시대를 이끌었던 건 아닌 탓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왕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 궁금했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고마웠던 점은 한 시대로 들어가면서 세계사와 견주어 볼 수 있도록 연도별로 비교하여 정리해 주었다는 것이다. 끝 부분에서는 고구려면 고구려, 백제면 백제를 이끌었던 왕의 계보를 다시한번 보여주니 다시 한번 정리하는 느낌이 들어 괜찮았다. 물론 왕의 역사를 부분 부분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다루다보니 밋밋하기는 했다. 소설처럼 재미를 추구하는 책은 아닌 듯 하니 그걸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한번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면 우스울까?

시대별로 큼직한 사건 사고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식상함이 느껴진다는 게 솔직한 말일게다. 하지만 중간중간 그 시대에 있었을 설화나 작은 이야기들을 각주처럼 달아준 것은 감칠맛이 났다. 유물 유적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조금씩이나마 밋밋함을 벗어나기도 한다. 오래전에 읽어보겠다고 펼쳤다가 조금 읽고나서 팽개치듯이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조선왕조실록>이 생각났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꺼내보고 나 자신의 태만함을 탓해보기도 했다.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렸던 건 아닐까 싶어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편벽한 사람은 되지 말자는 다짐을 또한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책만큼은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고 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도 그게 잘 안되는 걸 보면 한참 멀었지 싶다. 조금은 지루했지만 때마침 생각하고 있었던 주제를 다루어 준 책인지라 고맙게 보았다.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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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국 2
우영수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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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관련있는 전투를 찾아보면 관산성 전투, 황산벌 전투, 백강 전투 이렇게 세가지를 보여준다. 신라와 함께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신라 진흥왕이 다시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백제의 한강 유역까지 빼앗았던 싸움이 바로 관산성 전투다. 그 싸움으로 인해 백제의 부여시대를 열었던 성왕이 죽게 된다. 그 때가 554년이다. 그리고 660년에 백제와 신라는 황산벌에서 다시 만난다. 의자왕이 신라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함락하자 이에 놀란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어 백제를 공격하게 된것이 황산벌 전투의 원인이라면 원인일 것이다. 그 당시 의자왕이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신라를 압박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토록 잘 나가던 백제가 왜 망했을까? 실제 인구도 고구려나 신라에 못지 않았고,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 있어 나라살림도 어렵지 않았었다. 그것뿐일까?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쪽과도 교류을 하였음은 물론이고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일본과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었다. 그런데 왜? 그것은 간단하다. 의자왕 후반기에 왕권강화를 위해 무리수를 두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귀족간의 정치적 분쟁이 절대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게 백강전투다. 백강이라 함은 지금의 금강 유역을 말한다.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나당 연합군과 벌였던 전투가 백강 전투인데 백제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6,7세기의 한반도는 삼국시대였다. 뺏고 뺏기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 상황은 중국쪽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시대의 싸움속을 들여다보면 묘하게도 대륙(중국쪽)의 힘을 어떻게 이용하였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앞서 말했던 관산성 전투 이후의 상황을 이 책의 배경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중요한 건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백제의 흔적이 많지 않다는 거다. 나당 연합군에게 밀려 멸망했으면서도 끝까지 백제 부흥을 꿈꿨다던 백제의 유민들... 그랬기에 백제에 대한 관심과 상상이 날로 더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흐름처럼 언론지상에서 삼국시대를 오가는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일전에 읽었던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와 <일본에 고함>이라는 책의 내용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었다. <잃어버린 왕국>이나 <일본에 고함>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듯이 쉽게 찾을 수 없는 백제의 흔적을 우리보다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일본서기>가 한층 더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냈다는 <일본서기>가 비록 사료로서의 신뢰성이 적고 의도적으로 조작되었을 확률이 많다고는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게 솔직한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동안 백제의 패망에 대한 변명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의자왕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고.. 백제의 흔적은 대륙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일본 열도속에 숨겨진 백제의 수많은 흔적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게 아니냐고.. 1,400년동안 중국의 북망산에 묻혀있는 의자왕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는 저자의 말에 왠지 숙연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랬기에 일본의 도발이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무리일까? 속내를 들춰내어 우리로부터 비롯되어진 그들만의 역사를 인정하기 싫은 까닭은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 알기만 해서는 안된다.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와 같은 이들의 노력을 허투루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의자왕의 아버지 아좌태자로부터 시작되어지는 <태양의 제국>은 흥미로웠다. 새로운 각도로 다시 바라보게 된 의자왕의 일생은 험난했다. 백제의 역사속에서 잠깐 등장했던 계백보다도 적은 분량으로 그다지 명예롭지 못했던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 義 의롭고, 慈 자애로운 왕이라는 해석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퍼즐맞추기를 끝낸 느낌이다. 흩어져 있던 백제의 조각들을 끌어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흩어놓은 퍼즐조각을 찾아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 듯한 그런 느낌말이다. 책의 말미에 <일본서기>의 기록에 대하여 잠깐 언급되어져 있다. "<일본서기>로 연구하기 이전에 <일본서기>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대륙의 백제가 망하고 열도에서 다시 태어나는 백제.. 책의 이야기처럼 정말 일본은 그렇게 생겨난 것일까? 하지만 일본천황이 백제의 후손임을 인정했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굳이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아도 백제의 유민들이 건너가고 일찍부터 망명한 사람이 많았으니 역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던 백제의 흔적이 어쩌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일이니...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다하여 수많은 상상을 불러 올 수도 있었던 백제라는 주제가 흥미로웠다. 저자의 상상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어설픈 상상보다는 차라리 역사의 흔적을 쫓아가 준 것이 어쩌면 더 고마운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그랬다면,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말 그랬다면... 어찌되었든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한번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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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국 1
우영수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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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관련있는 전투를 찾아보면 관산성 전투, 황산벌 전투, 백강 전투 이렇게 세가지를 보여준다. 신라와 함께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신라 진흥왕이 다시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백제의 한강 유역까지 빼앗았던 싸움이 바로 관산성 전투다. 그 싸움으로 인해 백제의 부여시대를 열었던 성왕이 죽게 된다. 그 때가 554년이다. 그리고 660년에 백제와 신라는 황산벌에서 다시 만난다. 의자왕이 신라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함락하자 이에 놀란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어 백제를 공격하게 된것이 황산벌 전투의 원인이라면 원인일 것이다. 그 당시 의자왕이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신라를 압박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토록 잘 나가던 백제가 왜 망했을까? 실제 인구도 고구려나 신라에 못지 않았고,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 있어 나라살림도 어렵지 않았었다. 그것뿐일까?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쪽과도 교류을 하였음은 물론이고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일본과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었다. 그런데 왜? 그것은 간단하다. 의자왕 후반기에 왕권강화를 위해 무리수를 두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귀족간의 정치적 분쟁이 절대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게 백강전투다. 백강이라 함은 지금의 금강 유역을 말한다.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나당 연합군과 벌였던 전투가 백강 전투인데 백제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6,7세기의 한반도는 삼국시대였다. 뺏고 뺏기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 상황은 중국쪽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시대의 싸움속을 들여다보면 묘하게도 대륙(중국쪽)의 힘을 어떻게 이용하였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앞서 말했던 관산성 전투 이후의 상황을 이 책의 배경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중요한 건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백제의 흔적이 많지 않다는 거다. 나당 연합군에게 밀려 멸망했으면서도 끝까지 백제 부흥을 꿈꿨다던 백제의 유민들... 그랬기에 백제에 대한 관심과 상상이 날로 더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흐름처럼 언론지상에서 삼국시대를 오가는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일전에 읽었던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와 <일본에 고함>이라는 책의 내용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었다. <잃어버린 왕국>이나 <일본에 고함>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듯이 쉽게 찾을 수 없는 백제의 흔적을 우리보다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일본서기>가 한층 더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냈다는 <일본서기>가 비록 사료로서의 신뢰성이 적고 의도적으로 조작되었을 확률이 많다고는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게 솔직한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동안 백제의 패망에 대한 변명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의자왕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고.. 백제의 흔적은 대륙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일본 열도속에 숨겨진 백제의 수많은 흔적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게 아니냐고.. 1,400년동안 중국의 북망산에 묻혀있는 의자왕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는 저자의 말에 왠지 숙연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랬기에 일본의 도발이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무리일까? 속내를 들춰내어 우리로부터 비롯되어진 그들만의 역사를 인정하기 싫은 까닭은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 알기만 해서는 안된다.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와 같은 이들의 노력을 허투루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의자왕의 아버지 아좌태자로부터 시작되어지는 <태양의 제국>은 흥미로웠다. 새로운 각도로 다시 바라보게 된 의자왕의 일생은 험난했다. 백제의 역사속에서 잠깐 등장했던 계백보다도 적은 분량으로 그다지 명예롭지 못했던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 義 의롭고, 慈 자애로운 왕이라는 해석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퍼즐맞추기를 끝낸 느낌이다. 흩어져 있던 백제의 조각들을 끌어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흩어놓은 퍼즐조각을 찾아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 듯한 그런 느낌말이다. 책의 말미에 <일본서기>의 기록에 대하여 잠깐 언급되어져 있다. "<일본서기>로 연구하기 이전에 <일본서기>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대륙의 백제가 망하고 열도에서 다시 태어나는 백제.. 책의 이야기처럼 정말 일본은 그렇게 생겨난 것일까? 하지만 일본천황이 백제의 후손임을 인정했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굳이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아도 백제의 유민들이 건너가고 일찍부터 망명한 사람이 많았으니 역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던 백제의 흔적이 어쩌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일이니...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다하여 수많은 상상을 불러 올 수도 있었던 백제라는 주제가 흥미로웠다. 저자의 상상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어설픈 상상보다는 차라리 역사의 흔적을 쫓아가 준 것이 어쩌면 더 고마운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그랬다면,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말 그랬다면... 어찌되었든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한번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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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생물 콘서트 - 사진으로 보는 생태다큐멘터리
한영식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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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이었던가?  그 분때문에 유명해진 천성산 도룡뇽의 안부를 묻는다. 답은 안녕하시다, 였다. 산을 관통하는 터널때문에 우리의 자연이 훼손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우여곡절 끝에 터널은 완성되었고 그 후 언론지상에서는 더 많아진 개체수가 어쩌고 저쩌고, 반은 비난성의 글을 올린걸 본 적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단지 천성산 도룡뇽만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이 나라의 안하무인 격인 개발이 오죽했으면 그런 결단을 내려야 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야만 한다. 길을 잘못들어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던 천성산 터널은 정말 길었다. 그 긴 터널 공사로 인한 자연의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것이다. 얼마전 지켜보는 사람들의 귀를 의심하게 했던 단 한마디를 떠올린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수고에 대해 우리는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들려오던 슬픈 소식에는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바로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훼손시킨다는... 세계의 허파가 아마존이라면 우리의 허파는 바로 그곳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옛선조들조차도 지켜내기 위해 애를 썼던 그곳을 단한번의 반짝 효과를 얻기 위해 파괴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니 분통 터질 일이다. 일부 환경가들의 목소리만으로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숲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까마득하다. 개발에 앞서 환경오염이나 생태보존을 먼저 생각해야 함에도 숲의 중요성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를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척 외면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미 전세계적으로 숲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환경오염이나 생태파괴가 이젠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은 이 책이 보여주는 생물들이 만들어 준다. 어쩌면 이 지구의 주인은 인간보다도 저 많은 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자연일 것이다. 책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을 통해 소개되어지는 생물은 우리땅에서 살아가고 있거나, 살았던 것들이다. 생물다양성이 부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21세기.. 선진국에서는 이미 멸종위기의 생물을 복원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복원한다고 모두 성공할까? 그것보다는 그들이 살수있는 환경을 보전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은데..... 지금 살고 있는 생물들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최우선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서처럼 굳이 생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고마운 현상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속에서 자연환경으로 인해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이미 알고 있을테다.  생물의 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말과 같다. 숲과 나무는, 그들이 살 수 있는 깨끗한 물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인간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한번 길을 내면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환경조성이 불러온 끔찍한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 어릴 적의 쥐잡기 운동과 같은 인간 위주의 행정이 불러온 폐해는 엄청났다. 농약이나 제초제로 인해 멸종위기에 놓인 생물들도 많아졌고 예전에는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개체도 많다. 만약 평창 동계올림픽만을 위해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훼손시킨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다른데로 옮기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내뱉은 무책임한 말이다. 원시림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걸 그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시림을 훼손시키면서 옮겨진 생물들이 잘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니 속내를 감춘 위선자들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을 위해서 이 지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들이 살아남을 수 없으면 인간도 더 이상은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만 한다.

2000년 7월 금개구리 서식지 보호를 위해 올림픽주경기장을 다른 곳에 짓기로 결정했다는 호주..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금개구리는 아닐지라도 나 어릴적에는 자주 보았던 청개구리나 참개구리, 땅강아지같은 생물들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인공 수족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희귀생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나물 뜯는다고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가을이면 도토리나 밤을 줍는다고 또한번 들쑤신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잘못된 언론의 비중이 크다. 좋다는 말만 하기에 바쁘다. 거기에 가면 그렇게 좋은 것이 있으니 어서가서 당신도 한몫 챙기라는 말처럼 들린다.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래놓고는 아주 가끔씩 다큐나 스페셜이라는 포장을 씌워 희귀생물에 대한 방송을 내보낸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우리나라 매스컴의 가벼움은 정말 심각하다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속은 없고 껍데기뿐인 존재들이 너무 많다.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나라의 칡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일으켰다는데, 우리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의 침입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외래종만을 탓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욕심으로 인해 생겨난 일인데도. 일전에 읽었던 《풀들의 전략》에서 자신의 고향을 떠난 외래종이 왜 그토록이나 강해질 수 밖에 없는가를 알게 되었다. 인간도 낯선곳에 가면 적응하기 위해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하물며 식물이라고 다르겠는가 말이다. 식물뿐만이 아니다. 애완용으로 들여왔다는 붉은귀거북, 식용과 해부용으로 들여왔다는 황소개구리,육용과 모피용으로 브라질에서 들여왔다는 뉴트리아, 블루길과 배스, 사향쥐.... 그런데 모든 게 인간의 욕심으로 일어난 일들임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익을 위해 들여온 것들이 생각처럼 이익을 내지 못한다고 아무 생각없이 방사했던 결과가 생태계 파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숲과 하천만의 위기가 아니다. 갯벌 역시 빠르게 오염되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간척사업, 기름유출, 강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오염물질로 인한 심각함은 날로 심해져만 간다.

책을 읽다보니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는 하루살이가 물속에서 1~2년을 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단지 종족보존을 위한 그들의 춤사위였을 뿐이라는 걸.. 또한 모기유충이 물속에 유입되는 유기물질을 분해하여 수질을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꽃매미와 같은 해충 역시 특정식물을 대단위로 심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소나무재선충이 외래유충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천적이 없어 고민중이었는데 우리나라 무당거미와 같은 토종 천적들이 꽃매미를 잡아먹는다는 고마운 소식도 들려주었다. 인간에게는 좋다는 피톤치드가 다른 동식물에게는 피해를 끼친다는 걸 알고 있는지? 그렇듯 자연은 제 스스로 부조화를 조화롭게 맞춰가는 능력이 있다. 천이현상(-자연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으로 인해 찾아오는 변화라면 썩 좋은 일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에 의한 인공조림정책이 또하나의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생물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채 개발만을 능사로 친다면 자연이 우리에게 줄 것은 딱 한가지 뿐이니 명심, 또 명심해야 할 일이다.

골프장이나 스키장, 신도시 개발이나 도시정비와 같은 인간만을 위한 일에서 한발 물러서야 한다. 두더지나 땅강아지같은 토양생물이 사라져 낙엽조차도 썩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들이 낙엽을 흙으로 분해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까닭이다. 생물다양성의 파괴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렁이처럼 흙을 숨쉬게 만들어주는 토양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더 양보를 해야만 한다. 멧돼지가 출몰하고 고라니가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것도 인간의 욕심이 원인이었다. 새들이 전봇대에 둥지를 틀어 정전사고를 일으키게 된 원인도 인간에게 있다. 올레길 둘레길이 아무리 좋다한들 자연스럽게 생겨난 산길만 할까? 비록 다듬어지지 않아 울퉁불퉁하다 해도 사람에게도 생물에게도 모두 좋다는 흙길만은 못할 것이다. 산을 오를 때마다 새로 생겨나는 샛길을 보게 된다. 그걸 보면서 사람이 사람과 마주치는 게 싫다는 이기심때문에 그런거라고 나는 말하곤 했지만 서글픈 일이다. 지구 최대의 적이라는 인간.. 그 인간이 이제는 너무 많아져서 서로를 보면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로지 나 하나만의 편리를 위하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인류의 멸망은 이미 정해진 수순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도대체 꿀벌은 왜 사라진걸까? 인간이 자꾸 지구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일까? 아니면 생태계의 주인이라며 간섭을 해서일까? 앞으로 꿀벌뿐 아니라 또 어떤 생물 종이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날지 모른다. 인간이 계속 이기주의적인 태도로 생태계를 대하면 점점 더 많은 생물종이 사라질 건 분명하다. 우리가 쏜 화살은 언제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모든 건 지구의 운영자 인간이 자연환경을 무시한 채 편의만 축구한 결과다. (-157쪽)

꿀벌 실종은 생태계에 위험이 닥쳤다는 경고의 신호탄이다. 다음에는 어떤 해일이 덮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연에 아주 심각한 병이 발생했지만 인간들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 인간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걸 망각한 채 말이다, (-160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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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고함 -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 제작팀 지음 / 시루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윗층 이웃은 말도없이 내 것을 제 것이라 우겨대고, 아래층 이웃은 대놓고 내 것을 제 것이라 말하며 심심하면 뗑깡부리기가 일쑤다. 그것도 모자라 한지붕 밑에 사는 형제조차도 잡아먹지 못해 볼 때마다 으르렁거린다. 그런데 문제는 제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내 것이다, 내놔라 생떼를 쓰는데도 정작 주인은 한마디 말도 못하고 맨날 얻어맞기만 하니 그거 속터질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웃들의 횡포가 이해되기도 한다. 제것이면서도 제것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바보를 그냥 두는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제것이면서도 제것이라 큰소리치지 못하는 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누구 얘기냐?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얘기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얽히고 설켜 칡넝쿨처럼 꼬여가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칡넝쿨은 지역이 없다. 그저 힘센놈이 먼저 더 많은 넝쿨을 뻗어가는 게 상책이다. 무지해서가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제 주머니 채울 수 없는 일이라서, 건드려봐야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까, 저마다 큰 짐 떠맡게 되는 건 아닌가하고 몸 사린다. 그러니 알아도 모른 척 강건너 불구경이다. 다만 가끔씩 이런 말들이 어디선가 들려와 잊을뻔 한 일, 잊혀져가는 일들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니 내심 고마울 뿐이다.

이 다큐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안 사실도 많았지만 나에게는 오랜 숙적이자 오랜 벗일 수 밖에 없는 한일관계의 소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그 당시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부분들은 이 책을 통해 채울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아이가 울때면 어른들은 그 무서웠던 역사를 되새기곤 했을 것이다. 무심코 뱉어내던 '에비'라는 말이나 '무쿠리고쿠리' 인형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보게 된다. '에비'는 왜놈들이 전리품으로 죽은 사람의 코와 귀를 베어갔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무쿠리고쿠리'는 일본을 향한 여몽연합군의 무자비한 침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세계사를 돌아볼 때 아시아가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나섰던 것은 칭기즈칸때였다. 서구와는 달리 동양의 침략자는 지나쳐가는 곳마다 불사르고 모든 사람을 죽이는 그야말로 싹들이 전략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처참했을지는 영화의 한장면처럼 보여지는 일이다. 오래도록 기억되어지는 아픔은 그만큼 처절했고 끔찍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이 긴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에 와서까지 똑같은 강도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역사 바로 알기가 더 중요해지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몇 번을 들어도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역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조선과 일본의 태도였다. 서양의 증기선을 흑선이라 하면서도 그들의 기술을 배우고자 했던 일본과 달리 이양선이라 부르며 파괴하고 불살랐다는 조선의 상반된 모습은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죽했으면 정약용마져 혀를 찼을까? 책에서는 성리학에 도취된 우리의 선비들 중 분연히 일어섰던 의병장을 두고 성리학을 기초로 한 忠의 사상때문이었다고 좋게 말하고 있지만 솔직히 그건 아닌 듯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용학파가 득세를 했어야 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기에 결과가 만들어진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수순으로 두 나라의 역사를 되짚어준다. 크게 다섯개의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 인연, 적대, 공존, 변화, 대결의 구도이다. 인연(因緣)에서는 떼려야 땔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말해준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던 그 인연의 고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적대(敵對)편에서 비극적 한일 관계 2000년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바로 여기서  여몽연합군으로 인한 그 아픈 기억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다. 공존(共存)에서 보여주고 있는 공생의 법칙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평화가 또다른 평화를 불러왔다면 더없이 좋았을테지만 사람은 욕망을 쫓아 달려가는 동물이다보니 그럴수가 없는 것이다. 변화(變化),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다.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었던 조총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양선을 통해 뚜렷하게 선을 갈라버린 조선과 일본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때 만약 우리도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했다면... 대결(對決), 받아들이고 내몰고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만 보다라도 그 때의 실수가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왔는가는 말 할수록 입만 아프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책표지의 말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역사는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의 싸움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지만 일본에서는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기억이 역사를 구성하지만 때로는 역사가 기억을 지배하고, 그 역사가 현실을 지배할 수도 있기에... 그랬기에 책속에서 증언하고 있는 일본의 목소리가 새삼스럽다.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침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를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역사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모르는 내가 들여다보아도 모든 것은 반복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지지 않도록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일들을 확실하게 기억하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역 사 바 로 알 기, 정말 필요하다!!! 신숙주가 죽으면서까지 유언으로 남겼다는 말을 생각해본다. "원컨대 국가에서 일본과 화친을 끊지 마소서".. 그 큰 뜻이야 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만 이웃으로 지낼 수 밖에 없는 현실만큼은 확실하다.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울림을 주는 목소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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