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응용의 힘
이영만 지음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으며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초기 프로야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들, 그것으로 세상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 그러면서 지금의 생활이 단조롭거나 좀 지겨운 분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강력 추천!
그 책을 보면, 삼미슈퍼스타즈는 '자신만의 야구'를 한다고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야구의 핵심은 바로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라고 주장합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가장 힘든 야구, 그래서 오직 삼미만이 할 수 있었고, 결국 '놈'들은 삼미의 해체를 결심하고, 모기업 삼미를 부도시키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명랑한 필체에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와, 그 때 삼미슈퍼스타즈 감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감독의 이름도 기억이 안 납니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로 다시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감독의 이름은 영영 잊혀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패장이었으니까요. (당시 초대 감독은 박현식 감독. 사실 왕년의 홈런왕으로, 말 그대로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러나 13경기만에 해고된 역대 최단명 감독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최고의 승장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김응용입니다.
《김응용의 힘》을 읽었습니다.
평소에 워낙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 지금 프로야구 팀이 몇 개인지 알지도 못하고, 들어도 까먹는 - 제가 이런 책을 산 것부터가 '김응용의 힘'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자랐습니다. 거긴 삼성라이온즈의 연고지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그야말로 '난리'였습니다. 지역감정까지 격해있던 때라, 대구종합운동장 앞의 해태 선수단 버스가 불타기도 하고...
그 때 저는 중학생이었는데,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동생과 함께 등록을 했습니다. 어디냐구요? '해태'요^^. 아마 어린이 회원이었으니까 가능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모두 하늘색의 삼성라이온즈 잠바를 입고 있는 사이에, 동생과 나만 새까만 해태타이거즈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 모습이 너무 웃깁니다. 사실 우리도 삼성 회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회원이 너무 많이 모집되어서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태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응용의 힘》을 산 것도 그런 사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김영덕의 힘'이나 '정동진의 힘' - 이랬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오늘 리뷰는 좀 이상하네요. 책 얘기는 안 하고 개인적인 잡담만 하고 있으니... 이제 각설하고!
이 책, 재미있습니다. 이 역시 순전히 '김응용의 힘' 때문입니다. 책의 부제가 '이 남자가 이기는 법'인데, 바로 그 내용입니다. 프로야구 20년史에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이라는 기막힌 기록을 가진 이 사나이가 이기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재 경향신문 편집국장이며 과거 10여 년을 체육기자로 활동한 이영만 국장입니다. 그가 발로 뛰며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뭔가 특별한 남자' 김응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응용의 주특기는 침묵, 무언. 그러다가 심사가 뒤틀리면 수많은 관중 앞에서 발길질. 제 아무리 슈퍼스타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스타의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훈련 모습이 못 마땅하면 아무말 없이 괜한 기물을 파손한 뒤 사라져버립니다. 다음날 훈련장은 열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감독이 와도 눈길 한 번 마주치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이 돕니다. '말없음 + 느닷없는 폭력'에 길들여집니다. 보지 않아도 마치 보는 듯한. 원형 감옥 파놉티콘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다가 선수들이 항명하면 스스로 먼저 짐을 싸서 나가버립니다. 구단이 발칵 뒤집힙니다. 결론은? 다시 원점. 그의 머리에는 '감독은 나다'라는 강한 자신감과 원칙이 있습니다.
'토사구팽'은 비인간적인 사람들에게 욕이나 마찬가지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김응용은 '토사구팽'합니다. 쓰임이 있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립니다. 용케 스스로 나가게 만들든지, 아니면 억지로라도 버립니다. 잘 하는 선수와 필요한 선수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필요한 선수를 위해 잘 하는 선수와 바꾸기도 합니다. 버림받는 사람은 이를 갈겠지만 김응용에게 예외는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쓸만할 때 버리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단으로서도 돈이 되고, 맞바꿔 데려오는 사람 또한 제대로 고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버림받은 사람이라도 재기에 성공합니다. 역설적으로, 아직 쓸모가 있을 때 버려주기 때문입니다. '쓸 만한데 왜 버리느냐?'는 질문에 '쓸 만하기 때문에 버린다'가 대답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만의 방식에 매료됩니다. 한 마디로 호쾌합니다. 그러나 김용용式의 리더십을 따라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건 오직 김응용 방식일 뿐, 저같은 놈은 흉내내려고 해도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힘'도 없거니와 성격이 도저히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야구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덕장德將을 포기하고 오직 승장勝將으로만 기억되길 바란 것인지도 모릅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덕德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야구를 할 땐 야구 생각하는 재미로 산다. 야구를 하지 않을 때는 야구를 더 잘할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신기하다. 야구는 몇 년 전 경기까지 복기가 되는데 자동차는 아침마다 어디 세웠는지 헤매곤 한다. 그게 내 인생이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