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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즐거움
김종성 엮음 / 장락 / 2001년 4월
평점 :
일을 하는 것과 아이를 보는 것 중 어느 것이 쉬울 것 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둘 사이에 난이難易를 가리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아마도 나이에 따라 호부好否를 느끼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것은 아빠가 책을 읽어주고, 함께 색종이를 접고, 함께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가며 뭔가를 만들고, 함께 도화지에 색칠하고, 함께 동요를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반면 어른인 제가 좋아하는 것은 주말에 낮잠을 잔다든가 조용히 책을 읽거나 PC 앞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 등입니다. 이왕 아이와 함께 보내는 김에 주말마다 야외에 나가볼까 생각도 하지만 날씨도 추운데다가 워낙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탓에 이제 갓 다섯살 된 아이를 데리고 나갈만한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얼른 커서 주말에 함께 앉아 책을 읽으며 소일消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요원한 일이니, 그 전에 아이와 보대끼면서도 '함께' 즐기는 방법을 개발해야겠습니다.
몇 주 전부터 빵 만들기를 시도하여 머핀과 쿠키를 만들었는데 어제는 피자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참 맛있게 먹었는데 문제는 아이의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꾸준히 노력해서 아이가 인정하는 최고의 제빵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서로 책을 읽는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면서' 나의 독서를 하는 방법도 터득해야겠습니다. 그러자면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어려운 책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놀면서 볼 수 있는 '주말용' 책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평일에는 일 때문에,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봐야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두툼하고 집중하여 읽을만한 책들을 잘 못 보게 되네요^^)
제 목 : 물고기의 즐거움
지은이 : 김종성
펴낸곳 : 장락 (초판 출간일 2001.4.15 |초판 1쇄를 읽음) ₩7,000
어제 주말용 제1탄을 골라 읽었습니다. 내용이 쉽고 짧게짧게 끊어 읽어도 전혀 지장이 없어 아이와 놀면서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제목은 《물고기의 즐거움》입니다. 예전에 온라인서점에서 특가 판매를 하여 매우 싸게 사두었는데, 다른 책들에 우선 순위를 빼앗겨 책장에 쳐박혀 있다가 이제서야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예기>,<춘추좌씨전>,<안자춘추>,<여씨춘추>,<세설신어>,<묵자>,<한비자>,<노자>,<장자>,<논어>,<맹자>,<열자>,<순자>,<전국책>,<사기>,<회남자> 등에서 뽑은 중국의 옛 이야기 101편이 실려 있습니다.
책 표지에 보면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라고 씌어 있는데, 말은 참 그럴 듯 하나 정말 쉽지 않은 말입니다. 경험상 이런 '이야기' 몇 편에 '지혜'를 얻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고전의 이야기에서 억지로 '교훈'을 끌어내는 어쭙잖은 책들보다야 본래의 이야기만 실어놓은 것이 훨씬 낫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옛날 이야기로부터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것은 정말 힘이 듭니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볼 때는 재미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오래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동안 이 책이 책장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은 지금도 이 생각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제 마음에 미묘한 심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읽어보았던 이야기들이 많았으나, 다시 읽으며 무언가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 <늙은 말의 지혜>, 사기에 나오는 <미녀의 목을 베 군령을 세우다>, 역시 사기에 나오는 <먼저 한 번 지고 나중에 두 번을 이기다> 등. 단순히 재미로 읽고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 말로 풀이해 놓은 것은 좋으나 관련된 고사성어를 제목이나 본문 끝에라도 달아 두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는 귀매최이鬼魅最易 , <늙은 말의 지혜>는 노마지지老馬之智. 그리고 아래에 예로 든 <술집의 사나운 개>는 구맹주산狗猛酒酸입니다.
책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 한 편 옮겨보겠습니다.
송나라에 술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술맛이 좋을 뿐 아니라, 양도 아주 정확했다.
뿐만 아니라 손님에게 접대도 살뜰히 하였다.
그러나 주점의 깃발을 높이 내다 걸어도 술이 팔리지 않았다.
빚어낸 술이 한독한독 창고에 쌓이게 되었다.
오랜 시일이 지나자, 술맛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주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평소 가까운 양천이라는 노인을 찾아갔다.
"우리 가게는 술맛도 좋고 값도 싸며 손님 접대도 살뜰하게 하는데 왜 술이 잘 팔리지 않지요?"
주인이 물었다.
"당신 집에서 기르는 개가 무척 사납지요?"
양천이 되물었다.
"우리집 개가 사납긴 합니다만…… 왜 술이 팔리지 않습니까?"
주인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돈을 주어 주전자를 들고 당신네 가게에 술을 사러 보내지요. 그런데 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와서 그 아이를 문단 말입니다. 그러니 술이 팔릴 리가 없지요."
양천이 말했다.<한비자>
사업을 하는 처지에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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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 중에서 유독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의 출전을 보니 <한비자>가 많았습니다. 내친 김에 인터넷 서점에서 <한비자>를 주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