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의 하루 - 여인들이 쓴 숨겨진 실록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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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는 아웃사이더였을까?  서문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사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우리는 아웃사이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면으로 볼 때 궁녀는 아웃사이더는 아니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다. 단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그늘속의 삶쯤이라면 될 것 같다. 그랬기에 궁녀들의 하루가 궁금했다. 우리가 알고자 하지 않았던 그녀들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과연 의미였을까?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중에서도 크게 성공한 사람은 많았다. 단지 우리의 시선이 한쪽으로만 쏠린 채 역사를 논했던 탓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일단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흥미로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궁안에 정말 그렇게나 많은 궁녀가 살았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천궁녀라는 것도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는데 그 많은 사람이 궁안에서 살았다면 그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궁으로 들어가야 했을까 싶어서... 그 많은 것을 제공해주는 것이 백성이었던 까닭에... 미루어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나를 놀라게 했다. 겨우 3,4세에 궁녀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다니! 생각시와 그냥 각시의 차이, 상궁이 되기 위해서 그녀들이 어떻게 해야 했는지, 궁녀들이 하는 일에 따라 혹은 직급에 따라 월급이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 궁녀들의 일상적인 생활모습은 어떠했는지..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궁녀들의 일은 세밀하고도 철저한 분업화 형태였다. 하다못해 번을 서는 일조차도 나이가 어린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결혼한 사람,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지어 시간을 정했다. 궁녀들은 나인이라하여 직책에 따라 지밀나인, 침방나인, 수방나인, 세수간나인, 생과방나인, 소주방나인, 세답방나인으로 나뉜다. 각자 역할에 따라 독립적으로 궁중의 안살림을 맡아 하였는데 지밀을 제외하고 六處所라 하였다. 그 중에서 지밀나인과 침방나인들만 살펴보더라도 참 많은 사람이 필요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지밀나인이라하면 왕과 왕비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들이다. 잠자리를 봐주기도 하고 왕과 왕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잡일을 봐주는데 거기에는 글을 대신 써주는 지밀상궁도 있었다. 글씨연습을 어찌나 심하게 시켰는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밥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침방나인만 하더라도 그렇다. 針房이란 궁중에서 바느질을 맡아하던 곳인데 왕의 옷을 만드는 사람이 다르고 왕비의 옷을 만드는 사람이 달랐다. 바느질 하는 사람, 수를 놓는 사람이 달랐다. 그 와중에서 자신의 옷까지 지어입어야 했다.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왕과 왕비의 것이 달랐고, 일반 음식과 잔치음식을 담당하는 일을 나누었으며 간식을 만드는 일 또한 분리되어 있었다. 일곱처소에서 그토록이나 세분화되어 있었으니 어찌 사람이 많이 필요치 않았을까? 거기다가 나인이 거느리던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바로 무수리, 각심이(방아이), 방자, 의녀, 손님이라 불리던 여인들이었다. 손님이라는 이름은 궁 밖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무수리나 각심이와는 달리 예의를 갖춘 말이었다. 손님은 대개 친정붙이이며, 보수는 후궁의 생계비에서 지출되었다고 하니 나름대로의 부는 축적을 해놓을 필요가 있었던 듯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흔히 우리가 무수리였다고 말하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가 침방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 최씨가 누비옷을 지을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여 영조가 그후로는 누빈 것을 취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한다. 참고하자면 무수리는 물긷는 사람을 말한다.

 

궁녀라 하면 보통은 상궁과 나인을 가리킨다. 경우에 따라서는 윗사람들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죽기도 하고, 정치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운이 좋아 임금이나 세자를 모신 후 품계가 올라가기도 했지만 그런 일이 생겨남으로 인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 궁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출퇴근을 했던 궁녀도 있었다. 모시던 상전이 죽으면 그를 따랐던 궁녀들도 대부분은 일자리를 잃어야 했지만 간혹 다시 궁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일에 따라서 결혼을 한 여인을 쓰기도 했다. 왕이나 왕족의 유모를 했다고해서 육아까지 모두 책임진 건 아니었다. 그녀들 사이에서 나름의 부정과 비리가 오가기도 했지만 궁안에서의 생활이 외로웠던 까닭에 형제처럼 의를 나누는 궁녀도 많았다.

 

그야말로 궁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궁녀의 역사나 궁녀를 선발하는 과정, 그녀들의 하루 일과나 일생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어떤 일을 했으며 근무조건은 어떠했는지... 정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세하게 알고나서 들었던 3부 궁녀들의 이야기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얼마전 신경숙의 작품으로 볼 수 있었던 <리진>에 관한 이야기도 보이고 갑부가 된 궁녀 이야기,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스스로 삼가 모범이 되었던 궁녀 이야기, 마음속에 한 임금만을 품었던 궁녀 이야기등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역사는 지배층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고자하면 보이는 것들도 많이 있음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세월은 변했는데 사람은 어찌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순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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