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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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 교수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한동안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수일 교수는 이미 알려진 대로, 만주 북간도(현재의 옌볜(延邊)) 출신으로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평양외국어대학, 말레이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다 북한 공작원 신분이면서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와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5년간 옥살이를 하고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세상에 다시 나왔습니다. 복역중에 <이븐 바투타 여행기1,2>, <중국으로 가는 길> 등을 완역했고, 출옥 후에도 <고대문명교류사>, <이슬람 문명>, <문명교류사 연구> 등의 저서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의 역주서를 펴냈습니다. 비록 간첩 혐의로 복역하고 나왔지만, 그 사상의 좌우를 떠나 ‘동서문명교류사’와 ‘아랍 이슬람학’의 개척자임은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5년간의 옥살이를 하는 동안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펴낸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당국에 붙잡히는 그 순간까지도 그를 외국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5년 간의 옥중 편지 시작을 그의 소설같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엽니다. 그러나 5년 간의 지리한 옥살이임에도 그의 편지 어디에도 유약한 표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40년을 학자로서 매진해온 그의 학문적 열정과 집념이 그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저에게 채찍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문명교류학을 통해 민족사를 복원하겠다는 '순수한'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게 되었습니다. 제 표현의 한계로 인해 그의 열정과 바람, 학문적 깊이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입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민족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편지 곳곳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다듬고, 옥중에서 그의 염원인 민족사 복원을 위한 문명교류학 관련 저술에 매진합니다. 그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가고(牛步千里)',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게(牛踏不破)', '언 붓을 입김으로 녹이며', '새끼줄을 톱 삼아 나무를 베는' 과 같은 표현이 있는데, 한 번 눈으로 들어온 문장이 머릿속을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참으로 두고두고 나를 단련하기 위해 되새겨야 할 문장들입니다. 이 외에도 동서고금의 고전과 다양한 문헌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편지를 보노라면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433일 동안 국어대사전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단어 한단어 빠짐없이 보고 익혔다는 그의 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참 많이 반성했고, 더불어 많은 어휘를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1996년 9월 14일자 편지를 시작으로 출옥하기 하루 전인 2000년 8월 14일자 편지로 끝이 납니다. 400 여 페이지의 짧지 않은 글을 읽으면서 저는 시종일관 그의 학문적 열정과 지식의 깊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국어를 포함해 동양어 7종과 서양어 5종, 모두 12종의 언어를 익힌 이야기, 때마다 반복되는 한·중간의 역사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민족사를 복원하겠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학문의 총림(叢林)에서 무위(無爲)의 낙과(落果)가 되지 않으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학문과 더불어 살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어줍잖게 책 좀 읽고 어룽더룽 아는 바를 글로 쓰는 제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저의 게으름이나 느즈러짐을 새삼 경계하기 위해 천협(淺狹)하게 아는 바라도 애써 쓰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할 뿐입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5년의 옥살이를 우보천리(牛步千里)하면서 호보(虎步)로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그를 옥바라지한 그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인지, 아니 실정법상 간첩인지도 모르고 지냈던 그의 아내의 절대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던들 이 모든 것이 불가했을 것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인고의 쓰라림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나를 잊어주오'라고 단장(斷腸)의 절규를 한 바 있었지. 그러나 당신은 '기다림'으로 '잊음'을 멀리하겠다고, 정녕 기담(奇譚)같은 큰 사랑으로 화답해왔소." 가슴이 아프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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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4-12-1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은 책 중에 하나랍니다. 님의 리뷰를 읽고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