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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역사 -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KBS의 〈TV, 책을 말한다〉에서 한·중·일 세 나라 공동역사편찬위원회가 만든 《미래를 여는 역사》를 다뤘습니다. 이 자리에서 집필에 참여한 신주백 교수는 “목차 정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모인 54명이 모두 역사전문가였지만 서로의 나라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목차를 정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니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진통이 만만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출간 과정을 종합해보면, 2001년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학자와 시민단체 인사 54명이 만나 4년여의 연구와 준비를 거쳐 만들었습니다. 2002년 3월에 중국 난징에서 첫 학술회의를 시작해서 10여 차례가 넘는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의견 수렴이 쉽지 않아 신 교수의 말처럼 2003년 2월 도쿄회의, 9월 베이징회의를 거쳐 같은해 11월 서울회의에서야 비로소 전체 목차와 서술 원칙에 합의하고 실제 서술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2005년 5월28일 드디어 역사적인 역사책이 탄생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각각 출간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열흘 만에 7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벌써 4쇄째 인쇄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팔렸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이 책의 발행사인 한겨레신문사에서 전국 모든 학교와 역사 교사에게 책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예스24와 교보문고 등 여러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보니 역사 부문에서 공히 현재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책 내용을 보면, 우리 시각에서는, 그리 새로운 내용이 없습니다. 침략과 억압을 당한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시각' 자체는 우리가 늘 교육받아왔던 관점입니다. 중국 입장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해자라는 단순한 관점을 벗어나면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 꽤 많습니다. 우선 개항 전후의 동아시아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서서히 제국주의적 속성을 강화해 나가며, 결국에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제국주의, 파시즘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전체 4장과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장에서는 2차 대전 후의 동아시아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A급 전범 재판인 됴쿄 재판과 전후 일본의 배상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문제, 한·일 국교 수립 과정의 문제를 짚고 있습니다.
참,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교과서입니다. 이 책의 종장 제목을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라고 정한 것도 삼국의 청소년들이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과거를 덮고' 미래지향적으로 사고하라는 충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개인 보상과 배상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여성 인권 운동, 역사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의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지만 "사실과 마주하지 않고는 미래의 평화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인류가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교훈을 얻어 비참한 과거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주장하는 일본의 정치가는 이러한 인식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중국과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이 책은, 정작 일본에서 많이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지금의 정황을 보건데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역시 힘이야!'라는 식의 또 다른 우승열패의 의식에 매몰되지 않고, 반전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제발 전쟁만은'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