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에 탄핵 반대 시민 촛불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월드컵 때 그 열광의 순간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대통령 탄핵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반대하는 국민을 싸잡아 매도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집안에 앉아 있을 순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놓은 이 작은 민주주의의 싹을 잘라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이제는 나의 머릿수 하나 보태는 것만으로도 거꾸로가는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행사는 6시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시청역 3번 출구로 나와 광화문 쪽으로 나갔습니다.
출구 앞에서는 행사에 사용될 초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먼저 만난 후배와 함께 초를 받아 행사장인 동아일보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오후 5시 30분 쯤, 동아일보 앞부터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차량 통제는 그보다 조금 전에 시작되었나 봅니다.
아직은 한산합니다.
앗, 왜 이렇게 사람들이 적지...
기우였습니다.
불과 30여분 사이에 도로는 사람들로 꽉 차기 시작했습니다.
손에는 탄핵반대, 민주수호라고 적힌 종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으련만, 그쪽 길은 차들이 다니도록 하고 동아일보 앞에서부터 행사를 허용했나 봅니다.
이렇게 평화롭게 도로를 점거하는 것이, 아직은 제겐 낯설었습니다.
후배도 역시 그러하답니다.
불과 10여년 사이, 세상은 참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이토록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예전같았으면 화염병을 들어야 할 손으로 작은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의 모습이 참 밝습니다.
나중에 이 아이들과 김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밤에는 지쳐서 누워있었지만, 이 아이들과 부모는 우리보다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내 딸이 이 아이들만큼만 컸어도 꼭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이 역사의 순간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7시가 되자 하늘은 어두워졌고 땅은 수많은 촛불들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군중 속에 파묻혀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플라자 호텔 정문 바로 앞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본 제 뒤쪽 전경입니다.
대학 시절에, 집회와 시위를 '문화'라고 하는 것을 매우 심하게 비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집회와 시위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 보수 언론의 충고를, 우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어찌 '문화'라는 말로 희석화하느냐 하고 반박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 분명 시위이고 집회이지만, 격렬한 투쟁보다 더 힘있는 시위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기억해야할 것은, 이런 자유 역시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자칫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마~설마~ 하다보면, 언제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5,6공 잔당들의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색깔과 지역주의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그들에게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비록 작은 촛불 하나 들고 있지만,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어 이 나라를 밝히는 순간, 거꾸로 돌아가는 바퀴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20만의 촛불이 서울 한복판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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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선후배들을 만났습니다.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든지, 오랜만에 모여 술 한잔 했습니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면서^^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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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관련 기사를 보면 행사 소식이 보다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행사 시작 전부터 끝까지 총 16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보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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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회사로 배달된 중앙일보를 보니 촛불 집회 관련 기사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보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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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더 가관이네요. 토요일 밤 20만의 촛불 집회와 그 다음날 수구세력 2000명이 모인 집회를 아주 '평등'하게 배분하여 보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느만큼 모였는지 구분할 수 없도록 사진을 찍고 배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