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 (보급판 문고본) - 황건기의(黃巾起義)
장정일 글 / 김영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영화 <용의 부활>은 <삼국지>를 영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삼국지>를 재현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는 <삼국지>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유비, 조조, 손권은 아주 잠깐 등장하거나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갈량도 잠깐 등장합니다. 관우와 장비도 마찬가지.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자룡'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삼국지>가 아니라 '조자룡전'이라 해야 어울립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머리를 희끗하게 분장한 유덕화의 모습도 새롭고, 무엇보다 늘상 바라보던 방향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삼국지>를 바라보니 신선했습니다. 영화는 구름과 함께 시작합니다. 뭉게뭉게 구름이 떠오르고 흘러갑니다. 아마 조운의 운(雲)을 뜻한 것 같습니다. 곧이어 상산 출신 조자룡은 유비군 진영에 자원 입대합니다. 거기서 동향 출신으로 큰형(大哥)이라고 부르는 홍금보를 만나게 되고, 영화는 시종일관 이 둘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불패장군이라는 별명답게 조자룡은 평생에 걸쳐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조조의 손녀 조영에게 패하고 맙니다. 통상 알고 있는 <삼국지>에서 큰 줄거리는 빌려왔되 이처럼 새롭게 그리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삼국지>라면 원전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이 영화를 본다면 '이게 무슨 삼국지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픽션인데도 말입니다.



영화 <용의 부활>의 주된 배경은 유비, 조조, 손권 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이 사라지고 그들의 2,3세가 각축을 벌이는 시기입니다. 천수를 다한 조자룡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기를 무대로 그리기 때문입니다. 전장에서 평생을 보낸 조자룡은 죽음을 맞이할 봉명산에서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그곳은 그가 처음 유비군에 자원 입대했던 곳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커다란 원을 돌아 제자리로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암시입니다.

오늘의 리뷰 주제는 <용의 부활>이 아닙니다. <삼국지>의 또 다른 판본, <장정일 삼국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문고판이 나와 가볍게 읽고 있습니다.

영화 <용의 부활>이 '여러 장수들 중의 하나'였던 조자룡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냈듯, <장정일 삼국지>는 기존의 <삼국지>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이들의 심리를 거의 조연 또는 주인공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장정일은 <삼국지>를 역사로 보기보다는 철저하게 소설로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 썼습니다. <장정일 삼국지>에서는 유비도, 조조도, 손권도 우리편이 아닙니다. 혹자는 유비 중심의 <삼국지>를, 또 누구는 조조 중심의 <삼국지>를 선호할 수 있겠지만 <장정일 삼국지>는 그 누구도 주인공으로 삼지 않습니다. 중국인의 눈으로 본 <삼국지>는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 굳이 장정일이 새로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제   목 : 장정일 삼국지 (1) 황건기의 <문고판>
   지은이 : 장정일
   펴낸곳 : 김영사 / 2008.5.1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5,500

제1권 <황건기의>는 거의 '동탁전'입니다. <용의 부활>이 '조자룡전'이라면 <장정일 삼국지> 제1권 <황건기의>는 '동탁전'입니다. 원전(?) <삼국지>에서 탐욕하고 어리석은 장수로 황제를 억압하여 권세를 잠깐 누리다가 사라진 변방의 장수였던 동탁이, 여기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동탁의 심리묘사가 중립적입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양면성을 고루 그리고 있습니다. 동탁과 그의 사위이자 참모인 '이유'의 활약상을 비교적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누런 머리띠를 두른 도적떼들의 반란으로 그리지 않고 '의로움으로 일어선' 민중 봉기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제1권의 제목이 <황건기의>입니다. 유비는 결코 유약하지 않습니다. 그는 '전술가'입니다. 뭐도 없는 환관이 나라를 망쳤다는 식의 서술이 아니라 후한말에 왜 환관이 등극하게 되었는지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흔히 악당 10인방을 그려지는 10명의 환관 '십상시'를 무작정 나쁜 인물들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이쯤 되면 기존의 <삼국지> 독자들은 혼란스럽습니다. 도대체 뭐가 '진짜'인가?

'진짜'는 없습니다. <삼국지>는 원래부터 소설입니다. 구전된 소설을 누군가가 글로 적은 것이고, 그 중에서 나관중이 쓴 판본이 유명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왜곡과 편향된 해석이 가득 차 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이건 역사서입니다)와 비교해볼 때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는 7할이 허구입니다.

장정일은 <삼국지>를 제3국인의 눈으로 쓰겠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는 동호(東湖), 즉 고구려계 사람들의 눈으로도 보고, 중원이 아닌 변방의 장수들의 눈으로도 봅니다. 중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변방 장수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권에서 동탁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황건적의 우두머리 장각을 고뇌하는 민중봉기의 지도자 장각으로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새롭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짜' <삼국지>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 분이라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똑 부러지게 선악을 구분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기존의 <삼국지>에 익숙한 독자에게 <장정일 삼국지>는 죽도 밥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삼국지>에 비해 흥행이 덜 됐나 봅니다. 새로운 해석보다는 아직은 '원조'가 중요한 시대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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