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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든 환경의 역습
박정훈 지음 / 김영사 / 2004년 9월
평점 :
작년에 《잘먹고 잘사는 법》을 읽으면서 수도 없이 밑줄 그어가며 '그래~그래~'하며 공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에게 감사하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그 프로그램의 연출가인 박정훈 PD입니다.
이 책은 올해 초 3부작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이미 TV를 통해 인기가 검증된 내용이라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매우 관심을 가지는 주제일 것입니다. <잘먹고 잘사는 법>도 TV에서 보지 못하고 책으로 사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환경의 역습> 예고편을 보면서 꼭 봐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3편 중 단 한 편도 보질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은하철도 999> 이래 TV 앞에서 시간 맞춰 프로그램을 보려고 대기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얘기가 딴 데로 샜습니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우리나라의 웰빙 열풍이 미국의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건강과 지속성장성을 추구하는 생활방식)로 옮겨가기는 다소 힘들 것이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웰빙은 개인적인, 그래서 어쩌면 다소 이기적인 '잘먹고 잘살기'인 반면 LOHAS는 개인의 건강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웰빙'인 셈입니다.
이 책에서 LOHAS라는 말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지만,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LOHAS에 다름 아닙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 책의 주장에 공감하는 독자들께서 분별없이 마구 화학물질을 배출하고 소비하는 도시 생활의 반호나경적 실태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는 전도사의 역하릉 래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많이도 말고 조금씩,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행동 하나하나부터 아주 조금씩 바꾸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p.326)
책에서 H군으로 언급된 아이의 사진입니다. 아주 잘 생긴 아이이지요, 그 옆의 사진은 H군이 강남에 살 때 온 몸에 아토피 증세가 나타난 모습입니다.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피곤에 지친 H군의 가족은 보통 사람들이 엄두내기 힘든 이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치솟고 있는 강남의 집값을 포기한 채 관악산 밑 동네로 이사를 갔지요. 그리고 집 내부의 소재를 친환경적인 소재로 바꾸었습니다. 창 밖으로는 관악산의 숲이 시원스레 펼쳐지구요(아~ 이게 제가 꿈꾸는 환경입니다^^). 그로부터 4달 후 아이는 예전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CF 모델 뺨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강남에 살 때는 강남에 산다는 약간 우쭐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아프니까 그런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제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으요. 아이가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건강한 것이 영어를 잘하고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제1부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에서는 새집증후군, 빌딩증후군,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등을 다루면서 주거 환경의 중요성과 화학물질의 폐해에 대해 역설합니다. 많은 사례를 통해 현대 주거환경과 화학물질의 폐해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2부 <우리는 왜 자동차를 용서하는가>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자동차 문화의 폐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가용의 도심 진입을 금지한 네델란드 유틀레히트 시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요, 따로 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참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3부 <보이지 않는 괴물들>에서는 지난 150여년간 사용된 치과용 충전제 아말감의 폐해, 덩치 큰 생선 속의 수은의 폐해, 그리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즐겨 먹는 생선 속 수은 때문에 두 아이를 잃은 레베카 리딩턴 씨의 모습을 보며 정말 '환경의 역습'을 실감하였습니다. 그것도 청정 바다로 유명한 호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4부 <기본으로 돌아가자>에서 가장 흥미있는 내용은, 최근 위헌 판결을 받은 수도 이전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산업화의 물결이 일면서 이런 중앙 집중은 가속화하여 30년만에 대한민국 국민의 4분의 1이 서울로 몰려들게 되었다. (…) 이런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친환경적인 삶의 질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인해 땅이나 집이 없는 서민들만 대를 물려가며 어렵게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 이러한 수도권의 불합리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사람들이 다시 지방으로 흩어져 국토의 한 부분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하는 정책을 쓰는 방법 외에는 없다.(p.313)" 그러면서 그는, 서울에 몰려있는 교육기관의 이전과 지방 분권, 친환경 농업과 어업으로 지방을 살려내고, 행정도시를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도로망보다는 친환경적인 철도망을 연결하고 시내 교통망은 지상 전철위주로 만들고 자가용의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의 세밀한 그림을 그린 다음, 서울에서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관습헌법'에 의해 헌법을 개정하지 아니하고서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따로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며, 이 당연한 것을 설득하기 위해 그와 제작팀은 1년 간이나 심층 취재를 했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여주기 전까지 사람들은 믿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