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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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섰다. 마음이 먼저 앞서니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짜릿했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별다른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드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건 뭐지? 싶었다. 스톡홀름 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보자.  앞으로는 조용히 살면서 다시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초원에서의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407)   이것은 분명 자기 변명이다. 세상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있을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은 아닐까?  죽여 마땅하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처리다.  살아가는 동안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있을까?  또한 살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데 없다. 절대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남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눈물 흘린다. 그럼에도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여 마땅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아마도 말 그대로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일전에 읽었던 <열차안의 낯선 자들>이라는 소설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열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남자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죽여주자는 제안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어지던 그 책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들, 감정들 모든 것이 이중적이라고. 개개인의 마음속에 두 사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일부가 정반대의 모습으로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라고. 솔직히 나는 그 말에 공감했었다. 복잡하고 미묘한 현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가면 몇 개쯤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모든 것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사랑도, 미움도 모든 것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는해도 각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감정만을 내세우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는 릴리의 말은 왠지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한다. 자신만의 당위성에 갇힌채 오로지 자신만이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정도를 넘어선 피해의식은 결국 자신까지도 망쳐버린다. 릴리와 미란다의 모습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삶을 그 안에서 보게 된다.  그녀는 정말 완벽했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어쩌면 은연중에 나는 릴리의 당위성을 옹호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입기 싫어하는 마음이야 모든 사람이 다 같을테니까. 따지고보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외로움이다. 조금의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릴리가 한순간 가슴이 아팠던 이유, 그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구멍난 것처럼 가슴속에 서늘한 바람 한점이 불어왔다.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눈길을 따라가던 마음속에 쿵,하고 뭔가 내려앉은 느낌이 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외로움! 그 외로움이 우리를 이토록이나 처절하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치고 있었구나! 

 

책장을 덮으면서도 가슴속의 서늘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직 채색되어지지 않은 하얀 책표지를 쓸어내렸다. 마음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의 현재가 서글펐다. 릴리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 자신이었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이 전하고 싶어한 메세지가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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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구멍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 클래식 3
반성희 그림, 이민숙 글 / 책고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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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던 계영배에 새겨진 문구다. 잔에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돈... 중요하다. 昨今에 있어서는 더더욱이나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기도 하다. 어디 옛날에만 있었던 일일까? 지금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이가 많다. 아흔아홉 섬을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렇다. 돈이라면 정신을 못차리고 남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현씨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데  <동전구멍>이 옛날부터 내려오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 중기에 이름없는 작가가 쓴 우리 고전이라는 말이 보인다. 아마도 끝없는 양반의 욕심을 풍자했던 어떤 이의 한풀이가 아니었을까?

 

탐욕스러운 역관이 있었다. 역관이라 함은 일종의 통역사로 사신을 따라 국경을 넘나들던 사람이다. 외국의 문물을 들여와 국내에서 팔아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그러니 조선시대의 역관이라 함은 그다지 빈곤한 백성은 아니었을 터다. 그럼에도 끝없는 그의 욕심은 주변 사람들의 생활을 힘들게 했고 그로 인해 그를 향한 마을사람들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청나라에 갔던 현씨는 도술을 부리는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도인이 얼마나 신통한지 꽃잎을 날려 부채를 휘두르니 꽃잎이 모두 동전으로 변해 떨어지고, 작은 동전이 수레바퀴만큼 커지기도 한다. 그러더니 다시 바람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새끼줄처럼 엮어 수레바퀴처럼 커진 동전 구멍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한다. 그것을 바라보던 욕심쟁이 현씨는 당연히 그 동전 구멍 안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되고... 그 이후의 일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사례다.

 

동전 구멍안으로 들어간 현씨는 결국 자신의 욕심때문에 동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린다. 구멍을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구멍에 끼어 버렸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중에야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현씨의 모습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착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改過遷善!  인생의 지혜는 경험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다. 당해야만 그 뜨거운 맛을 아는 것도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굳이 전래동화를 들먹이지 않아도 고전속에는 그런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교훈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욕심이다. 내려놓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때문에, 비우지 못하는 자신의 욕심때문에 힘겨움이라는 짐을 어깨위에 늘 올려둔 채로 산다. 그저 옛날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켕기는 뒷맛이 씁쓸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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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되고 싶은 가로등 철학하는 아이 6
하마다 히로스케 지음, 시마다 시호 그림, 고향옥 옮김, 엄혜숙 해설 / 이마주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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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다 히로스케... 동양의 안데르센이라는 말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춥다는 북해도 야마가타현에서 태어났고, 추운 날씨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친화적인 아이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런 성장과정이 그를 최고의 동화작가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현재까지도 저자의 작품은 '히로스케 동화'라는 애칭으로 일본의 어린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말이 보입니다. 찾아보니 '일본의 고대 설화집' 을 비롯해 '찌르레기의 꿈(むくどりのゆめ)', '소망 하나(つのねがい)', '용의 눈물()', '울어 버린 빨강 도깨비(いたおに)' 등의 동화를 다수 펴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동화를 엄청 좋아하는지라 여간 기대가 되는게 아닙니다.

 

별이 되고 싶은 가로등... 제목만 보더라도 무슨 이야기일까 짐작이 갑니다. 누구나의 가슴속에 품고 있을 하나의 꿈. 그런 꿈 하나가 있어 각박한 현실을 버티며 살아내는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 마을의 끝자락,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골목 모퉁이에 가로등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땅에 단단히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늘 불안한 가로등은 매일 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모든 게 다 끝나겠지...' 늙어 쓰러지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곤 했던 그 가로등에게는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소원 하나가 있었습니다. 내가 쓰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누군가 별처럼 밝은 놈이군, 그렇게 말해 주었으면.... 하는. 

 

계절이 바뀌고 이제 가로등은 자신의 모습이 쓸쓸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할거라고 서글퍼합니다. 어느 해 질 녘, 날아가는 풍뎅이에게 가로등은 물었습니다. 내 불빛이 별처럼 빛나느냐고. 이상한 가로등이라고 생각한 풍뎅이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하얀 나방에게 물었습니다. "나방아, 혹시 저 별처럼 내 불빛이 빛나 보이지 않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거지? 쏘아붙인 하얀 나방의 말에 가로등은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지요. 별처럼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조용히 빛나고 있으면 되는거잖아. 그게 내 할 일이잖아. 내 역할은 그걸로 충분해... 슬프고 쓸쓸했지만 가로등은 힘을 내기로 합니다. 곧 폭풍우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가로등은 생각했습니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지고 주위는 깜깜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 골목 어귀에서 발소리가 났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이었지만 밝은 표정을 한 아버지와 아들이었습니다. 남자 아이가 가로등 옆을 지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아, 가로등이 저 별보다 밝은 것 같아요." .....

 

남자아이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내 가슴에 설레임이 일었던 것일까요?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만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가로등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가로등에게는 마지막 밤이었답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예쁠수가 있는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의 이야기였던 거죠. 우리는 저마다의 불빛이 다른 불빛보다 더 밝게 빛나길 원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득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이유가 있기에 그자리에 있는 거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묵묵히 제자리에서 제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나를 봐달라고 소리내지 않고도... 그럼에도 어느 순간 다른 모든 것보다 더 밝게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마다 제 빛을 내며 밝게 빛나고 있는데 스스로가 그것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바라보며, 모든 소리를 들으며 살아갈 수는 없는게 우리의 삶이겠지요. 한편의 동화가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네요. 혹시 나도 별이 되고 싶어하는 가로등은 아닐런지 돌아보게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하마다 히로스케의 동화집을 한번 읽어볼 요량입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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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 그들은 왜 교육개혁을 멈추지 않는가
파시 살베리 지음, 이은진 옮김 / 푸른숲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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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그렇다. 그냥 만들어지는 것 없고,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우스개소리 같아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말을 인정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교육은 중요하다.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를 키우는 것도 교육의 힘이요,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는 현세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 또한 교육의 힘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전국민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말이었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배울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昨今의 우리나라 현실을 보라. 교육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오죽했으면 부모교육이니 노인교육이니 하는 말이 생겨나고 있을까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릴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표지에 그들은 왜 교육개혁을 먼추지 않는가, 라는 부제가 보인다.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고, 그만큼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일터다.

 

물론 교육만 개혁한다고 현재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교육과 연계된 행정들이 함께 달라져야 한다. 핀란드의 개혁과정을 보면서 비빔밥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추장 팍팍 넣고 쓱쓱 비비는 그 비빔밥 말고 많은 재료를 넣고 비비지만 각각의 재료의 맛이 제대로 베어날 수 있도록 젓가락으로 비벼 먹는다는 그 비빔밥 말이다. 핀란드의 교육 개혁은 30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만큼 기다려줄 수 있었던 핀란드의 국민성에 탄복할 따름이다. 내실없이 그저 허울뿐인 우리의 행정체계가 과연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기나 할까?

 

세계는 치열한 경쟁구도로 치닫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의 교육현실은 평준화만을 외치고 있다고 한탄하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학교 지도의 목적은 시험 합격이 아니라는 말이 보인다. 오로지 대입 수능만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핀란드의 교육개혁은 너무나도 쉬워보였다. 적게 가르쳐야 많이 배운다, 시험이 적을수록 더 많이 배운다, 다양성을 확대해 형평성을 높인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핀란드의 교육자들은 많은 시간 수업을 하고, 숙제를 많이 한다고 더 잘 배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가 지적으로 전혀 자극이 되지 않는 일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것이라는 말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개인 과외나 보충 수업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대개는 각 학교에서 저학년을 위한 방과 후 활동과 고학년을 위한 공부 모임이나 놀이 모임에 참석한다. 청소년 협회와 스포츠 협회는 청소년들의 학습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활동 기회를 제공한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핀란드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들처럼 많은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평가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교사는 학습 과정 평가가 있다. 또한 매 학기가 끝난 뒤에 학생들의 발달을 평가하는 종합평가가 있다. 그 다음으로 외부 평가가 있는데 3~4년 주기로 읽기, 수학, 과학, 그 밖의 다른 과목에 대한 학습을 평가한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성적표는 교사들이 함께 내리는 전문적인 평가라는 말이다. 그만큼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일 터다. 그야말로 교사와 학생이 하나가 되어 배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핀란드는 전세계적인 평가기준에 그들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화를 이야기하며 정해놓은 잣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핀란드에서 필요한 시스템을 고민하고 생각하여 그것을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핀란드 거주자의 약 4.7퍼센트가 외국 태생이라는 말은 더 놀라웠다. 핀란드 사회의 문화적 이질성을 이미 극복해냈다는 그들. 증가하는 다양성에 발맞춰 좀 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을 보며 진정한 선진국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핀란드에서는 교사라는 직업이 상당히 상위에 속한다. 거기에 교사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 또한 높다고 한다. 물론 교사가 되는 길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만큼 좋은 교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도덕적 사명감에 고취되어 있는 교사라면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우러날 터다. 세상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텝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문제다.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와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멋대로 뜯어고친다면 안하니만 못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의 현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좋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와 교육계의 엇박자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그 와중에 희생되는 건 우리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교사의 전문적인 역할, 학생들과의 관계 등 교육학의 전통적인 가치를 귀히 여기며 가르침. 과거의 경험으로 인증된 교육 관례를 학교 개선의 주요 원천으로 삼음.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판단함에 있어서 교사와 학교장의 전문성을 중시하는 교육제도 안에서 책임과 신뢰의 문화를 구축해 나감. 실패하거나 뒤처질 위험이 있는 학교와 학생들을 지원하는데 재원을 투입함. 표본을 기반으로 학생을 평가함... 세계교육개혁운동이라는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교육정책을 실행에 옮긴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다고해서 핀란드가 세계교육정책과 전혀 관계없는 교육정책을 실시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데도 핀란드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된다... 문득 며칠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대학 총장들이 자율권을 주장하며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정부의 정책이 너무 깊게 관여한다면 지금까지처럼 보여주기식으로 끝날 확률은 높다. 그들의 도전이 제대로 된 도전이기를 바랄뿐이다. 우리의 교육, 이대로는 안된다. 우리에게도 도전이 필요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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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면 더 많이 얻는다 - 동자승 셴얼의 마음코칭
쉐청 지음, 셴판.셴수 그림, 최정숙 옮김 / 담앤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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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이 말을 얼마나 더 들어야 내려놓을 수 있을까? 늘 우리 곁을 맴도는 말이다. 그럼에도 늘 우리는 그것을 갈구한다. 가끔씩 사랑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사랑...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웃으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다, 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게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에 갇혀서 편협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되는 모순 또한 사랑이 안고 있는 難題다. '너를 위해서야' 라고 말은 하지만 상대가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난다. 결국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바라는 이기심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일 터다.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것, 내 안에 있으면서도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 그 마음을 수행하는 방법이 이 책속에 있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말이 빼곡하다. 뻔한 이야기라고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앙증맞은 그림이 이내 시선을 빼앗는다. 책장을 넘기면서 어디선가 보았음직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이외수의 그림책 <사부님, 싸부님>이 생각났다. 까만 점에 꼬리가 달려있던 올챙이, 그 올챙이와 싸부님의 선문답 같았던 이야기... 그림 또한 어제 본 듯 기억이 난다. 이 책, 그런 느낌을 남긴다. 굳이 불교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좀 아쉽다. 昨今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필요한 이야기다. 단순한 그림과 짧은 문장속에 참으로 큰 의미를 담았다. 어디 가느냐? 왕샤오우가 저와 사부님을 욕하기에 그를 위해 기도하러 갑니다. 왕샤오우를 혼내 주거라. 네? 제가 잘못 들은거 아닌가요? 가서 혼내주거라... 퍽! 퍽! 퍽! 탁! 탁! 탁!... 혼내주라고 한 것은 다 그를 위해서다. 선과 악은 그 행동의 동기를 가지고 판단해야 하느니라... 참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사부의 말이 쏙 들어온다. 동자승이 자신의 뜻대로 가서 기도를 했다면 어땠을까? 교과서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보다는 이런 일침의 울림이 더 큰 건 사실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이 책은 말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받아들이면 좋아진다고.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했다면 그 화의 실체를 한번 찾아보라고 한다. 나를 화나게 했던 말을 음미하고 곱씹으면서 거기에 또다른 나의 감정까지 섞어 결국은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게 마음수행이다!

 

큰 스님과 제자가 냇가에 다다랐을 때 물을 건너지 못하는 여인네를 발견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여인네를 큰 스님이 업고 내를 건넜다. 그것을 바라본 제자는 크게 놀라 한참을 생각했다. 스님. 어째서 아까 그 여인을 업었습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제자가 물었을 때 큰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허! 너는 어찌하여 그 여인을 아직도 업고 있느냐?  내려놓으면 그만인 것을 우리는 어째서 그토록이나 오랜동안을 업고 가는 것일까? 내려놓아야 무겁지 않다. 내려놓아야 비워진다. 내려놓음이 비움이다. /아이비생각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 때문에 '내일'이면 후회할 '오늘'을 만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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