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100쇄 기념 에디션)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과 글에는 그리고 삶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책표지에 있는 말이다.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책을 볼 때 제목에 낚임을 당하거나 혹은 끌림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은 끌림쪽에 속한다. 언어의 온도라는 게 뭐 별 것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따뜻한 말이나 차가운 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다르게 불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끌렸다. 어쩌면 이 책속에는 따스한 말들이 가득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표지의 색깔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多言이 失言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30쪽)

요즘 쓸데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사는 것 같아, 라는 느낌이 들어 가끔 내가 하는 말에 대해 돌이켜볼 때가 있다. 정말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고 살았다고 느껴질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허탈감이다. 내가 뱉어놓은 말이 혹여 나에게 되돌아와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뱉은 말로 혹여 아파하는 사람이 없기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내가 했던 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나이들수록 겸손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어찌보면 싫고 좋음이 너무 확실한 탓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말이 남에게 상처를 줄까봐 조심스럽다. 그런 까닭인지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편이 훨씬 편할 때도 있다. 특히나 가까운 사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게 말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라는 말과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의 말을 빌어본다면 사과를 뜻하는 단어 '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 사과의 한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사과의 謝사에는 본래 '면하다' 혹은 '끝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過과는 지난 과오다. 지난 일을 끝내고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니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한다고 말을 하곤 하는데 그 진심어린 사과가 어떤 것인지를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래저래 상대방을 향한 헤아림이 필요하다. 관심과 배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昨今의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말이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몸뚱어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사정과 까닭을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게 현실인 듯하다. 우리 마음속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매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일까. 가끔은 아쉽기만 하다. (-63쪽)

책을 읽다가 문득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책날개를 찾아보니 이채로운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띈다. 을 쓰고 책을 만든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쓴다. 고민이 깃든 말과 글에 탐닉한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 언제 태어났는지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항상 나오는 말보다 멋진 수식어들이 내게 다가온다. 색다른 소개글에 이끌려 그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 <말의 품격>, <언어의 온도>,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일상에서 놓친 소중한 것들>,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등이 있다. 많은 책의 제목을 보면서 문득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이 없는데 그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던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은 당신처럼 이렇게 따스한 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조금씩 메워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결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아니라고. 당신말처럼 희망을 버린 것이 체념이라면 아직은 체념할 때가 아니라고. 이렇게 주제넘은 대답을 하고 싶어지는 건 마치 설득력있는 한 권의 시집을 읽은 듯한 책의 여운때문이다. 책을 덮기 전 작가의 말을 되뇌인다.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싸워야 할 대상이 차고 넘치는데 '나'를 향해 칼끝을 겨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신과의 싸움보다 자신과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292쪽) 요즘 내 삶의 목표이기도 하여 왠지 나를 응원해주는 말처럼 들려 좋다. 한 권의 책이 쓸쓸한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아이비생각

 

짚고 넘어가자. 전체적인 느낌이 아무리 좋았다해도. 이 책은 사실 뒷심이 부족하다. 뒤의 몇 쪽은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굳이 아팠다는 걸 글로 옮기면서까지 쪽수를 채워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급하게 마무리하면서 그저 끄적거렸던 글들을 가져다놓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쪽수가 많다고해서 그만큼 짙은 여운이 길어지는 건 아니다. 읽고나서야 알았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걸. 그러나 어차피 나는 베스트셀러라는 걸 믿지 않는다. 스테디셀러라면 모를까. 그래서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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