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하나, 꽃 한 송이
김이랑 지음, 꾸까 도움말 / 미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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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나라에 공주가 살고 있었다. 그 공주는 북쪽나라의 바다를 지키는 신을 사랑했다. 결국 사랑하는 이를 찾아 북쪽으로 길을 떠났으나 공주가 사랑하는 신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공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를 안 바다의 신은 공주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 문제로 바다의 신은 아내와 다투게 되었고 싸움끝에 아내가 죽자 공주의 무덤 곁에 아내를 묻어 주었다. 공주와 아내는 죽어서 꽃으로 피어났다. 백목련과 자목련으로. 그래서일까? 백목련의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수줍은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녀의 사랑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던 상대가 물에 빠져 죽자 소녀도 그가 죽은 샘에 빠져 죽었다. 그 소녀가 바로 나르시소스를 사랑했던 숲의 님프 프리지아였다. 내가 좋아하는 꽃 목련과 프리지아의 이야기다. 이렇듯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꽃은 자신만의 이야기와 꽃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목련을 좋아한다. 꽃이 질 때 너무 지저분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목련을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질 때 미련없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꽃송이가 크면 좋은 향기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목련은 꽃송이도 크면서 은은한 향을 가지고 있어서 좋고, 꽃이 지고난 후 더욱 더 푸르러지는 잎이 있어서 좋고, 꽃나무인데도 튼튼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또 좋다. 마치 우리네 인생길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꽃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어떤 이는 장미를, 어떤 이는 국화를, 어떤 이는 동백을 좋아한다고 한다. 각자의 느낌이 다른 까닭이다. 이 책에서는 계절별로 46가지의 꽃을 말해주고 있다. 라일락, 베롱나무, 소국, 동백.... 우리 곁에서 피고지면서 계절을 말해주는 꽃들이다. 봐주지 않아도 생글거리며 웃고 있는 들에 핀 꽃이 많지않아 조금은 서운하지만 생각만해도 흐뭇해진다. 그 꽃들을 그림으로 그릴 때 얼마나 행복했을까?  소중한 느낌을 오롯이 그림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각각의 꽃들에 관한 단상이 이채롭다.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짧게 적은 글이지만. 담채화같다. 과하지않은 색채가 오래도록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저마다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 <마음 하나 꽃 한 송이> 라는 책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항상 부럽다. dry flower를 좋아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한 권쯤 있어도 좋을 그런 책이다. 영원히 지지 않을 꽃들이 담겨 있으니.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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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인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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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유전적 요인이라고 알고 있는 '기질'이라는 말이 있다. 태어날때부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질로 제각각 다른 특성을 보인다. 사람마다 기질에 따라 여러모로 반응하는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잘쓰는 말 중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타고난 성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일터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그러는거야?" "내버려 둬,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생긴 사람이야"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뱉어내는 말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원래 그렇게 생긴 사람이라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사람은 원래의 기질이 따로 있는것처럼도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의 하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거기에 적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당연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질'이라는 게 문화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쉽게 생각할 일도 아닌 듯 하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는 책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왜 그러는거야? 라고 한번쯤은 생각해보았던 까닭이다.

 

외국인이 기겁한다는 '우리'라는 표현이 왜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인지.. 한국, 하면 떠오른다는 빨리빨리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국인이 유난히 강하다는 중산층 의식속에 왜 진정한 중산층은 없는지.. 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평등을 원하지 않는 한국인의 속성은 무엇인지.. 대뜸 나이부터 물어야하고,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고향은 어디인지 호구조사를 마쳐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한국인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우리는 왜 '언니'또는 '이모'라는 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는것인지..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라는 궁금증을 이 책이 속시원히 풀어냈다. 아하! 그럴수도 있겠다, 그래 맞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꽤 많다. 왜? 나도 한국인이니까. 그러므로 '그래서 나도 한국인'이라는 말도 되겠다. 그런데 그 풀이하는 시점이 이채롭다. 대부분을 '한옥'이라는 주거형태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알기로 작가는 한옥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옥에 관한 그의 전작을 읽어본 기억을 더듬으며 책을 읽다보니 한옥이라는 우리의 가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역시 문화는 그냥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문득 '情'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의 문화속에 어엿하게 자리했던 '情'을 애써 외면한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책을 읽기전에 한옥에 관한 책을 한 권쯤 읽어본다면 더 좋겠지만 굳이 그런 책을 읽지 않는다해도 마치 저 먼 기억을 불러오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왔던 지난날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당'과 '구들'이라는 형태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많은 특성을 제공했는지.. 왜 지금의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속에 한옥의 특성을 들여놓을 수 밖에 없었는지.. '마당'을 잃어버린 우리가, '아랫목'을 잃어버린 우리가 지금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溫故知新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니었다. 마을사람 모두가 모여 한바탕 잔치를 열었던, 절절 끓어대던 아랫목에서 뜨끈하게 허리를 지지며 '아이구, 시원하다~' 말하던, 그 '마당'과 '아랫목' 문화를 나는 기억한다. 오래되었다고, 새로 생겼다고 더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맞는 문화가 있을 뿐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가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서구화된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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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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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면서 슬쩍 웃음이 났다. 결국 누군가는 말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 항상 그렇다. 우리는 뭔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피해가려고 한다. 누군가가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면 그것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우리의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고, 알고 있는 사실에 반론을 제시하는 걸 싫어한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려고 하면 기존의 것은 기를 쓰고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 거기에 타당성을 제시하거나 합당한 근거를 대라고 소리친다. 그런 면에서보면 이 책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을까? 이미 우리는 평균이 무너져가는 세계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이 책의 주제를 외면해왔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민중을 이끌어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열광적으로 표준화와 평준화를 외쳐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나만 그랬을까?  세상의 흐름과는 다르게 자꾸만 뒤처져가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많은 사람이 한숨을 쉬게 만든다. 내가 학교다닐 때만해도 저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때만해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하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었다. 언젠가부터 평준화교육이 시작되고 그 때부터 제 갈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청춘들이 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평준화와 표준화는 삶의 형태에 등급을 만들기 시작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자던 국민교육헌장은 이미 정치하는 사람들이 밥말아먹은지 오래다.

 

따지고보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평균으로 비교되어진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남들이 '예스'라고 말할 때 나만 '노'를 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평균이 있다. 그 첫번째가 IQ테스트다. 나는 그 모든 항목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가 만들어내는지 엄청나게 궁금했었다. 또 하나는 심리(성격)테스트다. 많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을 가지고 미리 짜놓은 틀에 맞추려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나는 정말 싫었었다. 단지 몇개의 문항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사람에게 넌 그런 사람이야, 라고 단정짓는 것과 뭐가 다른건지.... "오늘 학교에서 직업테스트를 했는데 저에게는 ㅇㅇㅇ 이 적합하데요"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들이 했던 말이지만 지금의 아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만족스럽게. 그런 것만 봐도 평균의 종말은 벌써 와야 했다. 그래서 이제서야 저런 말을 들먹인다는 게 너무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는 개개인을 시스템에 맞추기보다 시스템을 개개인에 맞추게 됐다. (-27쪽)

평균주의는 우리의 사고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제한된 패턴에 따르도록 유도한다. (-113쪽)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수많은 평균에 비교해 평가하도록 조장하며, 아니 강요하며 우리에게 그 정당성을 끝도 없이 제시하고 있다. (-114쪽)

평등한 접근권은 한가지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 시스템이 실제로 잘 맞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표준화된 시스템에 접하도록 함으로써 개개인의 기회를 평균적으로 최대화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점이다.(-267쪽)

몇 줄의 글귀를 빌려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듬어본다. 평균이 어째서 불합리한지를 말하면서 저자는 이런 말도 했다. 평균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①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②성적 대신 실력의 평가, ③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하기, 를 채택해야 한다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무서워진다. 좋은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좋은 제도를 어떻게 적용시키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해도 사회시스템이 그것을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제대로 실력을 쌓고 그것을 평가해 줄만한 시스템이 없으면 그것 또한 아무 소용이 없다.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을 준다는 것도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교육시스템은 한번 자리잡으면 그것을 바꾸기위한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오죽하면 교육을 '百年大計' 라고 했을까? 100년이 아니라 10년도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지금처럼  '耳懸鈴鼻懸鈴' 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더 까마득하다.  /아이비생각


공교육의 목표는 계몽화가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은 가능한 한 많은 개개인들을
똑같은 안전 수준으로 강등히시고
표준화된 시민을 길러내고 훈련시키면서
반대 의견과 독창성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의 공교육이 내세우고 있는 목표다.

- 책소개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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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혁명 2030
사이먼 B. 버락 지음, 엄성수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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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자율주행차 사고, 운전자 사망... 뉴스에서 요란하게 다루고 있는 듯한 느낌에 눈길이 갔다.  예전에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부르면 저 혼자 알아서 나타나는 그런 차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로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자율주행차라는 건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차라고 하니 영화가 현실이 되는 건가?  뭐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을거라는 걸 예측하는 게 어렵지는 않겠다. 그러니 저렇게 크게 보도되는거겠지...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크지 않았을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차를 좋아하나?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좋아하기는 커녕 차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SUV나 RV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다. 하이브리드가 어쩌구저쩌구해도 뭔 소리야? 했었다. 나한테 차는 그냥 차다. 좋고 나쁘고가 없고 그저 크고 작은 형태로 사람으로 치면 옷만 바꿔입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눈길이 간 것은 어느날 남편이 했던 혼잣말이 떠올라서였다. 고장난 차 옆을 지나며 이렇게 말했었다. 차를 타고 다닐 줄만 알았지 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어. 많은 사람이. 나도 그 중 한사람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 책 정말 어려웠다. 일단 차에 대한 용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물론 뒤에 짧게나마 용어해설이 있긴 하지만 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시피하니.... 그래서 한참동안 책과 씨름했다. 전기차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살짝 흥미롭기는 했지만.

 

자율주행차는 차치하고, 이 책은 전기자동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휘발유가 아닌 전기로 움직이는 차. 전기차에 대한 말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지는 못해도 여러가지 여건이 충족된다면 전기차를 타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이 책은 미래자동차로 단연 으뜸인 게 전기자동차라고 말하고 있다. 환경적인 요인을 생각해서라도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자동차가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한숨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민관이 서로 힘을 합쳐야만 전기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말한다. 전기자동차가 가져올 산업의 변화가 무궁무진할 거라고 말하고 있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는 문제점도 해결될 거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류는 너무나 편하고 빠른 것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 편하고 빠른 것을 위해 우리가 잃어야 했던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전기차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였다. 빅브라더의 시대를 예고했던 책. 그리고 우리는 이미 빅브라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Utopia 를 찾아서 달려 온 우리는 이미 dystopia 라는 나라를 만들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획일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전기가 끊어지면 모든 삶이 멈춰버릴 것만 같은 지금의 우리 생활은 항상 불안감을 조성한다. 편하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희생시켜야 할 것은 아마도 엄청날 것이다. 자유를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삶. 빨리 전기자동차의 세상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듯한 완강함이 느껴져 책을 읽는 동안 껄끄러웠다. 하지만 전기차에 대한 상식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재미있을수도 있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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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매슈 설리번 지음, 유소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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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가볍게 책을 펼쳤다.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면서 여기까지만 읽어야지, 여기까지만 읽어야지... 하기를 몇 번. 그러나 나는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을 쥔 손이 도무지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만큼이나 몰입도가 강했다는 말이다.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그 다음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건데? 궁금증이 끝도없이 밀려왔다. 이렇게나 급하게 달려보는 손맛이 얼마만인지.... 짜임새도 독특했다. 분명 과거를 향해 가고 있는데도 나는 현실에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엉키며 순간마다 멋지게 조여드는 그 맛이라니! 그러다가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가슴이 아팠다. 결국,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던 그 때를 누가 기억해줄까?  힘겨운 세상을 버텨내고 싶었던 외로운 청년 조이의 그 아픔은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리디아는 책을 사러 오는 고객보다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편히 쉴 곳이 없어 서점을 마치 제집처럼 드나들던 그들. 그들을 그녀는 책개구리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교도소에서 이제 막 출소했다던 청년 조이가 그녀가 일하는 서점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조이의 주머니속에 어째서 리디아의 어릴 적 사진이 들어있었을까?  그 사건은 가슴 깊숙하게 묻어 두었던 그녀의 아픈 과거를 불러오게 된다. 사랑하는 남자에게조차 말 할 수 없었던 그녀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리디아는 궁금했다. 조이가 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죽으면서 왜 그녀에게 유품을 남겼는지.

 

조이가 유품으로 남긴 책들을 살펴보던 그녀의 눈에 작은 사각형으로 된 구멍이 보인다. 그 구멍만큼 짤려나간 글자들... 조이의 죽음은 그녀가 과거속으로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가게 하지만 그 기억은 그녀에게 아직은 열 수 없는 상자였다. 하지만 조이가 뚫어놓은 구멍속에서 쏟아져나온 글자들은 이제 제발 그 기억과 마주해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녀는 20년 전 끔찍한 살인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친구의 집에서 파티를 하던 그날 밤, 한 남자가 망치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와 친구와 그녀의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라져버렸다. 그때 간신히 부엌까지 기어가 싱크대 안에 몸을 숨겼던 리디아는 그 모든 소리를 다 들었으며 싱크대의 문은 마지막까지 열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안겨 그 집을 나왔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피투성이가 된 그 참혹한 광경을 보면서.

 

이 책,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물과 또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은 좀처럼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추리와 스릴러가 정당히 어우러져서 기가 막힌 반전을 불러왔다. 단언컨대 섣부른 예단은 오히려 당신을 한방 먹인다. 하지만 나는, 서점이라는 책의 배경이 너무 좋았다. 켜켜이 쌓인 책들에 둘러쌓였을 리디아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서점직원들끼리의 살가운 대화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남기고 싶었던 말이 책의 뚫린 구멍속에서 쏟아져나왔을 때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장치를? 기가 막히군! 도대체 그는 왜 이렇게 장난같은 유언을 남긴 것일까?  어쩌면 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은 몇마디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처절하리만치 외로웠던 그의 짧은 삶속에서 그가 원했던 건 단지 그것뿐이었다고.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하지만 세상은, 한사람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이지 않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규칙과 잣대에 얽매인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외면하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외롭고, 너무 아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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