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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평점 :
'ㅁ'자형이니 'ㄷ'자형이니 'ㄴ'자형이니 하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는 건 우리의 옛집을 말할 때다. 개인적으로 나는 'ㅁ'자형의 집이 참 좋다. 높지않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그 아늑함이 좋고, 크진 않아도 가운데 떡 하니 들어앉은 마당과 그 마당안에 들여놓은 하늘이 좋아서다. 들어서면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나를 꼬옥 안아주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참 좋았다. 닫힌 듯 하면서도 열려있는, 막힌 듯 하면서도 막히지 않은 그 분위기는 내게 항상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옛집에 대해 어떤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한번도 그런 옛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하게 찾았던 고택에서의 그 안온함을 나는 잊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우리의 옛집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설혹 약간의 거스름이 있었다해도 그 안에 나무를 심거나 물길을 냄으로써 자연을 들여놓았다는 말도 한다. 많이는 찾아보지 않았으나 그간에 찾아보았던 옛집들은 정말 그랬다.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 아산 외암마을의 송화댁과 건재고택이다. 송화댁 담장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탄성을 질렀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그 작은 물길하며 자연속에 조용한 움직임으로 오롯이 들어앉은 두 안채의 어울어짐은 신비롭기까지했다. 그런가하면 건재고택의 정원은 정말 끝내준다. 하나의 이상향처럼 꾸며져있는 그 모습에서 경건함마저 느껴졌다면 거짓일까? 하나 하나의 가옥이 저마다의 특징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전체의 분위기가 참으로 포근했었다는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니 하는 말이다.
그렇게 느낌이 좋아 찾아가던 옛집을 이제는 철학을 담아 느껴 보라 한다. 아직 그 건축물의 생김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철학까지?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옛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어떤 철학을 담아두었을까? 나같은 문외한이 그런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뻔한 이친데도 욕심을 부려보았다. 내가 찾아갔거나 아직은 방문예정인 그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철학은 무엇일까? 문득 알고 싶어진거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그 옛집이 안고있던 분위기만 되새겨 생각났을 뿐이다. 안타까움에 내내 속을 태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진리를 다시 받아들여야 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내게 또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이 책에 감사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옛집을 통해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보게 해 주었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집을 대했는가를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지난번 <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라는 이용재님의 책을 보면서 이 곳만큼은 꼭 가보리라 했던 집을 다시 보게 된다. 獨樂堂이다. 대청에 앉아서도 시냇물을 볼 수 있게 담장에 창을 냈다던 그 집... 주변의 바위마다 澄心臺, 濯瓔臺, 詠歸臺, 觀魚臺, 洗心臺라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그 말속에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철학의 꼬투리를 하나쯤 잡아본다면 억지일까? 마음을 맑게 해주니 징심대요, 바람을 즐기니 탁영대요, 돌아감을 노래하니 영귀대, 물고기 노는 것을 바라보니 관어대, 마음을 깨끗이 해주는 세심대라는 풀이가 정말 그럴듯 하게 느껴진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속에서 修身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까닭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켕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느 한부분일테지만 禮學이라는 큰 틀만으로 바라본 옛집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그런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했다. 책을 통해서 옛집의 안온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따라가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다. 옛집을 찾아가면서까지 복잡한 정치나 권력을 쫓는 인간의 욕심을 봐야한다면 옛집을 찾는 답사길이 무척이나 더디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을 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느끼는 바가 다르니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인 것이다. 그러니 옛집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을 내가 빌려보았다는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문득 양동마을 풍경이 떠오른다. 좀 더 높은 구릉으로 올라앉았던 양반의 저택과 그 저택에 숨겨진 집안의 알력... 그나저나 나는 獨樂堂에 언제나 갈꼬? / 아이비생각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