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2시 - 낯설음
충주에서 일을 끝내고 인천으로 향했다. 어제 장인 어른이 다시 입원을 하셨다는 얘길 듣고 바로 찾아 뵙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에 걸려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나 오랜만에 타보는 시외버스는 좁은 지방도와 국도를 통해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출발지와 목적지가 하나만 있는 고속버스와는 달리 중간 중간에 승객이 오르내렸다. 시외버스가 그러한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낯설게 느껴졌다. '느림'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과거의 익숙함이 낯설어지는 순간이었다.
차가 경기도 이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쉬다 갈 때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냥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였다. 왜 하필 그 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전화를 했을까? 일상의 속도가 한 박자 느려지면 왜 그 선배가 떠오를까? 앞으로만 보고 달리다가 잠시 서서 뒤돌아볼 때 유독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익숙함과 현재의 낯설음의 경계에서 떠오르는 사람들.
- 오후 4시 - 현실
인천 성모 병원에서 장인 어른을 뵈었다. 요 몇 년 사이에 병원 신세 지는 일이 많아지셨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전혀 그럴 기색이 없으셨던 분이었는데...
병원에 가면 늘 느낀다. 사람이란 것이 약하면서도 강하다는 것을. 병든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답답하면서도 유독 사람만이 병든 이들 옆에서 그들의 병이 낫도록 보살펴 주는 따뜻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병든 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얼굴은 어둡다. 현실이 답답하고 미래가 암울한 듯하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지만 그러한 도움이 그들의 병을 완치하게하여 과거로 돌아가게 할 수 없음을 아는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아이를 보살피는 것은 이와는 정반대다. 부모의 보살핌 하나하나가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 기쁘고 보람되고, 그리하여 아이가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것만 보면 마치 사람은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것 같다.
현실은 미래보다 비현실적이다.
- 오후 8시 - 우리 부부가 사는 법
부평에서 전철을 탈 때만 해도 그나마 맞을만 하던 것이 청량리에 내리고 보니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이쯤이면 근처 어디에서 우산 하나 사고 만다. 그러나 사지 않고 집까지 걸어 왔다. 한 15분 정도 걸었으니 머리고 몸이고 이미 완전히 젖을 대로 젖었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집에 몇 개나 있는 우산을 또 사고 싶지 않았다. 그저 허튼 데 돈 쓰는 것이 아까웠을 뿐이다. 이 정도 비 맞는다고 감기에 걸릴 것도 아니고... 아내로부터 한소리 듣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만약 아내가 그렇게 비를 맞고 왔다면 나는 더 심한 소리를 했을 것이다.
아내는 그때까지 저녁을 먹지 않았다. 오늘따라 입맛이 없어서 그냥 피자라도 시켜먹고 싶었단다. 그런데 굳이 내게 피자 주문해도 되냐고 묻는다. 어차피 먹을 거 나한테 왜 허락을 받는 것일까. 요즘 살찐다고 구박해서 그런 것일까? 절대로 그건 아니다. 일찌감치 먹어버리고 입닦으면 나는 모른다.
이것이 우리 부부가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