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
조유전 이기환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출퇴근 길에 오며 가며 읽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440여 페이지 분량의 책이지만, 어느 한 부분 막힘 없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사서이기는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진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경험입니다. 고고학자라고 해봐야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만 생각날 뿐 실제 고고학자의 이름은 단 하나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책을 통해 저자인 조유전을 비롯해, 김원룡, 이병도, 유태용, 이형구 등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자 조유전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을 시작으로 1977년 경주고적발굴 조사단장을 맡으며 30여년 간 안압지, 황룡사지, 감은사지, 월성 황남대총, 천마총 등 한국사 유물·유적의 주요 발굴 조사를 주도한 명실공히 '한국 고고학의 산 증인'이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발굴 현장의 이야기를 30 개의 꼭지로 나눠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현장의 상황을 생중계하듯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흥분할 때 함께 흥분하고 저자가 안타까워할 때는 함께 가슴이 아파옵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나도 고고학자가 되어 그들의 상상의 세계에 함께 묻힙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지식들을 책을 덮음과 동시에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봄날 꽃가루가 날리듯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이는 순전히 제 머리가 나쁜 탓이요, 일찌기 역사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이 방면으로 나의 뇌에 시냅스가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못한 때문일 것입니다.

출근길에 맨날 지나치는 한강 너머 구의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고구려 최전방 초소이며, 고구려 제국 완성의 상징인 구의동 유적이 1970년대 개발의 미명 아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한강 남쪽에서 잠실대교 북단으로 건너가다 보면 오른쪽에 한양아파트가 보입니다. 그 한양아파트 24층, 바로 그곳이 구의동 유적입니다." 아파트 숲으로 변해 온데간데없는 유적의 흔적을 애써 찾아보려는 옛 발굴단원의 공허한 말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회사 근처에 있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도 시간을 내어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1971년 무령왕릉 이후 백제 유적 최대의 발견,발굴이라고 일컬어지는 풍납토성. 연인원 4백만명이 동원되어 쌓은 한성 백제의 국운을 건 대역사의 현장이 바로 코 앞에 있었습니다. 눈 앞에 있어도, 모르면 보이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영영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귀중한 유산을 이름 모를 시민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됩니다. 지나가던 신문배달 소년이 발견한 함안 마갑총,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당했지만 끈질긴 추적으로 끝내 한성백제 500년의 비밀을 파헤친 이형구 교수의 풍납토성 발견 스토리, 개발의 미명 아래 완전히 파괴될 뻔한 완주 갈동 거푸집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금세기 최대의 발굴이자 최악의 발굴 기록으로 남은 무령왕릉 발굴 뒷 얘기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일본식 장고형 고분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외에도 남한산성이 치욕의 성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와, 일제 시대 포석정이 사적 1호가 된 슬픈 사연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접하기 힘든, 발굴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유적과 유물을 통해 역사를 만드는 고고학자들의 상상력의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를 정말 생동감 있게 그리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짜내고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느라 고생했을 노학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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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2004-11-24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 관련 서적을 찾다가 리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