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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박물관 - 글누리의 모음
박창원 지음 / 책문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일전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어느 연예인이 '엄친'이 뭐예요? 하고 묻는 걸 보았다. 주변 사람 모두 그것도 모르냐며 큰소리로 가르쳐준 말은 '엄마친구' 였는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질문했던 사람의 그 다음 말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나는 '엄청 친한'이란 말인줄 알았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친'이란 말 하나만 가지고도 앞의 두가지 뜻뿐만 아니라 또다른 뜻으로도 쓸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왜 모른척해야 했을까 싶어 씁쓸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그렇게 말을 줄여쓰는 걸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양 쓰고 있다. 사실 나부터도 요즘 쓰는 줄임말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우가 많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을 줄여서 쓸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한두번 해 본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길을 보여줘야 할 언론사까지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앞장서듯 하는 작태에 나는 가끔 분노마저 생겨난다. '슈스케'가 뭔지를 몰라 무안을 당했던 경우도 있었다. (슈스케가 슈퍼스타케이의 준말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만해도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묶음형 가수이름인 줄 알았었다.) IT세대라는 젊은이들이야 그렇다쳐도 우리는 왜 언론사들마저 그렇게 써야만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나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라지만 씁쓸한 이야기하나가 있다. 광화문 거리에서 주위를 둘러보시던 세종대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도대체 여기가 어느 나라인고?
각설하고...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흔히 듣는 말로 한글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글이니, 아름다운 글이니들 하지만 왜 그런건지 자세히 알고 싶었던 까닭이다. 수박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글 박물관이라는 제목에 유혹을 느꼈다는 말이다. 한글 박물관이라~~ 무엇을 보여줄지 여느 때의 답사처럼 작은 설레임도 있었다. 박물괸에 들어서면 예상했던대로 문자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문자가 있는지, 말과 글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문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며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글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을 돌아보는 동안 새로운 시각이 열리기도 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중국의 영향이 우리에게 얼만큼이나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알게되었던 시간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로 시작되어지는 '훈민정음의 예의' 편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볼 수 있었던 경우는 없었던 듯 하여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책을 읽기 전이나 읽으면서도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보급되었으며 어떻게 확산되었는가보다 더 궁금했던 건, 한글이 보급된 후 그토록 불쌍히 여겼던 백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가였다. 많은 방법으로 한글을 보편화시키기 위해 애를 썼던 건 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건 한글보급 후의 변화였다. 소설적으로 보여지는 게 아닌 백성들의 실제적인 삶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을 통해 그 궁금증이 해소되진 못했다. 한글 박물관을 한바퀴 돌아본 후의 느낌은 좀 그랬다. 좋은 면만 보고자 했다면 굳이 답사를 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한글 박물관을 통해 독특한 우리문자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막연했던 느낌이 조금은 가까워진 듯 한.
책장을 넘기다 눈이 동그래졌던 부분이 있다. 성종 23년에 간행되었다던 일본어 학습서였는데 일본어음을 표기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에도 이렇게 (보기좋게 정리한) 외국어 학습서가 있었구나 싶었다. 물론 역관의 손을 거쳐 펴낸 책이긴 하지만 정말 멋진 일이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말과 글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많은 말과 글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도 묵과할 수 없는 일임엔 분명하다.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말과 글에 우리의 한글이 꼽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우리글자의 탁월함을 받침해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박물관을 나서기 전에 다시한번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음미해본다. 한글, 아자! 아자! /아이비생각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의 기원은 대략 세 가지다. 서유럽과 북미 등에서 사용되는 로마 문자와 옛 소련 지역에서 사용되는 키릴 문자, 그리고 서남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사용되는 아랍 문자, 인도 문자,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사용되는 문자 등은 모두 이집트 문자에서 갈라져 나온 문자다. 이집트 문명과 함께 발생한 이집트 문자를 인근 지역에서 차용해 변화시킨 것을, 다시 다른 민족이 도입해 자기 나름대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여러 문자로 정착한 것이다. 이집트 문자 외에 여러 문자의 기원이 되는 것은 漢字다. 현재 중국 및 인근 지역에서 사용되는 문자들은 한자나 한자에 기원을 둔 문자들이다. 마지막 하나는 우리민족이 사용하는 한글이다. 이 문자들 가운데 문자를 만든 원리와 과정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한글뿐이다. 인류가 사용하거나 사용했던 수백 가지 문자 가운데 그 기원과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문자는 한글뿐이고, 또 그 기원과 과정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유일한 책이 <訓民正音>이다. (-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중에서. 18-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