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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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라 반가웠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거나 적게는 한 두살, 많게는 너댓살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사람에게 괜스레 친밀감이 생겨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아마도 서로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는 까닭이리라. 작가는 글로써 대중과 이야기하고, 연사나 강사는 말로써 대중과 이야기 한다. 그런데 요 얼마전 글로써 대중과 만나야 할 사람이 말로써 대중과 만나며 세간의 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글쓰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쉬울수도 있었겠구나...' 싶었지만 보기에 조금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어느정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사람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부터가 어느정도는 편협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을 다시한번 떠올리면서 그의 말에 경청해보기로 한다.

 

말 그대로 터질듯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약간은 생소한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왠지 소설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부드럽지가 않았다. 읽으면서도 뭔가 불편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책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話者 류와 요셉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곰삭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책장을 덮어야 할 지점에서 만난 작가의 말을 통해 아하! 그런거였구나, 싶었다. 아픈 내면을 건드린다는 건 확실히 불편하다. 우리가 애써 감추고 싶어하는 것들을 은근슬쩍 끄집어내서 보여주고자 하는 상황,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렇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 관계의 틀을 형성한다. 관계... 그 말속에 정겨움과 나눔이 들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냉혹하다. 계산되어진 마음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감추고 싶어하는 불편한 진실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아닌 척,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게 바로 지금의 우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그야말로 태연하게 풀어놓고 있다. 저마다 속내를 감추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저마다 외롭다. 그래서 저마다 쓸쓸하다. 그래서 저마다 찾아 헤맨다. 따스함을.... 별 것 아닌 것에도 큰소리로 화를 내고, 별 것 아닌 것에도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약한 사람일수록 강한 척 한다는 모순을 보게 된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많이 가진 척 한다는 말처럼. 내 안의 모든 걸 드러내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강한 은유의 장벽을 치는것도 서글픈 일임엔 분명하다.

 

그 관계의 틀속에서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이고 잃는 건 무엇일까? 자로 잰 듯이 사는 사람도, 헐렁하게 대충대충 사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고통과 상실감 하나씩은 안고 살아간다. 가족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가면서 감내해야할 것은 누구나 다 똑같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말이 '평행선'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평행선 위를 걸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더 멀리가지 않으나 더 가까이도 할 수 없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책에 빠져들수록 조여오는 아픔이 느껴졌다. 오래전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흘렸던 그 때처럼... 류라는 여자와 요셉이라는 남자가 감추어둔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뜨끔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봐주었으면 하는 모순,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들켰으면 하는 모순,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목을 빼고 있거나 곁눈질하는 모순,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하면서도 말해야 알 수 있는거라고 하는 모순,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모순, 사랑이라는 자신만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모순, 있는 척, 없는 척, 모르는 척, 아닌 척, 태연한 척....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일 뿐이다.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나로인해 상처입은 마음이 있다면 이제는 그 상처, 아물었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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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6-10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h님 얘기 듣고 읽고 싶었는데,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모순,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일 뿐이다, 살아가는 방식에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없다는 말에 무척 공감해요.

은희경이 누군지도 모르고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음에도)예전에 '마이너리그'를 참 재미있게 읽었는지라 좋은 기억이 있어요.

아이비 2012-06-11 12:10   좋아요 0 | URL
가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저를 돌아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역시 내멋대로였구나 싶을 때가 많았답니다.
다녀가신 흔적으로 남은 시간 행복하겠습니다.
 
이제, 마음이 보이네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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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그림책이 있었다. 오래전 '이건 뭐야?'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이외수의 그림책이다. 그 책의 제목은 <사부님 싸부님>.. 하얀 올챙이와 까만 올챙이의 선문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는 책. 아주 간단하게,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처럼 세상의 진리를 제자에게 말해주던 싸부님의 그 말씀이 너무 좋았었다. 선하나 그어놓으니 이편과 저편이 되었고, 위 아래의 세상으로 구분지어졌다. 이편으로 오면 내편, 저편으로 가면 적? 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버리는 愚問과 賢答이 그 책속에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뭐 그런류의 우리 삶의 모습을 풍자했던 그림책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책을 보면서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나'였다. '나'라는 존재에 의해 모든 것이 시작되어지고, 어떤 모양이 되었든 하나의 틀이 만들어진다는 거였다. 선을 그은 것도 '나'였으며, 그 선을 핑계삼아 니편 내편을 가르는 것 또한 '나'의 잣대라는 거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나'를 잊는다. 그 '나만의 잣대'를 만들어놓았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은채 오로지 상대방만을 탓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힘겨운 일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돌아보았으나 바꾸지 못하는 자신을 어쩌면 더 힘겨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말한다. 말은 쉽다고.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말은 쉽다'고 말을 하면서 한번이라도 나를 바꾸기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 라고...

 

책을 펼치고 일반적인 수순을 밟지 않았다. 처음과 끝을 가장 먼저 읽어보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먼저 읽었다는 말이다. 저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무엇을 알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답을 찾았는지... 크게 다섯장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지만 첫장부터 강하게 한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당신을 놓아주세요"...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나'를 놓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었다. 산다는 게 그리 녹녹치 않은 까닭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얼마전 우연히 마주쳐 내게 너무나도 큰 의미를 남겨준 한 줄의 문장이 생각났다. '꽃은 져야 아름답다' 는... 꽃이 져야만 거기에 열매가 맺힌다는 그 진리를 나는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었다. 그 평범함을 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일까 싶었다.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고, 움켜쥐려 할수록 가질 수 없는 것이 욕심이며 집착이라는 말을, 단지 '이론'일뿐이라고 외면해버렸던 것은 누구일까?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기만을 바라나요?

무엇을 찾고자 합니까?

원래 당신의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안의 틀만 허물면 하나가 됩니다. 

- 책 중에서 -

 

2012년이 시작되고 벌써 반을 살았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맨처음  받았던 문자메세지를 다시 떠올렸다. 네잎크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면 세잎크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랍니다. 일년내내 행복하시길요... 하고 보냈던 문자의 답변이었는데 그 문자를 받고나서 기분이 참 좋았었다. 발 밑을 보세요. 네잎보다는 세잎을 달고 있는 크로버가 더 많지요. 그러니 당신 주변에도 늘 행복이 가득하답니다. 잊지 마세요. 행복이 늘 당신곁에 있다는 것을.  한동안 그 문자메세지를 지우지 않았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였습니까?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는 물음에 톨스토이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겐 가장 중요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라고.. 책을 읽으면서 작은 평온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가식일까?  사실 작가의 글에는 대립이 없어 참 편하다. 니편 내편을 가르지않아 좋다는 말이다. 일상속에서, 흔한 것들속에서 작가가 찾아내는 행복이라는 이름은 내게도 있었을 것인데 나는 보지 못했으니 분명 나보다 한수 위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하나였지만 인간의 잣대로 인하여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된 그 '무엇'에 대한 아우름이 글을 대할 때마다 내게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책을 향해 주저없이 손을 내밀었던 이유도.

 

이 책, <이제, 마음이 보이네>는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가의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종교색을 떠난 작가의 진심이 느껴져 신문의 칼럼도 모두 오려 두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나와 소장할 수 있게 되니 개인적으로는 참 좋다. 먼저 나왔던 <현문우답>도 참 좋았었다. 그리고 나도 묻고 싶었다. "이제, 마음이 보이냐" 고. 그런데 아직 "이제, 마음이 보이네" 라고 대답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마음을 내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작가의 말처럼 나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책속에 함께 어울어졌던 사진들이 전해주었던 그 느낌을 잊고 싶지 않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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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비자 법法 술術로 세상을 논하다 만화로 재미있게 읽는 고전 지혜 시리즈 1
조득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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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를 살펴보면 春秋戰國時代 가 있었다. 周나라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기전까지를 서주, 이후를 동주시대라 하는데 그 동주시대가 시대시대로 나누어 진다. 周나라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때가 바로 중국 전통 사회의 기본적인 성격이 이루어진 시기라고 하니 중국으로 치면 상당히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때에 제자백가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諸子는 여러 학자를, 百家는 수많은 학파를 뜻하는데 春秋戰國時代 에 활동했던 많은 사상의 학파와 학자들을 가르키는 말이기도 하다. 쉽게 얘기하자면 사회적인 혼란속에서 저마다의 세력을 키우며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실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했고, 그런 인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음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가, 도가, 묵가와 같은 학파들이 등장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知彼知己百戰不殆' 였던 것이다. 그 혼란의 와중에 韓非子가 있었다.

 

'한비자, 法術로 세상을 논하다' 라는 제목만 보고 얼핏 생각한다면 일종의 군주론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군주 혹은 정치를 하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님을 금방 눈치챌 수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책들이 '古典'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다가오지만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새롭게 해석되어진 '古典'들이 많이 눈에 띈다. 다행히 이 책은 만화로 되어있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리 녹녹치 않다. 원칙을 고수하면서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게 쉽지 않듯이 말이다. 먼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를 지금의 세상속에 풀어놓아도 어색하지 않을만큼의 각색도 필요할 테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공자왈... 맹자왈... '古典' 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어쩐지 따분하다. 하지만 이 책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따분함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인간의 내면을 파헤쳐 그 속을 정확하게 끄집어내는 지독한 '法'과 '術'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14쪽에 있는 '시대와 더불어 사물은 변하고 사물의 변화에 따라 그에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는 말이 가슴에 남는 것은, 아마도 지금의 현실과 빗대어 옛이야기를 펼친 저자의 배려(?)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그의 책을 읽고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는 진시황. 한비는 비록 동문수학했던 진시황의 명재상 '이사'의 기우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하고 싶어했던 말들은 그저 허울과 형식에만 매달린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戰術'과 '戰略'이라는 말이 있다. '術(-재주 술)'은 어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인 반면, '略(-간략할 략)'은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니 전술보다는 전략이 좀 더 큰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단이 없다면 아무리 큰 전략이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을테니 그 재주가 더 중함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전술을 이야기하고 있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다지 많이 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옛이야기라고해서 마냥 진부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진부함속에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이 들어있을지 모를 일이니. 어른이 읽으면 딱 좋을 '만화로 된 古典'이 시리즈로 나올 모양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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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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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역사'라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역사라는 게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고 고리타분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지. 딱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것도 없이 바쁘게 살아야 했던 까닭이리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사라는 거창한 말보다도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는거라고 말한다면 좀 더 가깝게 느껴질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속에는 표지에서 말하고 있듯이 근대 조선인들의 사생활을 그리고 있다. 광고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알아보고, 트로트라는 장르를 통해 대중음악속을 잠시 들여다보기도 한다. 라디오나 신문을 통해 지금은 인터넷을 쓰고 있는 우리의 변화된 삶을 짚어보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그다지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의 문화재에 관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방송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까닭인지 주고받는 말을 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봐야지 했었는데 여건이 허락칠 않아 놓친 부분이 안타까웠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한다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부분도 없지않아 있었다. 그래서 마져 챙겨보지 못한 부분들을 책으로 다시 만나고 싶었다.

 

광고편을 다루었던 1부는 여러가지로 씁쓸한 맛을 느끼게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우량아 선발대회라는 것도 있었다. 그저 통통한 얼굴로 방글방글 웃는 아기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아픔이 있을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자녀를 우량아로 잘 키워야한다는 말을 만들어낸 이유가 잘 키워서 전쟁터로 보내자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속내가 감춰져 있었다는 글을 보고나니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토실토실한 아기 얼굴만 보며 좋아라 했을 것이다. 일제치하에서 변화되어야만 했던 우리의 문화는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근대화라는 물결은 일본을 통해 들어왔던 것일까? 그건 아닐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어느정도는 그랬을거라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책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광고와 지금의 광고를 비교해보아도 약간의 형식만 달라졌을 뿐 그다지 변한 것은 없는 듯 하다. 그 속에 감춰둔 아픔이야 끄집어내지 않는 한 우리에게 느껴지지 않을 아픔일테니 말이다.

 

2부의 대중음악편에서는 광고를 통해 아련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뽕짝이든 포크송이든 열심히 듣고 따라 불렀던 노래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대충은 이해할 수는 있다는 말에 어느정도는 공감한다. 시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유행하는 노래는 다르다. 그러니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노래속에 담긴 시대정신만큼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리라. 노래를 들으며 뭉클해질 수 밖에 없는 세대의 감정이 그 속에 묻혀 있을테니 말이다. 시대에 따라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을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게다. 트로트와 엔카를 비교했던 부분은 흥미로웠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니 보여줄 수 없었다는 트로트세대. 그래서일까? 트로트가 인기있는 세상은 너무나 좋지 않은 세상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간송 전형필선생을 앞세우며 우리 문화재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간송선생같은 분들이 많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책속에서도 언급되어진 말이지만 약탈당한 문화재를 보며 과연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면 저만큼이나 보존되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미련은 가질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많은 문화재를 연구하고 보존하며 제대로 알고자하는 우리의 자세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각 장의 끝에 붙어있는 '역사토크 만약에!' 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들의 말처럼 만약에!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찌 아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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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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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일본소설을 읽는다. 어쩌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나를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조차도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던 책... 습관처럼 작가 이력을 찾아보았다. 48세의 이른 나이에 심부전으로 사망했다는 말이 보인다.  문득 우습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그 작가, 꽃아래 봄에 죽었을까?  책표지의 이미지가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그런 질문을 생각해냈는지도 모르겠다. 아련한 기억과 현재가 함께 교차하는... 하지만 우리의 삶속에는 현재의 시선보다 아련한 기억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가만히 중얼거려본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왠지 쓸쓸했다. 스산한 봄... 그런 느낌이었다는 말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그렇게 외로운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뒷골목의 맥주바가 배경장소다. 거기 모이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짧은 하이쿠가 각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어주는 듯 하다. 하이쿠... 일본 시문학의 일종. 5,7,5의 운율로 읊는 정형시. 일반적으로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인 키고(季語)와 구의 매듭을 짓는 말인 키레지(切れ字)를 가진다. 여운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라고 되어 있다. 이를테면 우리의 七言絶句와 같은 것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하이쿠의 음률이 사실상 내게는 전해져오지 않는다. 그만큼 일본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겠거니 한다. 시작되어졌나 싶으면 아주 짧게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런데도 묘하게 처음과 끝이 맞물려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런 단편모음집이 조금은 껄끄럽다. 읽고나서도 무언지 알 수 없는 갈증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채워지지 못한 어떤 감정이 못내 나를 아쉬워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 손을 뻗은 건 순전히 제목탓이다.)

 

맥주바의 주인인 구도의 추리력은 정말 놀랍다. 펼쳐지는 여섯 가지 이야기속에서 주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기가 막히게 수수께끼를 해결해낸다. 누군가 흘려놓은 단서를 슬쩍 줍기도 하고, 보일 듯 말 듯 던져놓은 미끼를 잘도 찾아낸다. 그런 그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참 많은 사람의 사연을 들어주었겠구나, 참 많은 삶의 형태를 바라보았겠구나 싶다. 누군가를 푸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그런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마스터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맥주바 '가나리야'에 모이는 사람 모두가 제각각 탐정이긴 하다.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강하게 끌려들 만한 요소는 없어 보인다. 한 대 얻어 맞을 반전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일뿐이다. 무겁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묘한 여운을 남긴다. 여섯 가지 이야기중에서 세번째로 들려주었던 '마지막 거처'가 가장 강한 분위기로 나를 이끌었다. 노부부가 삶의 마지막 거처로 삼았던 그 강의 끝줄기, 낡은 오두막, 그리고 반갑지 않은 손님 카메라맨.. 사진전의 포스터가 없어져버린 이유속에서 나는 우리 삶의 모습을 찾아낸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포스터가 없어져 텅 비어버린 벽면처럼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당연히 긴장감이나 전율을 느끼고 싶었다. 추리소설이었으니까. 그런데 잔잔한 삶의 한 모퉁이를 돌아 나온 기분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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