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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아웃 OUT!
사이토 시게타 지음, 신현호 옮김 / 길벗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책 앞 부분에 슬럼프 자가진단 체크리스트가 있어 체크를 했는데, 전혀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현재 슬럼프를 겪지 않고 있으며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하라는 결과였습니다. 슬럼프도 아니면서 슬럼프 탈출에 관한 책을 왜 읽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슬럼프가 다가 왔을 때는 이미 이런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슬럼프는 대개 의욕 상실 상태이므로 이런 책을 애써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하듯이 슬럼프도 슬럼프를 겪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하지 않으까요?
일주일 내내 거의 TV를 보지 않는 편인데 우연히 '홍소장의 가을'이라는 3부작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책도 보다가 TV도 보다가 그야말로 산만함의 극치를 경험하며 뒹굴다가 점점 TV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홍소장(홍상수) 역에 최불암, 그의 아내는 김혜자, 홍소장 동생에 임채무, 그의 아내는 박정수가 맡았습니다. 김수현 극본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파출소 소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한 홍상수 부부는 평생을 자신보다는 가족과 자식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온 전형적인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 출가하여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철없는 행동을 할 때 부모의 마음은 그제서야 아픕니다. 자식을 보내고 둘만 남은 이 부부는, 그래도 행복한 편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만족할 줄 알며 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대기업의 잘 나가던 임원인 홍소장의 동생은 얼마 전 회사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버림을 받았다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고속도로 한 중간에 버려진 고장난 차와 같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인생의 슬럼프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결국 그는 3부에서 스스로 한강에 몸을 던져 죽습니다. 하필이면 홍소장네 부부가 처음으로 큰 맘 먹고 여행을 떠난 바로 그 때 말입니다. 홍소장은 돌아와 동생의 시신을 보며 절규합니다. "니가 죽는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한다더냐. 세상이 그런 걸... 그런 세상인 걸..." 그렇게 절규하는 사이 저도 참았던 눈물이 쏟아집니다.
노자는, "누군가를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지만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홍소장이 "세상이 그런 걸... 그런 세상인 걸..."하며 말했던 바로 이 세상이 말입니다.
과거에 비해 의학적으로는 훨씬 오래 살 수 있음에도, 대개 제 명까지 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제 안 되는 스트레스와 무절제한 식습관 등...
"자기 인생에서 지금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고단하고 힘든 인생의 가시밭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내딛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생각이 슬럼프를 이길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다."(p.80) 그러나 홍소장의 동생에게는 이런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의 몸은 살아 있되 이미 정신은 슬럼프를 넘어 죽음의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살면서 슬럼프를 겪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방치하고 내버려둔 슬럼프가 인생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내 마음이 바닥을 칠 때 어떻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가, 이 책은 슬럼프를 극복하는 35가지의 실천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슬럼프에 빠지는 사람은 대개 '불평 불만을 많이 하는 사람' '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 '사소한 일에도 늘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슬럼프가 찾아 왔을 때 극복하는 방법 또는 미리 슬럼프에 대비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핵심은 바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신감'과 자신을 알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라고 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앞서 달리는 다른 선수를 보고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리면 그 선수는 20 킬로미터를 지난 지점에서 급격하게 속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 상대방이야 어떻든 최종 지점에 뛰어드는 순간까지 자기 페이스를 지켜야 한다."(p.77)
이 책의 추천의 글을 쓴 윤영돈 커리어코치는 슬럼프의 근본 원인은 '조급증'에 있다고 말합니다. 슬럼프 기미만 조금 보여도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조급증이 원인이라면 '한 가닥의 여유'에서 슬럼프를 헤치고 나갈 통로가 생기는 법입니다.
이번 한 주,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라도 마음 속에 한 가닥의 여유를 잃지 않는, 그래서 절대로! 절대로!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날들을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