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빌라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2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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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날씨가 수상하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진눈깨비가 내린다. 쿠궁쿵쿵 어디선가 구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하늘이 보인다. 이게 무슨 조화속인지... 그러기를 반나절째다. 봄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렇게 요란한 신고식을 해놓고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슬쩍 가버리고 만다. 이런 날씨를 빗대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인생도 그렇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조차 끝까지 살아보지 못했으면서. 이 소설도 그렇다. 아직 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결국 그들의 짧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좋아질만한 티끌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결국 나도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고 말았다. 후우~ 큰 숨을 내뱉으면서, 삶을 내려놓는 그 때부터 그들의 봄은 시작일거라고 생각해버렸다. 누구나 인생의 봄날을 꿈꾸며 산다. 그러나 누구나 인생의 봄날만을 꿈꾸며 살지는 않는다. 추운 겨울에 봄날같은 따스함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희망을 꿈꾸긴해도. 주인공 솔희가 그랬을 것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결혼생활을 끝내고 그녀가 갖고 싶었던 건 더딘 겨울이 잉태하고 있었을 그 따스한 봄날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소개글을 보다가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이력이 눈에 띄었다. 세계문학상수상작을 몇 편 읽어보았지만 작가의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손을 내밀었다. <미실>, <아내가 결혼했다>, <내 심장을 쏴라>, <컨설턴트>, <저스티스 맨>, <꽃그림자 놀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꽤나 많이 배출되었다. 각 작품마다의 특징이 이채로워서 현실적이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한 느낌을 받았었다. 시냇가빌라라는 이름처럼 맑고 고운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았겠지만 책의 주제는 의외로 무겁다. 사랑인 듯 보이나 사랑이 아닌 실체를 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고 있음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무심함과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있다. 남편의 폭력과 두 번의 유산, 그리고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 남편의 뻔뻔함에 질려 그녀는 이혼을 했다. 4년간의 결혼생활이 그녀에게 남긴 것은 모멸과 분노였다. 그 후 그녀 솔희가 살게 된 곳이 바로 시냇가빌라다. 그러나 삶은 잔인하다. 가난한 생활과 이웃과 얽히는 모든 일이 전쟁이다. 전쟁은 우군과 적군을 동시에 만들어내며 이해와 오해 또한 쌍둥이처럼 같이 온다. 그 전쟁에서 누가 패자이고 누가 승자인가는 알 길이 없다.

 

'시신의 핸드폰에서 짧게 신호음이 울린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녹녹치않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들이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결말을 맺게 되어 미안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만 사회적인 약자의 삶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당신은 알고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만 같다. 어쩌면 작가는 그토록이나 추웠을 그들에게 따스한 봄날을 조금 더 일찍 느끼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냇가빌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다. 주인공 솔희는 201호에 산다. 툭하면 올라와 솔희를 죄인다루듯 하는 아래층 여자, 척추장애를 갖고 있는 302호의 해아저씨, 그 아저씨를 짝사랑하는 202호의 공방아줌마, 301호의 늙은 화가와 야쿠르트 아줌마, 솔희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티티와 강아지 말랭이, 굳이 보내지 말라는 붕어즙과 붕어찜을 온갖 나물과 함께 보내는 솔희 엄마, 이혼 후 1년쯤 지나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하는 남편... 짐작대로 그들의 삶은 그들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고스란히 그림처럼 옮긴 작가의 글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마치 영화와 책을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마치 우리 옆집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공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그 화이팅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에. 날씨는 여전히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중이다. /아이비생각

눈이 다시 내린다.

아직도 세상을 하얗게 덜 칠했나 보다.

하얗게 모두 칠하면 세상은 더없이 고요해질까.

경건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순백의 은혜로움으로 밤마다 뒤척이는 모든 지상의 아픔들을 어여삐 거두어주실까.

잠시 소망해보는 사이,

눈은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내린다.

눈은 제법 내릴 것 같다.

- 14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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