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일이 많으면 우리 딸은 외할머니 댁에 가서 몇 일을 보냅니다. 아직 어린이 집에 보내기 이르다고 판단하여 내년 봄이 올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가사 일과 돈 버는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입니다. 얼마 전 꽤 괜찮은 회사에서 입사를 권하였지만 육아 문제로 주저하다가 결국 포기하였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렇듯 아내는 저만큼이나 늘 바쁩니다. 아무리 바빠도 몇 달 후에는 집으로 완전히 데려올 것입니다. 비록 친정이기는 하나 자식을 떼어놓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아내는 말합니다. 저 또한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어찌할 수 없어 딸을 외가에 맡기고 오면,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 제법 말귀도 알아 듣고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는지라, 자기 혼자 외가에 떨어져 있는 것을 눈치 채는 순간 집이 떠나갈 듯 웁니다. 마음이 약해 쉽게 뿌리치고 나오기도 힘이 듭니다. 그런 모든 걸 아는 외할머니가 어서 가라고 손짓합니다. 울먹이는 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서둘러 뛰쳐나오면서, 내가 정말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일 후에 딸은 다시 집으로 돌아 옵니다. 딸을 데리러 가면, 그동안 보살펴 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 아빠에게 달려옵니다. 그런 딸이 귀엽기도 하지만, 장인 장모께는 참으로 민망합니다. 큰 죄를 지은 듯한 심정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내가 아무런 걱정 없이 집에서 딸과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物)"입니다. 더 줄만한 "심(心)"도 없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내 벌이 정도면 그냥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의 고민은 나보다 훨씬 멀리 앞서 갑니다. 우리 딸이 정상적으로 교육받고 커나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뒷바라지 하는 것과 늙은 날 우리 부부의 노후까지 생각합니다. 나더러 학교도 더 다니라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있고, 가족만 생각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워 안쓰러운 딸이 있고, 너무 가족만 생각하여 현실의 여유를 가끔 놓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혼 6년차 대한민국 남편 그리고 아빠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