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주년 빅 이벤트를 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직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애를 데리고 어디 마땅히 갈만한 곳이 있어야지요.

회사에서 30분 일찍 퇴근했습니다. 사실 30분 일찍 오나 늦게 오나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래도 특별한 날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한 거죠.
오자마자 동주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동네의 횟집에 갔습니다. 아니 일식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근사하겠네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동주를 데리고 갈만한 곳은 우리 집으로부터 10분 이내의 거리여야 했습니다(아직은 약을 먹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리고 가족이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어야 했구요. 불과 몇 일 전만 해도 감히 우리 동주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지도 못할 상황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천만다행이죠.

우리 세 식구 첫 나들이인 셈입니다. 병원에 가기 위해 동주를 데려나온 것 외에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상황이 제겐 큰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아내도 저와 비슷한 느낌이었나 봅니다. 결혼 3주년 기념으로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그 흔한 꽃 한송이 안 샀습니다. 그런데도 둘은 그냥 행복했습니다.
“당신 행복하지?” “응, 행복해.” 이런 식입니다.

결혼 3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회사가 3번이나 바뀌었고 고속도로 교통 사고로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아내 역시 갑작스런 일로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동주도 어렵게 어렵게 태어났구요.
10평도 안되던 집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어찌됐건 그 때에 비하면 꽤나 넓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엔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지나고 나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마음에 안 들 땐 성격 차이 때문에 정말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둘 다 마찬가지였겠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성격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설익은 풋부부의 어설픈 순간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차이’를 끌어 안기 시작했습니다. 남남과 부부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지나치게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살면서 정들다 보면 그냥 다~ 이해가 됩디다. 물론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약속과 신뢰와 책임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노력이 없이는 안되죠.
겨우 3년 살아놓고서 30년 산 사람처럼 말하죠? 아무렴 어떻습니까,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걸 어쩌겠습니까?

결혼 3주년 공식 행사는 횟집에 가서 광어 한 접시 먹고 온 것으로 끝입니다.
대신 집으로 돌아온 뒤 초보 부모를 위해 우리 딸이 빅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뒤집기를 하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게 - 아주 자연스럽게 뒤집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목도 못 가누는데 말입니다.

동주 아빠 손병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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