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격월간 《안동》2005년 1·2월호(통권96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사실 내용과 다른 몇 문장만 바로 잡아 원문 그대로 게재하였습니다.


글/ 김 영 희 (과천 사는 안동사람 · 주부)
사진/ 박 영 대 (서울 사는 안동사람 · 동아일보 기자)
그를 만나고 돌아온 날은 왠지 모르게 우울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괜히 짜증이 나서 목소리도 높아졌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감정이 왜 생겨났을까 하고. 오래지 않아 해답을 찾았다. 바로 손병목(35세)씨 때문이었다. 그의 철저한 계획과 실천적인 삶에 내가 열등감을 느낀 것이다. 나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목표를 정하지도 않는다. 발 등에 불이 떨어져야 일을 한다. 그가 나의 실체를 안다면 같이 마주앉아 있는 것도 싫어할지 모른다.
나의 열정이 내 주위를 전염토록 하여…
그는 프랭클린 다이어리라는 것을 변형해서 쓴다. 잠깐 살펴보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첩이나 계획표는 댈게 아니다. TV 광고에 보면 학습지가 아니라 종합학습서비스라고 하더니 그런 수준이다. 기본적인 설계위에 자신에게 맞게 직접 추가하고 변경하여 오직 나만의 인생설계가 담긴 다이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의 수첩 한 페이지에 있는 구절을 보겠는가.
「손병목의 미션 선언서」
‘나 손병목은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스스로 쉼 없이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며, 나의 열정이 주위를 전염토록하여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공하는 인생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기가 죽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타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 미션을 실천하기 위한 세부 항목이 나열되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다. ‘나의 열정이 내 주위를 전염토록 하여…’ 그는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잘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수능 1교시를 책임지는 인터넷배움터 일교시닷컴(www.1gyosi.com)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윌엔비의 이사이다. 회사를 차린 지는 1년 반 정도 되었고 인터넷교육을 시작한 지는 8개월 정도 된 신생회사이다. 중고등학교 국어, 언어, 논술, 독서 학습이 전문이다. 그 어느 곳 보다 경쟁이 치열한 곳이 인터넷 학습시장이므로 언어영역으로 특화하여 전력투구하고 있다. 시작은 성공적이다. 성공을 계속 이어나가고 교육의 질을 최상의 수준으로 유지해서 업계의 최고가 되는 것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나이는 아직 젊지만 컴퓨터 교육부분에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학원 부원장 때에는 그때 막 신설된〈워드프로세서 1급> 교재를 직접 출간하여 수험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컴퓨터교재 출판회사에 취직해서는 수십권의 수험서를 기획·집필하여 서울 양재동에 사옥을 가진 중견 회사로 커나가는 데 일조를 했다. 전국 수능모의고사를 치르는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자회사의 사장을 역임하고, 중앙교육진흥연구소를 거쳐 입시정보 사이트인 에듀토피아에서는 웹기획과 사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컴퓨터로 업을 삼고 있지만 그는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보람 있는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려고 보니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단다. 중국어 능력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군대 가기 전에 정보처리 자격을 취득하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4학년이 되어 군대를 갈 때 전산특기병으로 입대했다. 너무 단조로운 군대생활이 재미없어 일을 만든 것이 수작업으로 하던 부대의 탄약관리시스템을 전산화한 것이다. 급하게 딴 정보처리 자격증이 컴퓨터 실력의 전부인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무모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관련된 모든 책을 구해 독학을 해서 결국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을 했다.
제대 후에는 컴퓨터를 가르치는 일에 매력을 느껴서 학원에서 컴퓨터를 가르쳤는데 그때 사용하던 컴퓨터 교재들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수정해서 출판사로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직접 와서 교재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해서 컴퓨터교육 교재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온 몸의 에너지를 다 소진시킬 만큼 가장 열심히 정열적으로 일하던 때이고 기쁨도 컸다.
아내를 만난 것도 이때이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그의 인생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내이고 이제 다섯 살이 되는 딸 동주이다.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태어나기 전에 미리 지어놓았다. 딸이건 아들이건 동주로 지을 생각이었단다.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고 인생의 활력
가족과 이웃에 대한 그의 애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가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사이트는 손병목의 지식공유이다. (www.itmembers.net) 가족사진이 첫 화면에 올려져 있고, 딸 동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손병목의 독서노트, 세상사는 이야기, 자기 경영노트, 아침을 여는 페이지 등의 코너를 통해 그의 이웃들과 대화하고 사람들에게 지식과 열정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곳은 그의 바람대로 온전히 그 자신과 그의 이웃들을 위해 열려있는 공간이다. 컴퓨터에 관한 그의 모든 지식이 강의되어 있고, 특히 그의 독서노트는 매번 900명에게 메일로 발송되고 있다. 사이트로 직접 찾아와서 읽어보는 횟수도 목록마다 2-3천명이나 된다. 단순히 책의 한 구절을 읽어주기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책을 권하고 지식을 공유하기를 원하는 그의 뜻이 드러나 있다. 각 분야의 책이 총 망라되어 있고, 일주일에 서너 권의 서평이 올라온다. 회사 일도 바쁘지만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고 인생의 활력이기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 시간을 쪼개어 쓰면서도 충만하게 채워가는 인생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가슴 속 든든히 자리 잡고 있는 고향 안동
그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어려운 경쟁을 피하지 않고 정열적으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은 그의 가슴 속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는 고향 안동의 추억이다.
그의 고향은 안동 예안 계곡동 압싯골의 산 아래 첫째 집이라 한다. 하루에 차도 두서너 번 밖에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 집도 몇 채 밖에 안 되는 작은 산골마을, 그 동네의 산 아래 첫째집이라고.
부모님들이 살던 동네이기도 하다. 같은 마을에서 지내던 두 분이 결혼해서 대구로 이사를 가면서 태어나자마자 대구로 나가 자랐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방학 때만 되면 그의 산 아래 첫째 집으로 돌아왔다. 두 살 위인 이모와 그보다 나이어린 이모, 그의 동생과 이모 친구들은 좋은 동무가 되었다.
여름에는 산과 강으로 뛰어다니며 개구리, 메뚜기도 잡고, 옥수수, 감자도 먹으며 산골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고 겨울에는 토끼나 꿩 같은 작은 짐승들을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군고구마 군밤을 구워먹고 군불 땐 방에서 구들장을 짊어지기도 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추억과 기쁨을 준 곳이 그의 산 아래 첫째집이다.
그의 유년의 기억은 오직 안동 예안의 압싯골에서 보낸 그 산골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나 그립고 여유와 기쁨을 갖게 하는 기억이라고.
그의 바람대로 꼭 그 산 아래 첫째 집으로 돌아가게 되길 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열정이 내 주위를 전염토록 하여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이들이 성공하는 인생을 만든’ 후에 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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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격월간 《안동》2005년1·2호(통권96호) www.andongji.com
안동인이 필요로 하는 읽을 거리의 제공자로, 향토문화와 지역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제언지로, 건전한 문화활동과 수준높은 창작을 위한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안동발전의 디딤돌이 되고자 하며 이같은 발간 이념의 실현을 위해 일체의 정치적, 종교적 목적의 이용과, 어떤 특정 단체나 개인의 편에 서기를 거부하며, 항상 객관적인 시각과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하여, 안동인의 보편적 품위를 지킴으로써 남녀노소 및 신분의 차별없이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에서 제작하는 격월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