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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느린 걸음
바스카르 차크라보티 지음, 이상원 옮김 / 푸른숲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 봄이죠?
주말에 도봉산에 잠깐 다녀왔는데 봄 산행을 나온 사람들로 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봄이 그리웠나 봅니다.
달력을 보니 오늘 하루 일하면 또 내일이 휴일이네요. 힘을 다해 열심히 일해도 지치지 않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혁신의 느린 걸음》을 읽었습니다. 벌써 한참 전에 읽기 시작했었는데, 이제서야 다 읽었습니다. 중간부터 읽자니 기억이 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혁신이 '느린'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실제 '시장에 들어가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1928년 GE가 처음 TV를 개발했지만 1960년대가 되어서야 각광받기 시작했고, VCR도 1956년 미국의 앰펙스라는 회사에서 처음 개발했지만 1980년대가 되어서야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라클과 IBM,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야심찬 프로젝트 - NC(Network Computer)가 실패하고 반면 팜 파일럿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에는 통상적으로 혁신이 중요하다는 따위의 원론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로지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혁신의 성공 법칙을 밝히는 데에 '게임이론'이라는 틀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게임이론의 핵심은 '상호연결성'입니다. 이 개념은 '한 개인의 전략적 선택은 다른 사람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속성에 근거합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참가자들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현실이 매우 긴밀한 상호 연결 상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 유지 상태' 즉 '균형 상태(equilibrium)'을 깨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균형 상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업이나 소비자 등 시장의 핵심 참여자들이 각기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동시에 남들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 기대할 때 나타나는 역동적인 정지 상황'
처음 볼 때 다소 어려운 듯해도 다시 읽으면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전략적 선택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좌우된다는 것이 균형 상태 개념의 핵심입니다. 참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한 개인의 선택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어 현상을 유지하려는 상태, 즉 '균형 상태'가 더욱 공공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도 살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쉽게 동의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런 걸 누가 사겠어?" 하고 있다가 주위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기 시작하면 드디어 나도 사게 됩니다. 이 상태가 바로 균형 상태가 깨지는 단계입니다. 이렇듯 팽팽한 균형상태가 깨지기 위해서는 '최소 수준 이상의 다수(critical mass)'에게 혁신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정말 모두에게 이로운 합리적인 신기술이 많이 있지만 이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의료계의 현실을 보면 '균형 상태'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의료계를 선진화할 해결책이 많이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기존의 방식·관행이 바뀌지 못하는 이유를 어떤 분석가는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산업이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자는, 의료계는 '철저히 이성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의료계의 각 참여자들은 나머지 사람들이 어떤 식의 이기적인 행동을 보일 것인지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에만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너무나 이성적인 행동이 의료계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최소 수준 이상의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혁신이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혁신가들은 시장 구성원들의 비이성적인 행동 - 실은 매우 이성적인데 말입니다 - 을 원망하며 '혁신의 느린 걸음'에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혁신을 시장에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설명합니다.
(1) 목표로 하는 최종 판세를 명확히 정의합니다. 즉 혁신이 시장에 도입되었을 때의 최종 모습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예측해야 합니다.
수 많은 변수(시장 참여자)들의 선택 상황을 고려하여 '실현 가능성'과 결과에 대한 만족도에 근거하여 최종 판세를 예측하는 것! - 처음부터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2) 최종 판세로부터 출발하여, '역으로' 현재의 균형상태를 깨기 위한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합니다. 즉 최소 수준 이상의 다수에게 퍼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한한 자원을 가질 수는 없으므로 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3) 네트워크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으므로, 혁신가는 영향을 확산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해줄 누군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런 중개자의 도움 없이 혁신을 성공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4) 이렇게 수립된 전략을 실행하되, 동시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합니다. 늘 선택의 결과는 불확실합니다.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은 언제나 도박에 가깝습니다. 이 때를 대비하여 혁신가는 다른 대안을 마련해둬야 합니다. 대안을 두지 않는 것 역시 대안입니다.
이 책은 위 네 가지 단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핵심은 '균형 상태'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새로운 혁신에 관심을 가지지만 결국은 '남들이 그 혁신을 수용할 때에만' 자신도 수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늘 잊어버리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통적으로 전략을 논할 때에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를 주로 강조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혁신을 성공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제는 '균형 상태를 생각하기(Think Equilibrium)'가 더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