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100쇄 기념 에디션)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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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글에는 그리고 삶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책표지에 있는 말이다.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책을 볼 때 제목에 낚임을 당하거나 혹은 끌림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은 끌림쪽에 속한다. 언어의 온도라는 게 뭐 별 것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따뜻한 말이나 차가운 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다르게 불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끌렸다. 어쩌면 이 책속에는 따스한 말들이 가득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표지의 색깔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多言이 失言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30쪽)

요즘 쓸데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사는 것 같아, 라는 느낌이 들어 가끔 내가 하는 말에 대해 돌이켜볼 때가 있다. 정말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고 살았다고 느껴질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허탈감이다. 내가 뱉어놓은 말이 혹여 나에게 되돌아와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뱉은 말로 혹여 아파하는 사람이 없기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내가 했던 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나이들수록 겸손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어찌보면 싫고 좋음이 너무 확실한 탓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말이 남에게 상처를 줄까봐 조심스럽다. 그런 까닭인지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편이 훨씬 편할 때도 있다. 특히나 가까운 사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게 말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라는 말과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의 말을 빌어본다면 사과를 뜻하는 단어 '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 사과의 한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사과의 謝사에는 본래 '면하다' 혹은 '끝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過과는 지난 과오다. 지난 일을 끝내고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니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한다고 말을 하곤 하는데 그 진심어린 사과가 어떤 것인지를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래저래 상대방을 향한 헤아림이 필요하다. 관심과 배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昨今의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말이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몸뚱어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사정과 까닭을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게 현실인 듯하다. 우리 마음속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매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일까. 가끔은 아쉽기만 하다. (-63쪽)

책을 읽다가 문득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책날개를 찾아보니 이채로운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띈다. 을 쓰고 책을 만든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쓴다. 고민이 깃든 말과 글에 탐닉한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 언제 태어났는지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항상 나오는 말보다 멋진 수식어들이 내게 다가온다. 색다른 소개글에 이끌려 그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 <말의 품격>, <언어의 온도>,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일상에서 놓친 소중한 것들>,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등이 있다. 많은 책의 제목을 보면서 문득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이 없는데 그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던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은 당신처럼 이렇게 따스한 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조금씩 메워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결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아니라고. 당신말처럼 희망을 버린 것이 체념이라면 아직은 체념할 때가 아니라고. 이렇게 주제넘은 대답을 하고 싶어지는 건 마치 설득력있는 한 권의 시집을 읽은 듯한 책의 여운때문이다. 책을 덮기 전 작가의 말을 되뇌인다.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싸워야 할 대상이 차고 넘치는데 '나'를 향해 칼끝을 겨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신과의 싸움보다 자신과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292쪽) 요즘 내 삶의 목표이기도 하여 왠지 나를 응원해주는 말처럼 들려 좋다. 한 권의 책이 쓸쓸한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아이비생각

 

짚고 넘어가자. 전체적인 느낌이 아무리 좋았다해도. 이 책은 사실 뒷심이 부족하다. 뒤의 몇 쪽은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굳이 아팠다는 걸 글로 옮기면서까지 쪽수를 채워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급하게 마무리하면서 그저 끄적거렸던 글들을 가져다놓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쪽수가 많다고해서 그만큼 짙은 여운이 길어지는 건 아니다. 읽고나서야 알았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걸. 그러나 어차피 나는 베스트셀러라는 걸 믿지 않는다. 스테디셀러라면 모를까. 그래서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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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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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25쪽)

 

'아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식사하는 것도,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도 귀찮았다. 그것은 내가 또하나의 나와 소리가 통하지 않는 유리벽으로 차단되어, 저쪽에 있는 나는 그저 우울하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매일 속에서 죽음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내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다.' (-83쪽)

 

'.....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아니, 가지려고 한 적도 없고 그저 당신 속에서만 무언가를 찾아 그걸 그대로 우리 두 사람의 것으로 공유하기를 바라고 있었어. 당신이 가진 그 무엇에 몸을 맡기고, 거기에 나 자신을 지탱하고자 하는 나태한 바람을 가졌던 것뿐이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어.' (-186쪽)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196쪽)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이 세상에 떠돈지는 꽤 오래전의 일이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한번 묻고 싶다. 왜 청춘은 꼭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지? 왜 젊었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지? 말하기 쉽게 젊었을 때의 아픔, 즉 실패와 고난은 살아가는데 거름이 되어준다는 의미일테지만 굳이 사서까지 고생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때의 상황에 맞춰 헤쳐나가야 할 일이 있다면 헤쳐나가면 그 뿐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을테고, 또 그렇게 살아왔을테니까.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젊은 시절의 시행착오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시행착오를 어떻게 대처하는가만 다를 뿐. 뜬금없이 청춘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다.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학창시절의 치기어린 마음에 대해 다시한번 피식 웃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상에 미치고 철학에 미쳤던 그 순간들. 또는 문학에 미치거나... 지나고보면 그 땐 그랬었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그런 순간들. 그러나 이 책은 상당히 날카롭다.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의 미혹에 대하여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종이에 베인 것처럼 가슴 한 켠에 은근한 아픔이 찾아온다. 나도 그랬었다고, 나도 그렇게 방황할 때가 있었다고. 그 때의 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은 문학가 신형철의 추천사 한줄 때문이었다. 최고의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라는 문장을 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인생의 책이란 말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싶었다. 얼만큼의 깊이와 얼만큼의 울림이었던 것일까? 내게는 인생의 책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는 책이 있기는 할까? 焉敢生心! 이 책은 저자 시바타 쇼가 서른 살에 자신의 대학시절을 담아 쓴 소설로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말이 보인다. 출간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아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말도. 1955년, 혼란의 시대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낸 젊은이들과 그 이후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시기적으로 한국전쟁과 그것으로 인해 일본에 미칠 여러 정세에 관하여 일본 젊은이들은 혼란스러운 사상의 세상을 버텨낸 듯 하다. 마치 우리의 7,80년대를 마주한 느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다 똑같은 모양이다. 헌책방에서 알 수 없는 기운에 밀려 주인공이 전집을 사게 되는 책의 도입부가 참 좋았다. 완전히 새 책에 가까웠던 그 전집의 존재로 인해 이야기는 시작되어지지만 돈에 맞춰서 반만 사고 나머지 반은 나중에 살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책방 주인의 말이 또 걸작이다. 누구는 사자마자 헌책으로 팔아버리고 또 누구는 남이 버린 그 헌책을 굳이 사겠다고 기다려달라고 한다는. 시작부터 아주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책이다.

 

이 책은 아마도 한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젊은날의 방황에 대한 표현이 세밀하다 못해 농밀하다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정말 이채롭다. 알 듯 말 듯한 문장들의 의미를 다시한번 곱씹게 한다. 뜬금없이 원작을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리 많지도 않은 등장인물들이 마치 하나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더디고 짧은 나의 책읽기를 뒤돌아보며 한숨짓게 만든다. 갈 길이 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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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빌라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2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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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날씨가 수상하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진눈깨비가 내린다. 쿠궁쿵쿵 어디선가 구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하늘이 보인다. 이게 무슨 조화속인지... 그러기를 반나절째다. 봄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렇게 요란한 신고식을 해놓고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슬쩍 가버리고 만다. 이런 날씨를 빗대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인생도 그렇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조차 끝까지 살아보지 못했으면서. 이 소설도 그렇다. 아직 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결국 그들의 짧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좋아질만한 티끌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결국 나도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고 말았다. 후우~ 큰 숨을 내뱉으면서, 삶을 내려놓는 그 때부터 그들의 봄은 시작일거라고 생각해버렸다. 누구나 인생의 봄날을 꿈꾸며 산다. 그러나 누구나 인생의 봄날만을 꿈꾸며 살지는 않는다. 추운 겨울에 봄날같은 따스함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희망을 꿈꾸긴해도. 주인공 솔희가 그랬을 것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결혼생활을 끝내고 그녀가 갖고 싶었던 건 더딘 겨울이 잉태하고 있었을 그 따스한 봄날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소개글을 보다가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이력이 눈에 띄었다. 세계문학상수상작을 몇 편 읽어보았지만 작가의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손을 내밀었다. <미실>, <아내가 결혼했다>, <내 심장을 쏴라>, <컨설턴트>, <저스티스 맨>, <꽃그림자 놀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꽤나 많이 배출되었다. 각 작품마다의 특징이 이채로워서 현실적이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한 느낌을 받았었다. 시냇가빌라라는 이름처럼 맑고 고운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았겠지만 책의 주제는 의외로 무겁다. 사랑인 듯 보이나 사랑이 아닌 실체를 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고 있음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무심함과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있다. 남편의 폭력과 두 번의 유산, 그리고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 남편의 뻔뻔함에 질려 그녀는 이혼을 했다. 4년간의 결혼생활이 그녀에게 남긴 것은 모멸과 분노였다. 그 후 그녀 솔희가 살게 된 곳이 바로 시냇가빌라다. 그러나 삶은 잔인하다. 가난한 생활과 이웃과 얽히는 모든 일이 전쟁이다. 전쟁은 우군과 적군을 동시에 만들어내며 이해와 오해 또한 쌍둥이처럼 같이 온다. 그 전쟁에서 누가 패자이고 누가 승자인가는 알 길이 없다.

 

'시신의 핸드폰에서 짧게 신호음이 울린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녹녹치않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들이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결말을 맺게 되어 미안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만 사회적인 약자의 삶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당신은 알고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만 같다. 어쩌면 작가는 그토록이나 추웠을 그들에게 따스한 봄날을 조금 더 일찍 느끼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냇가빌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다. 주인공 솔희는 201호에 산다. 툭하면 올라와 솔희를 죄인다루듯 하는 아래층 여자, 척추장애를 갖고 있는 302호의 해아저씨, 그 아저씨를 짝사랑하는 202호의 공방아줌마, 301호의 늙은 화가와 야쿠르트 아줌마, 솔희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티티와 강아지 말랭이, 굳이 보내지 말라는 붕어즙과 붕어찜을 온갖 나물과 함께 보내는 솔희 엄마, 이혼 후 1년쯤 지나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하는 남편... 짐작대로 그들의 삶은 그들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고스란히 그림처럼 옮긴 작가의 글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마치 영화와 책을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마치 우리 옆집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공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그 화이팅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에. 날씨는 여전히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중이다. /아이비생각

눈이 다시 내린다.

아직도 세상을 하얗게 덜 칠했나 보다.

하얗게 모두 칠하면 세상은 더없이 고요해질까.

경건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순백의 은혜로움으로 밤마다 뒤척이는 모든 지상의 아픔들을 어여삐 거두어주실까.

잠시 소망해보는 사이,

눈은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내린다.

눈은 제법 내릴 것 같다.

- 14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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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사랑
이순원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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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주인공부터 알고 가야 한다. 붉은머리 오목눈이... 흔히 뱁새라고 불리운다는 작은 새. 주로 한국이나 중국, 미얀마등에서 살며 참새와 비슷하지만 벼이삭보다는 풀씨나 곤충류를 먹고 산다. 키 작은 나무에 지푸라기와 죽은 잡목의 나무 껍질등을 거미줄로 연결해서 둥지를 만든다. 붉은머리 오목눈이의 둥지는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보통은 푸른 색의 알을 낳고 뻐꾸기와 누룩뱀이 천적이다. 그런데 뻐꾸기가 천적이라고? 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잘 알다시피 뻐꾸기는 탁란으로 유명하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그 새로 하여금 자기의 알을 부화시켜 키우게 한다. 그런데 그 뻐꾸기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대부분 붉은머리 오목눈이라고 하니 천적이라 할 만 하다. 뻐꾸기의 탁란은 자연다큐에도 자주 등장한다. 하루나 이틀 먼저 부화하여 자신 가까이에 있는 알이나 나중에 태어난 다른 새끼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거지? 했었다. 그런 모든 과정이 자연의 순리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모든 것의 불행은 순리를 거스를 때 찾아온다. 자연의 법칙 또한 그렇다. 자연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흐른다. 아프면 스스로 치유해가면서. 너무 빠르면 잠시 늦추기도 하면서. 그러나 인간은 어떤가. 엄청난 자연속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만도 못한 존재이면서 하늘 아래 저만 잘난 줄 알고 사는 게 인간이다. 昨今에 이르러 빈번하게 일어나는 자연재해만 봐도 이제는 우리의 삶도 느슨해 질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함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빠르게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가고 있는지 한번쯤은 살펴봐야 한다고.

 

오목눈이 육분이는 세번이나 뻐꾸기의 새끼를 키워냈다. 제 새끼를 밀어내는 뻐꾸기 새끼를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육분이의 이름은 원래 육분의다. 육분의는 별자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배의 위치를 판단하기 위해 천체와 수평선 사이의 각도를 측정하는 기기라는 걸 나는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눈치가 빠르다면 육분의라는 이름이 뭘 말하고 있는지 미리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던 새끼 앵두가 뻐꾸기어미를 따라 가버리고 난 후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 육분이는 마침내 길을 떠나기로 한다. 앵두가 그립기도 했지만 묻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고난을 겪어내며 마침내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앵두를 만났으나 육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왜 그랬을까? 이쯤에서 말해두자면 뻐꾸기는 철새다. 5월초에 찾아와 탁란을 하고 새끼가 자라 날 수 있게 되면 제 새끼를 불러내 8월초에 다시 떠난다. 뻐꾹뻐꾹하며 우는 게 수컷이고 암컷은 삐이삐이하는 소리를 낸다.

 

어른에게 들려주는 동화, 라는 말은 이미 시작부터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寓話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장르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童心을 한자락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면 빡빡한 삶의 바퀴가 조금은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오래전에 읽었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멋진 삶을 위해 평범함을 거부했던 갈매기 조나단의 모험을 그린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모험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어머니께 이 글을 바칩니다,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이 뻐꾸기새끼를 제 새끼인줄 알고 키워낸 오목눈이 엄마새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그러나 오목눈이 엄마새의 여정을 통해 작가의 안타까움이 담긴 또하나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아니 세 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새와 뻐꾸기의 삶에 대한 것이 그 첫번째이고, 세번이나 얽힌 뻐꾸기와의 묘한 인연에 대한 오목눈이의 철학적인 성찰이 두번째이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작가의 메세지가 세번째 이야기이다. 책띠에서 보이는 말이 따갑게 눈에 들어온다. 의미없는 비교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작고 고독한 오목눈이가 전하는 삶의 아름다운 가치.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 책띠조차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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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그리고 테오 - 반 고흐 형제 이야기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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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빈센트 반 고흐 형제의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딱히 제목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 이 그림! 할 것이다. 그만큼 색채감이 강렬하다. 하지만 당시의 미술계에서 그의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다. 추상화라는 장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대중도 사진처럼 잘 그려진 풍경화나 인물화를 더 인정했던 시기이니 우리가 당대의 화가로 알고 있는 마네나 모네도 무시당하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고흐의 자화상에 얽힌 일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고갱과도 연관이 있는 일화다. 일전에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으면서 고갱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참 많았다. 이 책을 통해 고흐라는 화가를 다시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의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동생 테오와의 편지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1890년, 37세의 나이로 고흐가 죽었을 때까지도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죽은 후에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평탄하지 못했던 그의 삶의 통해 그가 그리고자 했던 그림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하지만 그의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주제넘은 짓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원적인 풍경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도 있겠지만 자연에 공감하는 그의 탁월함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다. 청년이 되고 독립을 해야 할 시기가 되어 목사인 아버지의 길을 따라 전도사로서의 삶도 살아보게 되지만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은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술로 가는 길은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 때 그에게 구세주 역할를 하게 된 것이 동생 테오다. 화랑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테오에게는 형의 존재가 어쩌면 어깨를 짓누르는 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형제사이가 늘 좋을 수 만은 없었다. 각각의 삶으로 존재하지만 또 같이 가야할 삶이었기에 형제의 고뇌는 깊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견뎌내며 정신적인 아픔으로 인해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고흐의 그림은 날로 발전하게 된다. 좋아지는 그림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형제의 시선에도 따스함이 묻어나기 시작하지만 삶의 수레바퀴는 때로 자갈밭길에서 삐그덕거리기도 한다. 운명의 장난일까? 고흐와 테오는 무슨 일인지 비슷한 삶의 여정을 걷게 된다. 사랑도 건강도. 그렇지만 형제는 더욱 더 강한 형제애로 그런 삶의 힘겨움과 맞서 싸운다.

 

사실 고흐의 작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동생 테오의 덕분이 아니었다. 테오의 아내 요의 노력으로 고흐의 작품은 세상과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고흐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요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남편 테오와 고흐의 형제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점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고흐와 테오가 살아 생전에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편지를 정리해 책을 냈기 때문이다. 고흐의 작품을 소중하게 여겨 갤러리가 아닌 일반 집에서 그의 작품만을 전시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물려받은 조카 빈센트 빌렘 반 고흐가 반고흐 미술관을 설립하는 일을 도왔다. 1973년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설립되어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갔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동생 테오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고흐의 작품을 바라보는 깊이가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난 후 고흐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아를풍경>, <꽃이 핀 과수원>, <씨 뿌리는 사람>,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 <생 레미 요양소의 정원>, <폴 고갱의 의자>, <우체부 조셉 룰랑의 초상> 등 엄청나게 많은 그림이 태어나게 된 배경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놀라워라, 고흐의 <자화상>이 그렇게만 많았다니! <해바라기>시리즈는 또 어떻고! 그럼에도 그 강한 색채로 인해 그림에 대한 나의 완고함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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