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다닐 때 저의 하숙방에 적지 않은 책을 쌓아두고 읽었습니다. 변증법과 유물론과 같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철학서들과 근현대 역사서, 정치경제학, 역사책 같은 것들이었고, 간간이 시와 소설책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이해하고 봤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돈이 생기면 곧장 책부터 사곤 했습니다. 이 즈음 어느 선배가 우리집에 와서는 "병목이 집에서 변증법이 울고 가네"라고 했습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변증법의 핵심을 '실천'으로 생각한 선배의 따끔한 충고였습니다.

회사 일이 늦게 끝나 늦게 시작한 술자리에서 회사 동료들과 얘기하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변증법'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 말이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이 말로 인해 왜 그리 물고무는 논쟁이 한참동안 계속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변증법'에 대해 얘길 하다가 결국은 '철학'과 '세계관', '가치관'과 '인식론'에 대한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언어'에 대하여, '개념'에 대하여, '사상'에 대하여 얘길하다가,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렀습니다. 아차! 이 즈음해서야 뭔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주제들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또 새벽 3시입니다. 과음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으니 술은 얼마 먹지 않았습니다만, 내일 정상적으로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선 좀 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집에 오자마자 철학사전을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 '변증법'이 뭔지 찾아 보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으면서 줄을 그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자그마치 세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있으나 결국 핵심은 "변증법이란 연관과 발전에 관한 일반 이론이며, 모순과 대립을 근본원리로 하여 사물 운동을 설명하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철학 사전에 줄을 그어가며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화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변증법의 본질이라고 외웠던 때가 생각납니다. 이러한 이론이 비록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반영된 면이 있지만, 저에게는 세상을 이해하고 사고 체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로부터 결국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진리"라는 명제가 나왔고, 이는 제 삶을 이끄는 좌우명으로 삼을만큼 제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본질과 현상, 내용과 형식, 현실과 가능성, 필연과 우연, 원인과 결과, 일반자와 특수자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곧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론과 실천, 인식과 실천, 인식과 객관적 실재,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의 차이를 알면서 인식론의 명쾌함에 반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변증법'이라는 말이 하나의 관념이고 개념 또는 단어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사고하는 과정'에서 얻은 성과는 지금까지 두고두고 제 인생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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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문득 나온 한 단어가, 십 수년 전의 그 단어에 얽힌 옛일이 생각나게합니다.
단어 하나조차 그 뜻을 명쾌하게 하고 싶었던 그 때의 열정과 치열함이 부러워, 이렇듯 새벽잠을 뿌리치며 두서 없는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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