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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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자형이니 'ㄷ'자형이니 'ㄴ'자형이니 하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는 건 우리의 옛집을 말할 때다. 개인적으로 나는 'ㅁ'자형의 집이 참 좋다. 높지않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그 아늑함이 좋고, 크진 않아도 가운데 떡 하니 들어앉은 마당과 그 마당안에 들여놓은 하늘이 좋아서다. 들어서면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나를 꼬옥 안아주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참 좋았다. 닫힌 듯 하면서도 열려있는, 막힌 듯 하면서도 막히지 않은 그 분위기는 내게 항상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옛집에 대해 어떤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한번도 그런 옛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하게 찾았던 고택에서의 그 안온함을 나는 잊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우리의 옛집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설혹 약간의 거스름이 있었다해도 그 안에 나무를 심거나 물길을 냄으로써 자연을 들여놓았다는 말도 한다. 많이는 찾아보지 않았으나 그간에 찾아보았던 옛집들은 정말 그랬다.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 아산 외암마을의 송화댁과 건재고택이다. 송화댁 담장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탄성을 질렀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그 작은 물길하며 자연속에 조용한 움직임으로 오롯이 들어앉은 두 안채의 어울어짐은 신비롭기까지했다. 그런가하면 건재고택의 정원은 정말 끝내준다. 하나의 이상향처럼 꾸며져있는 그 모습에서 경건함마저 느껴졌다면 거짓일까? 하나 하나의 가옥이 저마다의 특징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전체의 분위기가 참으로 포근했었다는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니 하는 말이다.

 

그렇게 느낌이 좋아 찾아가던 옛집을 이제는 철학을 담아 느껴 보라 한다. 아직 그 건축물의 생김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철학까지?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옛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어떤 철학을 담아두었을까?  나같은 문외한이 그런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뻔한 이친데도 욕심을 부려보았다. 내가 찾아갔거나 아직은 방문예정인 그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철학은 무엇일까? 문득 알고 싶어진거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그 옛집이 안고있던 분위기만 되새겨 생각났을 뿐이다. 안타까움에 내내 속을 태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진리를 다시 받아들여야 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내게 또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이 책에 감사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옛집을 통해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보게 해 주었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집을 대했는가를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지난번 <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라는 이용재님의 책을 보면서 이 곳만큼은 꼭 가보리라 했던 집을 다시 보게 된다. 獨樂堂이다. 대청에 앉아서도 시냇물을 볼 수 있게 담장에 창을 냈다던 그 집... 주변의 바위마다 澄心臺, 濯瓔臺, 詠歸臺, 觀魚臺, 洗心臺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그 말속에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철학의 꼬투리를 하나쯤 잡아본다면 억지일까?  마음을 맑게 해주니 징심대요, 바람을 즐기니 탁영대요, 돌아감을 노래하니 영귀대, 물고기 노는 것을 바라보니 관어대, 마음을 깨끗이 해주는 세심대라는 풀이가 정말 그럴듯 하게 느껴진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속에서 修身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까닭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켕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느 한부분일테지만 禮學이라는 큰 틀만으로 바라본 옛집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그런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했다. 책을 통해서 옛집의 안온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따라가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다. 옛집을 찾아가면서까지 복잡한 정치나 권력을 쫓는 인간의 욕심을 봐야한다면 옛집을 찾는 답사길이 무척이나 더디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을 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느끼는 바가 다르니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인 것이다. 그러니 옛집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을 내가 빌려보았다는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문득 양동마을 풍경이 떠오른다. 좀 더 높은 구릉으로 올라앉았던 양반의 저택과 그 저택에 숨겨진 집안의 알력... 그나저나 나는 獨樂堂에 언제나 갈꼬?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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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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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럴 것이다. 유홍준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우리는 문화유산을 떠올리게 되는... 아는 만큼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던 날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많은 사람이 답사라는 말을 어색해하지 않는 듯 하다.  '人生到處有上手' 라는 말로도 유명해졌다.  인생길에서 숨어있는 고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는 의미라는데, 저 글을 볼 때마다 엉뚱하게도 나는  '三人之行 必有我師' 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다는 공자의 말이 있듯이 함께 생각해 볼 만한 學問의 이치일터다. 답사를 하면서 내가 배웠던, 지독히도 아프게 다가왔던 화두중의 하나다.  정말 그랬다. 아는 만큼 보였고, 내가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만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경계했다. 수많은 답사기를 보면서 그가 느꼈던 것에 나의 감정을 일치시켜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에는 많은 上手들이 있어 그들이 주는 느낌 또한 각각이다. 그러니 단지 참고할 뿐이다. 저렇게 앞서 나가는 발길이 있고  먼저 느끼는 시선과 가슴이 있어 그 느낌이 내게도 전해질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건 어쩌면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답사 초보자다보니 기존의 정보에 많은 의지를 하게 된다.  알고가야 보이는 까닭이다. 알고가야 하나라도 더 찾아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언제쯤이면 저 高手들의 경지를 이해하게 될까?  우연한 기회에 나를 찾아온 이 책은 나에게 색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동안의 답사에 대한 일종의 회상형식처럼 보여 다가서기가 쉬웠다고 말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답사의 高手도 이렇게 여러 각도로 보는구나 싶었다.  그의 일상에서 볼 수 있었던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참 좋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또다른 욕심을 볼 수 있었다.  욕심이란 게 사랑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찾아가  시선 마주치고 가끔은 만져도 보고 근처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도 하나쯤 들어보고... 그러고 싶은 곳이 너무나도 많다. 아주 작은 것조차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게 나만의 욕심인데 늘 아쉬움만 남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답사기는 꾸미지 않아 좋았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굳이 멋지게 보이려하지 않았는데도 멋지다. 자신이 해왔던 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 얼만큼이나 진행되어졌는지 궁금한 일, 이렇게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되던 일, 끝내는 하지 못해 미련을 남겨두게 된 일... 소소한 그의 생각과 일상을 이 책속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뜬금없지는 않다. 말의 의미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것과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곳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은 많다.  저자의 말처럼上手나 高手는 유명하지 않아도 된다 . 이것이다 콕짚어 말하지 않았어도, 세상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퍼뜨리지 않았어도 내게 전해주는 느낌은 분명 다를테다. 유명해서 오히려 손해보는 곳도 사실은 많다. 제 나름대로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꾸며진 모습만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보여지는 그런 곳들 말이다. 이름이 나지 않아 제 실속을 챙길 수 있었던 경우도 종종 있다. 가끔 그런 곳엘 들르는 기회가 오면 횡재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유명해지기 위해 땅을 헤집어 흠집을 내고 생뚱맞은 옷으로 갈아입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진정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이 부러웠다. 갈 길이 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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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락 - 즐기고(樂), 배우고(學), 통(通)하다
윤승일 지음 / 중앙위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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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조금은 뜨악한 마음이 앞섰다. 이 책, 너무 딱딱한 거 아니야? 싶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樂' 이라는 딱 한 글자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했다.  간단하게 즐기고(樂), 배우고(學), 통(通)하다 라는 문장을 앞세운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사실 '古典' 이란 말은 오래된 냄새를 풀풀 풍긴다. 그래서 왠지 머리 아플 것 같고, 그래서 왠지 가까이 가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이 책, 복잡한 설명 다 집어치웠다.  정말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삶속에 흥건하게 젖어들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풀어놓고 있다. 漢字가  어려울까봐 친절하게 글자마다 풀이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사자성어라고 말하는 고사성어는 주로 중국의 古事에서 유래된 내용들이다. 그 짧은 말속에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 또는 심리와 같은 것들을 숨겨놓았다. 그래서인지 대화중에 이런 고사성어를 잘 버무려 말하는 사람이 달리 보이는 것도 이유가 있다. 책을 펼쳐 목차를 훑어내리다가 입이 딱 벌어졌다. 이 책속에 담긴 古事가 340여개나 된단다.  얼핏 생각하면 따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자기계발서의 뻔한 말에 비하면 一石二鳥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게다.

생겨난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에게 모범이 될 만한 것들을 말하는 게 '古典' 이라고 한다. 문학도 있고 예술도 있다. 오랜기간동아 꾸준하게 팔린다는 'steadyseller' 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각 나라마다 내세우는 고전도 있을 것이고, 동서양의 고전이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전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슨 통과의례처럼 읽어야했던 세계고전소설도 있긴 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학생들이 읽어야 한다는 한국고전소설도 만만치않게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는 그야말로 '故事成語', 즉 중국의 古事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漢字가 따분하고 관심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풀이하는 내용을 옛날 이야기 삼아 들어준다면 좋을 듯 하다.

솔직히 나는 중국고전을 그다지 많이 읽지 못했다. 겨우 몇 권쯤? 그것도 쉽게 풀이해 놓았다는 책만을 보았을 뿐이다. 숱한 책중에 <논어>, <사기>, <후한서>, <장자>, <삼국지>등에서 추려냈다고는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기는 있다.  <삼국지>나 <초한지>와 같이 소설로 다가왔던 책만큼 쉽지 않다는 게 맞는 말일 게다. 그 많은 고전이 우리에게 삶의 좌표를 제시해주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처세술을 가르쳐준다해도 그 뜻을 음미하고 새기지 않는 한 내 것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없었다. 더딘 시간이었지만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렇게 읽었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 실감나게 옛날이야기 하듯이 구수하게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피식 웃어보기도 했다. 

"옛날 옛날에~~" 처럼 비록 정감어린 말투로 시작되지는 않지만 새길수록 멋진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까? 그리고 그 문제의 몇 퍼센트쯤을 해결하며 살아왔을까?  예정에도 없었던 문제와 선택앞에서 얼마나 많이 갈등하고 아파하고 눈물흘리며 가슴을 쥐어 뜯었을까?  그런 순간들을 얼마나 원망했었는지... 그럴때마다  무언가 하나쯤 위안 삼을 수 있는 게 필요했을테다. 그럴 때 이런 책속의 말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면 그것도 괜찮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漢字와 가까이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아울러 그 글자의 유래를 알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地名에 얽힌 배경을 알게되면 그 곳에 대한 생각과 시선이 달라지듯이 평소 귀로만 들어왔던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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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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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도 일본처럼 왕실이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서 존재할지, 아니면 그 옛날처럼 실세의 존재로 서있을지... 황제를 위한 나라와 백성을 위한 나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도 생각해본다. 어느날엔가 역사강의를 들으면서 강사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대한帝國에서 대한民國으로 탈바꿈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상황에 대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던...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렇게 우리의 상황은 급변하는 물살 위에서 늘 위태로웠을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텨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또 무엇일까?  가끔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물음표중의 하나다. 이 책을 보고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황제였지만 한 번도 황제였던 적이 없는 사람, 궁궐에 살았지만 한 번도 군림해본 적이 없는 사람 이었다는, 어찌 들으면 너무나도 나약하기만 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 작가의 첫마디가 이상하리만치 강한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으며 이유없는 상실감에 빠지게 했던 그였기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었던 작가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한줄기 위안의 빛으로 사그라들 수 있는 어둠속의 과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그랬기에 그럴수도 있었을거라고 가끔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사실이 아닌 환상일지라도.

건청궁을 찾았던 답사길의 먹먹함을 되새김한다. 지금은 乙未事變으로 불리워지는  明成皇后弑害事件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곳이었지만 넓지 않은 공간속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 전해져오던 그 절절함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 넓은 경복궁을 앞에 두고 작은 건청궁을 따로 지어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싶었을 한 가정을 떠올려 보았었다. 명성황후가 머물던  옥호루에 나도 마음으로 올라서 보았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왕과 왕세자가 머물던 坤寧閤이 바로 옆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속에서 마치 변명처럼 들려오던 순종의 정신적인 충격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단 몇 초면 건너갈 수 있는 거리... 겨우 그 거리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가슴 태우며 밖을 내다볼 수도 없었던 父子의 소리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아 다시 생각해도 이렇게 마음 한쪽이 시려온다. 왕이었으나 평민이기를 바랬다던 그 아픔, 그러나 평민이 될 수도 없었던 허울뿐인 황제.. 어쩌면 황제라는 틀이 하나의 올가미가 되었을 한 남자의 시간들을 우리가 모른척 외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시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

머리말중에 이런 말이 보이긴 한다. 그를 기피하고, 그의 존재를 부끄러워했던 나 같은 이들에게 그를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그 문장을 바라보면서 어쭙잖은 생각을 하나 한다.  내게도 말할 수 없이 심한 상실감을 안겨주었던 역사속의 이름 하나, '선조'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변명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말이다. 시대적인 배경이 다르다할지라도 고집스럽게 그를 한 사람의 남자로 보고싶어하지 않는 나의 치우친 마음이 안타까워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주제였지만 나름대로 말하고자하는 바를 읽을 수 있어 괜찮았다. 누가 되었든 어떻게 보느냐,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그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유길(영친왕)과 평길(의친왕)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순종, 그의 이름은 길 위의 황제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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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멜랑콜리아 - 상상 동물이 전하는 열여섯 가지 사랑의 코드
권혁웅 지음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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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앞에 내민 주제가 '사랑'이다. 사랑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는 그 흔한 증상들에 관한 短想쯤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유혹이 있어 사랑은 시작되어지는 것일까?  이름을 묻는다는 게 어쩌면 관심표현일런지도 모를일이지.. 영원할 거라는 약속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다가올지도 모를 '버려짐'이 끼어들 사이는 없어보인다. 상대방에 관한 질투가 생겨나고, 어느 순간 뻥 뚫려버린 듯한 텅 빈 가슴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는... 가끔씩은 나도 모르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슬쩍 무관심한 듯한 태도도 섞어가면서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사랑은 또다른 외로움과 그리움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 사랑은 비밀스럽게 기억되어진다. 때로는 잊혀지기도 하지만. 그런 사랑의 법칙들을 신화를 빌어 또한번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신화속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춰내 보여준다. 이야기만을 보지말고 보따리를 풀어헤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함께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불러 세워 태어난 이유를 묻고 있다. 사랑에 관한 주제만으로 그 주인공들은 여러나라에서 소환되었다. 가끔씩은 비슷한 모습을 하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책장 넘기는 맛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까닭모르게 한번쯤은 튕겨내고 싶은 반항적인 느낌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면 모순일까?  모든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같은 것을 두고도 어떻게 돌려 말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故이윤기님의 책을 참 좋아했었기에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었던 주제였다. 그래서 책을 받아든 그 순간 기대감이 엄청 컸을지도 모르겠다. 신화의 틀에 갇힌 그 방대한 주제중에 하나, '사랑'이 이 책속에서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법칙을 정석대로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무엇이 되었든 이름이 붙여진 순간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된다. 신화시대에는 이름과 그 사람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는 부분을 음미해 본다.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의 꽃이 되었던 것처럼. 그 이름이 없어졌을 때 그것은 '죽음'이 될 수도 있고, '잊혀짐'이 될 수도 있고, '버려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그 관계의 틀을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무리일까?  '버려짐'의 대상으로 강시나 좀비를 말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뜨악했다. 버려졌을 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바랬던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봄이 되면 야위어 사라졌다가 눈 내리는 겨울이면 다시 찾아온다는 일본전설속의 그 '눈아이'는 '버려짐'도 '잊혀짐'도 아닌 까닭이다. 

인도의 괴물 아 바오 아 쿠 이야기는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다. 나선형으로 되어 있다는 승리의 계단. 첫번째로 밟는 계단에서 생겨나 자신의 모습을 완성해간다는 아 바오 아 쿠는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모습이 사라진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완전한 형태가 되어 빛이 나기도 하고 분명치 않은 형태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기도 한다는 그 괴물은 어찌되었든 계단을 올라갔던 이가 내려오면 다시 사라진다. 단 한번, 당신이 그를 완전히 바라보았던 그 순간에만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던 그 말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다. 변해가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처럼 말이다.

책속에 선문답같은 말이 있었다. '없으면서 있고, 없지만 있고, 없어짐으로써 있는 건 무엇일까?' 선문답처럼 들리긴 하지만 답은 있었다. 멜랑콜리, 그것은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아마도 이 책은 신화속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속성을 빌어 외로움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꾸는 사랑에 대해 돌이켜 본다. 그 부르기 쉬운 이름속에 너무나도 많은 괴물을 숨겨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 주제들속에서 파헤쳐지는 괴물의 속성은 왠지 모르게 가여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제 겨우 옷을 추스렸는데 다시한번 더 강제로 옷을 벗기는 것만 같아 껄끄럽다. 그만큼 들춰내고 싶지않은 불편한 진실일지도.. 이름만 바꾸었을 뿐, 그 괴물들의 이름은 '사랑'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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