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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
정재환 지음 / 김영사 / 2005년 3월
평점 :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 안 웃기는 개그맨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전유성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소개드릴 책의 글쓴이인 정재환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그는 개그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반듯합니다. 마흔에 대학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대학생, 지금은 대학원생, 한글문화연대 부대표이기도 한 그는 '우리말을 잘 아는 또는 사랑하는 방송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그는 늦게 시작한 공부에 최선을 다해 성균관대 인문학부를 수석졸업하며 2003년 2월에 대통령상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말 사랑을 담은 또 한 권의 책을 냈습니다. 《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이라는 책인데,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저는 비록 읽어보지 못했지만 예전에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를 냈습니다.
이 책은 정말 가볍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직접 찍거나 인터넷에서 참조한 사진들을 통해 우리의 언어 생활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아래 그림은 책에도 나오는 그림입니다. 어느 초등학생의 답안지라고 하는데, 제발 조작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글쓴이나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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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서울시내 버스의 G R Y B 표시의 한심함을 시작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문자 환경과 일상적 언어 생활의 문제점을 짚습니다. 서울에는 '지랄염병(GRYB)'이 달리고, '택시' 대신 'TAXI' 정류장이 있습니다. 붉은 악마의 구호는 'Be the Reds!'이고 국민은행 대신 외국계(?) 'KB'가 들어섰습니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러한 억지 영어 표현 뿐만 아니라, 옛 중화사상의 좌청룡 우백호로부터 연유한 푸른색을 왜 대통령이 사는 지붕에까지 그대로 사용하느냐는 의문까지 그의 문제 제기는 매우 광범위합니다.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새겨 들을 만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센터'라는 말을 '中心'이라고 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를 흉내내서 '센터' 대신 '中心'이라고 쓴 브랜드나 광고 문구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글쓴이는 이를 사대사상이나 모화사상의 잔재가 아닐까 의심합니다. 그렇다면 '中心'은 옳지 않고 '센터'가 옳다는 뜻일까요?
아파트 브랜드 중에 '래미안'이 있습니다. 영어 같지만 알고 보면 '來美安'인데 아름답고 편안하다는 의미를 가진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매우 긍정적인 평가인데, 그렇다면 '자이(xi)'는 안 되고 '來美安'은 괜찮다는 뜻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한자나 영어나 오십보백보인 것 같은데요.
일부러 꼬투리를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읽다가 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글쓴이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말이 흔히들 어렵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주 정확하게 틀리지 않고' 사용하려면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쓰기 위해 노력하느냐, 얼마나 제 나라 말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일상의 말글 생활에서 맞춤법이나 어법이 틀리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쓰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원래 언어는 변하는 것이야'라는 무책임한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을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저는 이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변함에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구분하여 부정적인 것을 가급적 바로잡아 나가자는 것입니다.
무엇이 부정적이고 긍정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많은 논란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이 없다면 우리의 말글 생활은 국적 불명의 말과 이상한 어법과 생소한 단어들로 뒤범벅되어 정확한 의사소통에 지장이 생길 것입니다.
다소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저는 이런 원칙만은 지켜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