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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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25쪽)

 

'아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식사하는 것도,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도 귀찮았다. 그것은 내가 또하나의 나와 소리가 통하지 않는 유리벽으로 차단되어, 저쪽에 있는 나는 그저 우울하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매일 속에서 죽음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내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다.' (-83쪽)

 

'.....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아니, 가지려고 한 적도 없고 그저 당신 속에서만 무언가를 찾아 그걸 그대로 우리 두 사람의 것으로 공유하기를 바라고 있었어. 당신이 가진 그 무엇에 몸을 맡기고, 거기에 나 자신을 지탱하고자 하는 나태한 바람을 가졌던 것뿐이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어.' (-186쪽)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196쪽)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이 세상에 떠돈지는 꽤 오래전의 일이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한번 묻고 싶다. 왜 청춘은 꼭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지? 왜 젊었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지? 말하기 쉽게 젊었을 때의 아픔, 즉 실패와 고난은 살아가는데 거름이 되어준다는 의미일테지만 굳이 사서까지 고생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때의 상황에 맞춰 헤쳐나가야 할 일이 있다면 헤쳐나가면 그 뿐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을테고, 또 그렇게 살아왔을테니까.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젊은 시절의 시행착오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시행착오를 어떻게 대처하는가만 다를 뿐. 뜬금없이 청춘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다.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학창시절의 치기어린 마음에 대해 다시한번 피식 웃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상에 미치고 철학에 미쳤던 그 순간들. 또는 문학에 미치거나... 지나고보면 그 땐 그랬었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그런 순간들. 그러나 이 책은 상당히 날카롭다.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의 미혹에 대하여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종이에 베인 것처럼 가슴 한 켠에 은근한 아픔이 찾아온다. 나도 그랬었다고, 나도 그렇게 방황할 때가 있었다고. 그 때의 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은 문학가 신형철의 추천사 한줄 때문이었다. 최고의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라는 문장을 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인생의 책이란 말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싶었다. 얼만큼의 깊이와 얼만큼의 울림이었던 것일까? 내게는 인생의 책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는 책이 있기는 할까? 焉敢生心! 이 책은 저자 시바타 쇼가 서른 살에 자신의 대학시절을 담아 쓴 소설로 1964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말이 보인다. 출간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아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말도. 1955년, 혼란의 시대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낸 젊은이들과 그 이후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시기적으로 한국전쟁과 그것으로 인해 일본에 미칠 여러 정세에 관하여 일본 젊은이들은 혼란스러운 사상의 세상을 버텨낸 듯 하다. 마치 우리의 7,80년대를 마주한 느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다 똑같은 모양이다. 헌책방에서 알 수 없는 기운에 밀려 주인공이 전집을 사게 되는 책의 도입부가 참 좋았다. 완전히 새 책에 가까웠던 그 전집의 존재로 인해 이야기는 시작되어지지만 돈에 맞춰서 반만 사고 나머지 반은 나중에 살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책방 주인의 말이 또 걸작이다. 누구는 사자마자 헌책으로 팔아버리고 또 누구는 남이 버린 그 헌책을 굳이 사겠다고 기다려달라고 한다는. 시작부터 아주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책이다.

 

이 책은 아마도 한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젊은날의 방황에 대한 표현이 세밀하다 못해 농밀하다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정말 이채롭다. 알 듯 말 듯한 문장들의 의미를 다시한번 곱씹게 한다. 뜬금없이 원작을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리 많지도 않은 등장인물들이 마치 하나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더디고 짧은 나의 책읽기를 뒤돌아보며 한숨짓게 만든다. 갈 길이 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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