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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ㅣ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또 한 번 권하시길래 바로 샀습니다. (거의 모든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다 보니, 이제 책을 샀다는 표현보다는, 책을 받아봤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지난 주에 '받아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제목을 주술처럼 외기만 해도 이미 삶이 보다 풍요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미 책 제목에서 핵심을 모두 말했으니, 책의 나머지 내용들은 전부 제목을 부연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습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은 느낌 -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밑줄을 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덮고 나면 'So What?'이라는 의문이 듭니다. '몰입'이 인생을 보다 질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몰입을 할 수 있을까...
물론 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목표를 가지라''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몰입'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을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검증'했으니, 독자들은 그것을 알아서 실천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에 관한 여타 책들과 달리 '○○○○을 하는 ○가지 방법' 따위는 이 책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 일상의 구조와 경험의 내용은 허위투성이입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설문에서 '행복하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허세이거나 삶의 내면적 모순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결과이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너무나 주관적인 감정만 가지고는 삶의 질을 따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훌륭한 삶은 어떤 것인가? 미하이칙센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짬을 내어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행복을 맛볼 수는 있다.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의 편안함과 따사로운 햇살은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모두 소중한 감정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형편이 안좋아지면 눈녹듯 사라지기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p.48)
그렇다면 '몰입'이란 무엇인가?
그는 몰입이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몰입은 '무질서로 돌아가려는 악한 힘, 곧 잡념이 몰입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 에 그 경지에 이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에 저자는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초월적인 자기 목표 설정을 통해 몰입에 이를 수 있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주 아~주 원칙론적인 방법입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습니다.
니체는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잠시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p.182)
이것이 바로 니체 철학의 중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운명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사랑할 줄 알게 될 때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독자인 저는 짜증이 납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래서 어떻게?"
그래도 저자는 저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무덤덤하게 글을 이어갑니다. 저자는 강경한 어조로 이렇게 살아라 라고 강요하고 있지 않지만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통찰로 참다운 삶의 가치와 몰입의 즐거움을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지만 이때 걸림돌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나 나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따라서 율리시스처럼 우리도 자아가 불러일으키는 헛된 욕망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고 자아가 벗이 될 수 있으며 도움이 될 수 있고 충만한 삶의 단단한 반석이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p.178)
살아가는 '기술'을 가르치기에 급급한 오늘날의 처세서와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오히려 이런 원칙적인 말들때문입니다. 스스로 몰입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