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닝 X파일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9
크리스틴 부처 지음, 김영아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직하게 살자?  만약에, 라는 설정을 한번 만들어보기로 하자. 우리는 늘 그 '만약에...' 를 꿈꾸며 살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공중전화박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전화기옆에 지갑이 놓여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지갑을 열어보니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다. 당신은 그 지갑을 어떻게 처리할까?  만약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누군가 남의 가방에 손을 넣어 소매치기를 하고 있는 걸 보았다면?  만약에, 아무도 없는 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걸 보았다면?  물론 이런 가정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만도 않다.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럴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정의'에 대해 배워왔다. '올바른 도리'에 대해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며 진하게 다가오는 현실은 그다지 정의롭지도 않고 올바른 도리만을 행하며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어버렸다. 간혹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으라 한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인가?  정답은 없다. 그래서 이 책속에서도 말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고. 가장 무서운 것중의 하나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라는 말도 있다.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냈을 때, 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을 안타까워 할 뿐이다.

 

어릴 적 개그프로중에 부채도사라는 게 있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정해야 할 상황이 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분명히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결정은 내려질 게 뻔하다. 내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상황은 아니었다해도 내 지인이나 가족이 결부되어 있다면 그 선택의 폭도 역시 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결정은 쉽게 내리지 못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독백처럼 말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짧다. 내용 역시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의미는 상당히 깊다. 짧은 이야기 한편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책속 아이들의 말처럼 컨닝은 단순히 학교생활에서만 스쳐지나가는 일화에 불과할까?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바늘 도둑 소도둑된다, 세살 버릇 여든간다 라는 옛속담만 보더라도 그렇게 단순하게 떨치고 지나갈 일만은 아닌 듯하다. 이 책은 단순히 컨닝사건만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 아주 쉽게 '컨닝'이라는 것을 예로 들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봐도 수도없이 컨닝의 순간은 존재한다. 들키지만 않으면 정당할수도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죽했으면 들킨놈만 억울하다는 말이 들릴까?  청소년문학으로 읽은 책이지만 어른이 보아도 손색없는 내용이다.

 

학교의 기자인 로렐이 우연하게 멋진 사건 하나를 학교신문에 싣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후 뭔가 또다른 사건을 찾아 헤매던 로렐의 시선에 걸려든 것이 바로 컨닝사건이었다. 단순하게 '컨닝'이라는 행위의 옳고 그름만을 논하고자 했던 로렐의 생각과는 달리 컨닝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져버린다. 그리고 누군가의 제보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기사거리를 쫓아가게 되지만 그 사건속에 얽혀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자신을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해 줄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그것을 폭로함으로써 다쳐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이야기의 배경을 학교가 아닌 사회로 바꾼다면 그것은 정말 끔찍한 설정이 아닐 수가 없다.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글이 따로 실려있는 건 이채롭다. 주제 자체가 깊이있는 토론을 불러낼 수 있으니 우리가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인데,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앉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본다면 의미있는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 임동확 시인의 시 읽기, 희망 읽기
임동확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詩....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으로 그려낸 것. 자유시, 정형시, 서정시, 서사시, 산문시... 詩에는 종류도 많다.  학창시절에는 좋아하는 시 하나쯤 외우고 다니는 건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 좋은 시도 시험중에는 왜 그리도 복잡하게 정의가 내려지는지... 가만히 살펴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는데 단지 시험이라는 틀에 얽매이다보니 그런 느낌이 생겨난 건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 일본 정형시의 일종인 '하이쿠'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다. 하이쿠는 일본의 대표적인 시 형식이다. 열일곱 음절로 된 아주 짧은 시인데 그 속에 많은 것을 함축했다고 말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게 많았다. 그래서 하이쿠 시인으로 유명한 마쓰오 바쇼의 작품을 몇 편 찾아 보기도 했었다. '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든다 물소리 퐁당 '... 아주 짧은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저 한구절속에 담겨진 그 숱한 장면들이라니! 마치 내가 그 연못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의 시를 소개했던 <시인과 여우>라는 작품속에서 볼 수 있었던 '좋은 시란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는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詩를 읽으면서 특별히 좋다, 나쁘다라는 평가는 옳지 않은 듯 하다. 시인이 그 작품을 쓸 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 작품속에 어떤 의미를 숨겨두었는지 알 수 없는거라면, 시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다를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詩를 풀이하고자 하는 사람에 따라 다시 한번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 책속에서도 많은 詩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나름대로의 풀이를 함께 볼 수 있다. 어쩌면 나와 같은 느낌으로 풀이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롯이 풀이하는 사람의 몫일 뿐이다.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가 다른 평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책을 펼쳐 내가 좋아하는 詩를 가장 먼저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일게다. 오규원 시인의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라는 작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깊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과 같이 우리 삶의 흔들림이 그래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던 그 순간의 울림이 참 좋았었다. 시간, 공간, 사랑, 고독, 길, 죽음, 부분과 전체, 자아, 우정, 연인, 고향... 많은 주제를 두고 작품을 선택했을 지은이의 고민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가 풀어 쓴 글들은 쉽게 나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이건 이런것이다,라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개념 혹은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詩를 만나고 싶은 나만의 욕심이 큰 탓이리라.

 
이삼년전 겨울쯤에 詩集 한권을 선물 받았던 게 마지막이지 싶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詩의 감성을 잃어버리고 인간적인 情 또한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으니 내 삶이 어찌 팍팍하지 않을수 있을까?  그 짧은 하이쿠를 보면서 느꼈던 깊은 울림 따위는 이제 내게 없는 것인양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채 혹은 외면당한 채 저멀리로 내처진 내 안의 그 무엇과 만나고 싶어서.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책표지의 한사람처럼 그저 막막할 때 시한편과 함께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다. 詩를 읽을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가슴속에 품은 시가 있어 다시한번 꺼내보기로 한다. 살면서 더없는 진리처럼 느껴져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시한편이 내게도 있어 좋다. /아이비생각
 

‘단추를 채우면서’


                  천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양록 - 바다 건너 왜국에서 보낸 환란의 세월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9
강항 지음, 이을호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1592년에 임진왜란이 있었고 임진왜란 중 교섭이 결렬되는 바람에 두번째로 침입을 당한 것이 1597년 정유재란이다. 그 긴 환란의 기간속에서 피폐해졌을 백성들의 삶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두번째 침략이니 저들의 악랄함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전리품으로 가져오라는 말한마디로 수없이 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코를 잃어야 했고, 그 코가 산을 이루어 코무덤이 되었다는 사실은 시대를 달리하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분하고 원통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강항이 일본군에게 끌려가 온갖 일을 겪다가  1600년에 귀국할 때까지의 일을 적은 것이 바로 '간양록'이다.  책의 원래 제목은 죄인이 타는 수레를 가리키는 '건차록巾車錄'이었다. '巾車錄'... 죄인이라는 뜻으로 지은 제목이라고 하는데 효종때 이 책이 간행되면서 그의 제자들이 책명을  '看羊錄'으로 바꾸었다. '看羊'은 강항이 지은 시로 스스로를 '외로운 양치기'에 빗댄 구절로 강항의 애국충절을 견주어 말한 것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포로된 자신의 처지만을 기록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적국의 실태와 그들의 생활상을 세세히 기록하고, 그들의 군사적 상황까지 살펴 우리가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을지를 함께 적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잡혀가는 중에 가족들을 잃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바다에 뛰어 들었지만 다시 구출되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포로 생활중에도 두번씩이나 탈출을 시도하다 잡힌 일도 있다. 그래도 관직있는 자라하여 무지렁이 취급은 받지 않았던 듯 하다. 포로로 잡혀 온 조선인들과 교류를 하기도 하고, 일본승과 친하게 지내며 최초로 조선의 성리학을 전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향한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게 왕을 향한 충정심으로 해석되어져 조금은 안타깝지만 말이다. '忠'에 무게를 두었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지만 까닭없이 억하심정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토록이나 멋진 인물이 많았는데도 조선의 시각은 어째서 열리지 못한 것일까? 어째서 눈앞의 이익, 당장의 안일함만 좇으며 살고자 애를 썼던 것일까? 분연히 일어서지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식의 사고관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책을 읽을 때마다 의문점의 크기는 커지기만 한다.

 

목차를 크게 살펴보면 이렇다.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賊中奉疏] , 적국에서 보고 들은 것[賊中聞見錄] , 포로들에게 알리는 격문[告俘人檄] , 승정원에 나아가 여쭌 글[詣承政院啓辭] , 환란 생활의 기록[涉亂事迹] ...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과 적국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부분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신이 엎드려 우리나라의 형편을 살펴보건대 평소에 인재를 기른 일도 없고, 백성을 가르친 일도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농민들을 긁어모아 싸움터로 몰아세우니, 그나마 권리나 있고 돈푼이나 있으면 뇌물을 먹이거나 권력을 떠세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다 내빼고, 헐벗고 힘없는 백성들만 싸움터로 내몰리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한 사람의 장군이랬자 제 직속군이 없고, 졸병들에게는 통솔자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한 고을 백성으로 절반은 순찰사에게 속하고 절반은 절도사에게 속하기도 하며, 한 졸병의 몸으로 아침에는 순찰사에게 붙었다가 저녁녘에는 도원수를 따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장졸이 자주 바뀌고 소나기처럼 내닫는 명령을 이루 다 받들기 어려운 판입니다. 이러니 누가 어른인지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워 적들의 목을 치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 기관은 너무 많아서 정령이 한 지휘관이 되지 못하고, 아침에 남원 부사였다가 저녁에 나주 목사로 전출되고, 오늘 방어사였던 그가 내일 절도사가 된다는 것.... 이런 상황이라면 장량, 한신, 유비, 악비같은 명장들이 오늘에 다시 살아난다해도 삼십육계 동망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따끔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저 글을 쓰면서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싶다. 적군의 실생활을 여러모로 살펴본 후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충언중의 충언인 것이다. 적군의 실태와 비교하여 나온 생각이니 어찌보면 서글픈 일일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썩어버린 조선의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이 드러나는 글이니 그가 환국한 후 관료들에게 미움을 받았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성을 아끼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져 짠해지기도 한다.

 

앞서 읽었던 <산성일기>를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가만히 살펴보면 조선이 선조대에 이르러 국력이 약해졌던 건 아니었다. 이미 훨씬 전부터 조짐을 보였다는 말이다. 4대 사화를 비롯해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세력다툼으로 인한 혼란은 이미 나라가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없는 지경을 만들어 버렸다. 비변사를 아무리 설치하면 뭐하나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도 없는 것을. 남으로 왜의 침입을, 북으로 오랑캐의 침입을 대비해야 한다고 '十萬養兵說'을 주장했던 이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국가재정은 약해질대로 약해져 있었고, 사회기강은 해이해질대로 해이해져 무대책이 대책이 되어버린 꼴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다보니 느닷없이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작금의 상황이 바로 저 상황이 아닐까 싶어서. 지금의 상황이 딱 저 꼴이다. 당리당략에 빠져 백성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내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으면 된다는 식의 행동이 난무하니 이이의 '十萬養兵說'이 다시 돌아온다 한들 제대로 먹힐리가 없는 상황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단지 나만의 생각일까? 그때와는 다르게 백성이 달라진 세상인데도 왜 저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역사는 알면 알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비생각

 

 

강항 姜沆  1567~1618 .. 본관은 晋州, 호는 睡隱. 강희맹의 5대손으로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1588년에 진사가 되고 159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5년 교서관 박사, 다음해에 정6품 공조좌랑이 되고 형조좌랑이 되었다. 교서관은 태조때 經籍의 인쇄와 제사 때 쓰이는 향과 축문ㆍ印信(도장)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로 校書監 또는 운각(芸閣)이라고도 한다. 1597년 휴가를 얻어 고향 전라도 영광에 내려와 있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전라도의 군량 조달 임무를 맡은 참판 이광정 밑에 배속되어 남원 일대에서 군량 운반을 관리했다. 일본 에도 유학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인물, 교토 쇼코쿠지(相國寺) 妙壽院의 선승인 순수좌, 즉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조선의 과거 제도와 춘추 석전(釋奠) 의례를 설명해주었다. 후지와라는 강항과 조선인 선비 포로들에게 은전을 주면서 經書를 써 달라 부탁했고, 조선의 의례복을 만들어 상례, 제례 의식도 익혔으며 공자묘도 세웠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유학은 대부분 승려들이 공부했으며, 유학의 위치도 불교의 보조적인 학문에 머무르고 있었다. 강항이 풀려날 수 있었던 것도 다지마 성주 아카마쓰 히로미치와 후지와라 세이카 덕분이었다. 1600년 5월 19일 부산에 도착한 강항은 선조의 부름에 따라 한양으로 가서 편전 앞에서 술상을 받았다. 선조는 강항에게 일본 현지 상황에 관해 물었고 강항은 자신이 파악한 것들을 정리하여 선조에게 올렸다. 임금이 내린 말을 타고 고향으로 내려 온 강항은 은거하면서 독서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힘겹게 노를 저어온 송파나루의 사공에게 김상헌이 물었다. " 지금 나를 따르겠느냐? "  사공은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 .... 제게는 처와 아직 어린 딸자식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늙은 사공은 김상헌의 칼날에 베였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휘돌아치던 장면이었다. 오래전 가슴 깊숙히 통증을 느끼게 해 주었던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그려진 문장들이다. 그 때 작가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역사라는 걸 이야기하면서 가명을 쓴다는 것은 더 치졸하다. 역사는 당시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처럼 이렇게 먼 후대에 나타나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는 것인 까닭이다. 아마도 학계의 두런거림을 경계한 것이리라. 하지만 오로지 자신을 감싸는 테두리로써 존재했을 왕을 위해 그 왕을 있게 해 주는 백성을 외면했다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명분만을 내세웠던 사람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명분과 이유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내게는 김훈의 작품속에서 그 혼돈의 과정을 겪어냈던 서날쇠의 숨결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훗날에 적진을 뚫고 산성으로 들어왔던 뱃사공의 어린 딸 나루를 보면서 김상헌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가 죽인 사공의 어린 딸이 감내해야 할 그 삶의 무게를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는 그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1636년 병자년의 겨울은 혹독했다. 산성을 에워싼 적병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말로써 전쟁을 이겨보고자 했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안개속의 미로같다.  그 때 그렇게 명분을 앞세워 말싸움만 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왕이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 참혹한 광경까지 연출해내지 않아도 되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때 그렇게 사실상 맞서 싸웠다고도 할 수 없는 어이없는 대결만 없었어도 성 안의 백성이 그토록이나 힘겨운 삶의 무게를 감내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건 내 생각이니 말이다. 삼전도에 비를 세우기까지 50여일의 기록을 남긴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도대체 이런 기록을 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편지를 찢던 김상헌이나 그 찢어진 편지를 다시 주워 붙이는 최명길이나, 그 때의 나라를 생각했던 마음의 깊이를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어느쪽이 더 실리적이었는가는 따져 묻고 싶은 것이다. 백성이 없는 왕, 백성을 바라보지 못했던 왕이 존재했던 시대의 아픔이다. 왕의 앞에서 장막처럼 드리워진 관료들. 눈이 되고 귀가 되어주어야 할 그들이 왕을 가로 막고 눈멀고 귀멀게 했던...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썩은 냄새는 역사를 대할 때마다 역겹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지은 이를 유추해내는 부분은 정말 흥미로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을 지은 사람도 당시의 상황이 부끄러웠을거라고.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못했을 거라고.

 

청나라 황제와 주고 받았던 편지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당시 조선의 편협함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편지글뿐만 아니라 책속에서 보여주는 각종 자료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하나하나 주를 달아 세세한 설명을 해 준 것도 그렇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사진을 보여주고 있어 옛글이라 하여 어렵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이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뒷부분에서는 선조부터 인조, 효종까지의 선원록을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지금까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찾아보았던 조선시대의 주요관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것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나오는 말이란다. 옛선조들은 무언가 이름을 지을 때 문서속에서 많이 따왔다. 문이나 집에 이름을 붙일때도 그랬다.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라고 이해를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여전하다. 각설하고, 오래된 책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것은 이 책을 지어야만 했을 글쓴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궁금했다. 지옥같은 전쟁을 겪어내고 거기에 대한 반성을 기록했다는 말은 충분히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당시를 생각해 볼 때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그리 쉽진 않았을거라는 생각을 했던 까닭이다. 명분에만 치우쳐 그저 저 잘난 맛으로 살았던 선조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던 까닭이기도 했다. 임진왜란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로 다가오는 전쟁중의 전쟁이다. 환란중에 겪어야만 했던 기록들이 낱낱이 보인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따라왔다.

 

내용을 살펴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의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의 사정, 즉 일본과의 외교적인 관계도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책의 구성은 징비록1권, 징비록2권, 녹후잡기로 되어 있다. 녹후잡기란 징비록을 작성한 후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어 놓은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때 이렇게 했다면 더 좋았을것이라는, 차후에라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그런 마음으로 쓴 글이니 글을 쓸 때 유성룡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에게 이런 역사적인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습관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세월만 잡아먹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쟁의 조짐은 진즉부터 있었다. 중종때인 1510년에 삼포에서 일본거류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삼포왜란이 있었고, 명종때인 1555년 왜구가 전라남도 강진, 진도 일대에 침입해 약탈과 노략질을 한 을묘왜변이 있었다. 그것뿐일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583년에는 병조판서로 있던 이율곡이 선조에게 <時務六條>를 바치며 십만양병설 등의 개혁안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거쳐야 할 것은 결국 거치게 되어 있는 것인지....

 

솔직하게 말해 우리의 역사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선조와 인조, 그리고 그 후의 대원군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가를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다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머리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물론 전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씁쓸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조선의 역사는 '아니되옵니다'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혹은 '통촉하시옵소서'란 말로 축약된다고.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명나라의 심유경이 당시의 우의정이었던 김명원에게 보냈다는 편지글이 보인다. 부끄럽게도 그런 상황에서조차 당쟁을 일삼고 각자의 이득만을 챙기며 말싸움만 일삼던 재상들의 행태를 꼬집는 글이 보여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무슨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속이 쓰렸다. (김명원은 1589년에 鄭汝立의 난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웠던 사람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검사에 이어 팔도도원수가 되어 한강 및 임진강을 방어했으나, 적을 막지 못하고 적의 침공만을 지연시켰던 인물이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원병이 오자 명나라 장수들의 자문에 응했다. 병서와 弓馬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환란에 대처하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엊그제 읽었던 <격리>의 상황과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 전염병에 대처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사람들과 전쟁에 대처하는 우리의 선조들에게서 단 한가지라도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없어 읽는 내내 마음이 껄끄러웠다. 책표지의 뒷면에 이런 말이 보인다. "너희 나라가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아랫사람들의 기강이 이 모양인데 어찌 나라가 온전키를 바라겠느냐".. 그 당시에 일본 사신이 했다는 말이긴 하지만 작금의 우리를 돌아볼 때 따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돈이 되는 호초를 줍느라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잔칫상 자리가 눈앞에 선하게 펼져져 왠지 서늘해지기도 한다. 임진년이었던 작년 2012년에 유난스럽게 떠들던 말들이 떠오른다. 다시 임진년의 재앙이 생겨날 거라고 떠들어대던 그 목소리... 말은 번지르르한데 이렇게까지 생생한 <징비록>을 놔두고도 유비무환의 정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 역사를 외면하는 민족이 되지 않기를....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