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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계사 ㅣ 사계절 1318 교양문고 5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은 지금처럼 혼자 캔맥주 한 잔 마시면서 독서노트를 쓸 때가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이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밤 늦게 쓰게 될 경우인데요, 어쨌거나 결국 '홀로 술 마시기'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홀로 술 마시기' 행위는 역사상 정말로 특이한 모습이라네요. 과거의 음주행위는 거의 대부분 공동체적 의식적 성격을 띤 데 반해, 홀로 고독하게 술을 마시는 행위는 현대에 와서나 볼 수 있게 된 특이한 현상이라고 합니다.
음주 행위가 사회적으로 유별나게 큰 주목을 받게 된 때는 19세기 말 이후인데, 그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노동 계급과 문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지배 계급처럼 절제된 여가 생활을 할 수 없었는데,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손쉽고 빠르게, 또 싼 가격에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알코올밖에 없었습니다. 20세기에 와서는 지난 세기의 술꾼과는 성격이 다른 알코올 중독자가 생겼습니다. 이들 중에는 중산층도 많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조차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술에 취하여 자기의 내면 세계에 빠져듭니다. 바bar에 홀로 앉아, 또는 포장마차 빈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특이한 역사적 현상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홀로 술을 마시든 공동체적 의식과 집단 가무를 통해 술을 마시든, 역사상 거의 모든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였습니다.
이 얘기는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문화로 읽는 세계사》 제32장 〈알코올〉 편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이 책은 세계사 책입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문화'입니다. 문화라는 코드로 세계사를 바라봅니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길가메시 서사시'로부터 '디즈니'라는 서른 다섯 개의 문화적 주제로 엮었습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책이어서인지 설명이 쉽고, 따라서 읽기도 수월합니다.
'중고등학생용'이라는 딱지가 붙은 책을 읽으면 화가 날 때가 많습니다. 이유야 여러분도 짐작하실테고, 여하튼 좀 쉽게 읽고 감명이 남을 만하면 예외 없이 그 대상이 중고등학생입니다. 제 수준이 그러합니다.^^ 어디 삼십 대 중반 성인용 역사책 없습니까?
허허, 술 마셔서 그러나,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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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존의 세계사 상식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를 들어, 홍수 통제로부터 세계 문명이 시작됐다는 견해는 옳지 않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초기 기록에 치수 관련 내용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중앙 집권화와 관개시설 정비가 시차를 두고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가메시 서시시 편)
피라미드가 강제 노역의 산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일종의 '영세민 취로 사업'인데, 그 근거로 농한기에만 동원됐다는 것과, 노역의 댓가로 식량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이집트 문명 편)
세계사 교과서에 보면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으로 비롯된 헬레니즘 문화를 동양과 서양 문화의 융합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실은 융합이 아니라 그리스 문화의 일방적인 확대였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헬레니즘 편)
그리스도 처음부터 폴리스 공동체가 아니라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정체제였다가 도리아족이 남하하여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에 새로운 폴리스 공동체가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안티고네의 고뇌 편)
미궁에서 적국 공주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죽였다는 테세우스 신화는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본토 세력이 크레타의 예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한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에게 문명 편)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바이킹이 있는데 왜 그들은 콜럼버스처럼 세계사적인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바이킹 편)
종교 개혁의 지도자 마르틴 루터가 실은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종교 개혁 와중에 새 세상 건설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루터는 이들을 '날강도'라고 일컫고 "기사들이여, 이 날강도 같은 농민들을 칼로 찔러 모두 죽여 버려라."고 말합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 편)
이 외에도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보다 깊은 뜻을 알려 줍니다. 18세기에 유럽에 기근이 덮쳤는데 오히려 인구는 증가했다, 왜일까요? 감자와 옥수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밑천이 없을 때 가장 괴로운 과목 중의 하나가 세계사입니다. 학교 다닐 때 정말 괴로웠습니다. 대입과 관련해서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중간 기말 고사 때 시험보기 위해 세계사 책을 펼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런 역사 교육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하기야 선생님 잘못도 아닐 것입니다. 그 엄청난 수의 과목을 잘게 잘게 쪼개어 가르쳐야 하는 수업 시간 중에 이해를 기반으로 한 정상적인 역사 교육을 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지도 모릅니다.
혹시 저와 같이 역사적 지식의 밑천이 달리는 분이 계신다면, 이런 '중고등학생용' 책으로 역사를 보는 재미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삶이 각각 개별적이든 배움에 무슨 정해진 길(定道)이 있겠습니까? 모르면 배워야지요^^
이번 한 주도 배움의 기쁨을 즐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