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도 일본처럼 왕실이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서 존재할지, 아니면 그 옛날처럼 실세의 존재로 서있을지... 황제를 위한 나라와 백성을 위한 나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도 생각해본다. 어느날엔가 역사강의를 들으면서 강사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대한帝國에서 대한民國으로 탈바꿈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상황에 대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던...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렇게 우리의 상황은 급변하는 물살 위에서 늘 위태로웠을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텨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또 무엇일까? 가끔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물음표중의 하나다. 이 책을 보고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황제였지만 한 번도 황제였던 적이 없는 사람, 궁궐에 살았지만 한 번도 군림해본 적이 없는 사람 이었다는, 어찌 들으면 너무나도 나약하기만 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 작가의 첫마디가 이상하리만치 강한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으며 이유없는 상실감에 빠지게 했던 그였기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었던 작가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한줄기 위안의 빛으로 사그라들 수 있는 어둠속의 과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그랬기에 그럴수도 있었을거라고 가끔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사실이 아닌 환상일지라도. 건청궁을 찾았던 답사길의 먹먹함을 되새김한다. 지금은 乙未事變으로 불리워지는 明成皇后弑害事件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곳이었지만 넓지 않은 공간속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 전해져오던 그 절절함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 넓은 경복궁을 앞에 두고 작은 건청궁을 따로 지어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싶었을 한 가정을 떠올려 보았었다. 명성황후가 머물던 옥호루에 나도 마음으로 올라서 보았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왕과 왕세자가 머물던 坤寧閤이 바로 옆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속에서 마치 변명처럼 들려오던 순종의 정신적인 충격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단 몇 초면 건너갈 수 있는 거리... 겨우 그 거리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가슴 태우며 밖을 내다볼 수도 없었던 父子의 소리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아 다시 생각해도 이렇게 마음 한쪽이 시려온다. 왕이었으나 평민이기를 바랬다던 그 아픔, 그러나 평민이 될 수도 없었던 허울뿐인 황제.. 어쩌면 황제라는 틀이 하나의 올가미가 되었을 한 남자의 시간들을 우리가 모른척 외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시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 머리말중에 이런 말이 보이긴 한다. 그를 기피하고, 그의 존재를 부끄러워했던 나 같은 이들에게 그를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그 문장을 바라보면서 어쭙잖은 생각을 하나 한다. 내게도 말할 수 없이 심한 상실감을 안겨주었던 역사속의 이름 하나, '선조'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변명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말이다. 시대적인 배경이 다르다할지라도 고집스럽게 그를 한 사람의 남자로 보고싶어하지 않는 나의 치우친 마음이 안타까워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주제였지만 나름대로 말하고자하는 바를 읽을 수 있어 괜찮았다. 누가 되었든 어떻게 보느냐,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그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유길(영친왕)과 평길(의친왕)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순종, 그의 이름은 길 위의 황제였다! /아이비생각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