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다락원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읽기를 시작한 후 정말로 힘겨운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읽어보았을텐데 도무지 아무런 느낌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초입부분에서부터 종교적인 냄새가 심한 듯 하여 진도가 나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뭐랄까... 이건 종교적인 것과는 좀 다른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남자의 세 아들.
첫번째 부인에게서 얻었으나 그 존재성마져 기억하지 못하는 첫째 드미트리와
두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둘째 이반과 셋째 알로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들일것이라고 추정되어지는 또하나의 아들 스메르쟈코프.
그 아버지가 살해되고 살인죄로 또는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 네 아들의 모습.
거기에 얽혀드는 두 여자가 이야기의 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형제들의 각기 다른 사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서로 다름이
나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흥미로웠다.
겉으로는 다분히 파괴적이고 정열적인 드미트리는 그야말로 감성이 시키는대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기자신에게 퍽이나 충실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치밀하고 이성적인 듯 보이지만 무신론자로 그려지며 허무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이반에게 나는 왠지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듯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감성과 이성사이에서 조율사로 등장하는 사람이 아마도 셋째 알료사가 아닌가 싶다.
수사가 되고자 했으나 수사가 되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자신만의 사랑과 믿음을 심으며
선과 악의 중심세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알료사의 모습.
문득 얼마전에 읽었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 생각났다.
무인도에 떨어져 아무것도 없이 시작되는 생활속에서 갈라지던 한무리의 소년들속에서도
이성과 감정은 항상 대립을 이루고 그 사이를 방황하는 알수없는 중도의 힘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씁쓸하게 내려지는 결론들은 하나같이 현실속에서는 이론적인 정의로움과 진실이
반드시 이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속에서 같은 상황을 바라다보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할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가 맞는 말인듯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제각각의 성격과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 역시 그렇다.
나름대로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나 조금더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자 애쓰고 있다. 그런 내면적인 심리묘사가 참 절묘하게 표현되어져 있음이다.
나였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가 살인을 하였는가보다는 그 결과로 인하여 자기자신에게 미칠 일들을 더 많이 생각하는듯한
상황을 눈에 보는 것만 같다.

한마디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한편의 연극을 보고 나온 느낌을 받았다.
막장마다 어둠속에서 혹은 이미 등장한채로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가 저 뒷좌석까지 들리도록
커다란 목소리로 대사를 읊조리는 배우 한명 한명을 본듯한 그런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그 연극의 관객은 나혼자뿐이었지만 왠지 나혼자만이 그 객석에 앉아있었던 건 아니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느낌이다.
이반과 알로샤 그리고 아버지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중간중간에 적절하게 섞여 내게 보여지던 인간의 속성들은 내게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성경을 배우던 소년이 두번짼가 세번째 시간에 갑자기 피식 웃고 말았다.
"왜 웃는거냐?"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느님은 첫째 날에 세상을 만드시고,
 넷째 날이 돼서야 비로소 달과 별을 만드셨다는데,
 그럼 첫째 날은 어디서부터 빛이 비쳤을까 해서요"

고전읽기에 재도전을 시도한 것은 참 잘한일이지 싶었다.
자꾸만 잠들려 하는 나의 감성을 깨워주고 나를 또한 바쁘게 하니 얼마나 좋은일인지...
가볍게 한번 읽고 넘어가는 책보다는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더 많은듯하다.
조금은 힘겨운 싸움이 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재도전을 해 볼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날에 어떤 사람이 유명한 화가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그림을 그리기가 가장 쉬운가?”
화가가 대답했다.
“귀신이나 용을 그리기가 가장 쉽습니다."

“귀신이나 용은 본 적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그것을 그리기가 가장 쉽다는 말인가?”
“귀신이나 용은 제가 본 적이 없지만 다른 사람도 역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그려 놓아도 사실과 다르다고 시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그림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가?”
“개를 그리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왜 그런가?”
“개는 누구나 항상 봅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잘못 그려도 잘못 그린 부분을 금방 찾아냅니다.
그러므로 개를 그리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畵狗最難(화구최난)’이란다.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누구나 아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땠는가?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하여 너무 쉽게 말하지는 않았는가?
물론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무언의 동조를 바라는 눈빛을 하면서 말이다.
다시한번 새겨볼만한 말이 아닌가 싶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리대왕 청목 스테디북스 95
윌리엄 골딩 지음, 강우영 옮김 / 청목(청목사)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아이들을 내세워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어른이었다면...
어른이었다면...
수도없이 되뇌이면서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속에 있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지만
어른이었다해도 그런 절박한 상황속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아이들의 몸속에 어른들의 생각을 넣어놓고는 마치 실험용 동물들마냥
한 섬에 떨어뜨려 놓는다.
그 섬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인도...
처음엔 하나였다가 소라나팔소리를 기점으로 하나의 무리로 불어나는 인간 사회.
인간이 여럿 모이다보면 틀림없이 그들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자가 생겨난다.
(혹은 무리를 이끌 누군가를 내세우고자 한다.
 일종의 책임회피 현상으로 보여질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는 갈래를 나눈다.
이성적이냐와 감정적이냐를 사이에 두고서.
이성을 택하면 반드시 따라오게 되는 규칙과 규범.
어떤 상황이 와도 그들은 그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만 하고
그 규칙을 만들었거나 내세운 자는 대체적으로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나 감정적인 쪽을 따르면 어떻게 될까?

작자는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대처해나가다가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성을 그리고 있다.
어찌되었든 배가 고프다는 건 당장에 느낄 수 있는 현실일테니까 말이다.
이성적 모델로 등장하는 소년 랠프와 감정적 모델로 등장하는 소년 잭.
랠프는 끝까지 지켜야만 하는 룰을 내세워 그들을 통제하려 하지만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대장이 되었던 탓에 상황에 부딪힐때마다 흔들린다.
그리고는 끝없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소라나팔을 불어대면서.
그러나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구해다 주는 것은 잭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회의하고 의견을 나누고
봉화를 올려야 한다는 따위의 말보다는 우선 당장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또하나의 대장인 것이다.
짧은 시간속에서 이성과 감정의 대립이 시작되고 패가 갈린다.
결국 이성은 감정에게 지배되고 랠프는 잭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느 한쪽만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하에서는 결국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한다.
종결부에서 잭의 무리에게 쫓기던 랠프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되는 순간에 터뜨린 울음.
그 울어버리는 모습을 통해 작자는 그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극단적으로만 치닫는 현실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기위한
인간 실험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 책...
사실 그렇게 재미있다고는 말할수 없다.
이것이다하고 내세울수 있는 매력이나 끌림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냄새를 그리워하고 인간성을 되찾고 싶어하는 지금의 세상속에서
꼭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날이 그날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날 누군가가 와서 너희들중에 하나를 죽여주면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동요한다.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하지만 과연 누구를?
결국 가족이 없는 사람,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을 선택하게 되고
그들은 그 희생양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그들은 총을 쏘았을까?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악마는 과연 웃을 수 있었을까?

<베로니카,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고 그 현실적인 문체에 반하게 되어
다시한번 코엘료의 작품을 읽고 싶었다.
그 중에서 선택되어진 이 책은 나에게 또다른 인간의 뒷모습을 만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곧잘 묻곤한다. 성선설을 믿느냐, 성악설을 믿느냐?
본래는 善과 惡이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한다.
善이 형님으로 나와할 각본이었으나 惡이 꽤를 부려서 먼저 나왔다는...
그래서 신은 인간을 善의 편에 서게 했다는 말도 있다.

"신이 심심풀이로 우주를 창조한 자신을 벌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 바로 나라고 해두죠"
이 책속에서 악마는 이렇게 자신을 정의한다.
하지만 악마는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난 적이 없었다고 주인공은 말하고 있다.
과연 악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야 뻔하지 않은가? 善과 惡이 쌍둥이라고 하니 당연히 선과 손을 잡고 있을테고
내 안에 善이 있으니 惡 또한 내 안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행동하는 것은 법을 따르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라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본성 말이오."
善의 손을 들어주느냐, 惡의 손을 들어주느냐는 온전히 내 몫이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일까?

善意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겁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지상에도,
악으로부터 해방시켜달라고 빌면서 평생을 보내게 할 목적으로
닥치는 대로 우리에게 고통을 쏟아붓는 전능한 신이 사는 하늘에도.<57쪽>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은 짧을까 길까?
물론 짧을수도 있고, 길수도 있다.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을 뿐.
아직과 벌써라는 말의 차이처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일게다.
이방인의 등뒤에 숨어 들어온 악마가 미스 프랭(샹탈)에게 말한다.
나의 거래를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준다면 너에게는 따로이 금하나를 더 주겠다고.
만약에 악마가 나에게 와서 미스 프랭(샹탈)에게 했듯이 똑같은 유혹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던 샹탈은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겠다던 금덩이 하나만을 가지고
도망을 치고자 하지만 악마의 비웃음을 보고는 마음을 바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는 말한다. 악마가 당신들중에 누군가 하나를 죽이면 부와 권력을 주겠다 하니 어쩔거냐고.
처음엔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천사가 이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희생양을 찾아내고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하지만 샹탈에게로 마지막 선택의 바톤은 이어지고 그녀의 입을 통해 작가는 말하고 있다.
善은 惡이며, 惡 또한 善이니 善과 惡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통제의 문제, 그리고 선택의 문제일 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었다고.

코엘료의 작품을 읽다보면 마치도 내가 주인공이 되어버린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까닭이다.
너무나 직설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미사여구없이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까닭이다.
두 권의 책만을 만났을 뿐인데도 나는 내 안의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 안의 나는 어느쪽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아이비생각


"만약 여기에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녀가 갑자기 들어온다면
 그녀가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소?"
"아니오, 하지만 나 자신을 통제할 수는 있을거요"
"내가 엄청난 양의 금화를 주며 산을 떠나 우리와 함께 지내자고 제의한다 해도
 그 금화들을 자갈 보듯 바라볼 수 있겠소?"
"아니오, 하지만 난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거요"
"두 사람이 당신을 만나러 왔는데, 한사람은 당신을 경멸하고,
 또 한사람은 당신을 성인으로 우러러 받든다면,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겠소?"
"힘들긴 하겠지만, 나 자신을 통제해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을거요"
<24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렌타인... 너무나 상업적인 날.
쵸코렛을 줘야 한다고 후배가 하나 들고 왔다.
누구한테? 그거야 당연하지..
물론 나의 반쪽에게 주겠지만
그 반쪽에게서 떨어져 나온 작은 반쪽이가
분명히 입을 내밀거다. 아마도..
그럼 날더러 하나 더 사라고?
왠지 그런짓을 하고 싶진 않다.
무엇이 되었든 그 본래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않는 모습은
여러번 보아도 고개를 돌리게 되니 말이다.
해몽하기 나름에 따라 좋은 꿈도 되고 나쁜 꿈도 되니
꿈을 꾼자의 몫이다. 그 판단에 의한 답은.
좋은 날엔 그저 좋은 뜻만 생각할 일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