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창비시선 284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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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늙습니다. 늙는다는 말은 듣기가 편치 않습니다. 늙음은 곧 쇠퇴를 의미합니다. 좋은 시절 다 지나 곧 삶의 끝을 보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늙음은, 말을 하기도 듣기도 편치 않습니다.

문득 늙음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늙음의 문턱에 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늙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행동에 앞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젊음의 열정을 여전히 내 삶의 주된 코드로 삼으면서도 혹 그 부작용으로 오만함이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그리고 바랍니다. 내가 늙음을 받아 들일 즈음, 그때는 나 스스로 성찰의 도를 완전히 깨친 후이기를 바랍니다. 마치 신경림 시인처럼 말입니다.




   제   목 : 낙타
   지은이 : 신경림
   펴낸곳 : 창비 / 2008.2.22 초판 발행, 초판1쇄를 읽음  ₩6,000



신경림 시인의 최신작 《낙타》를 읽으니, 이젠 그가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의 끈과 저승의 끈을 함께 붙들고 혹 이승의 끈을 놓더라도 그리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면서 책장을 펼치면 바로 나오는 시 <낙타>부터 그러합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시를 읽으며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번 시집의 모든 시를 다 읽었지만 예전의 신경림은 어디 갔는지 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집 맨 끝에, 작가 후기처럼 실려 있는 산문 <나는 왜 시를 쓰는가>를 읽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시는 그 시대의 질문이요 대답이라는 명제도 그랬다. 그 시대의 삶에 깊이 뿌리 박는 것으로 충분하지 그 이상의 해답은 있을 수 없었고, 오늘의 내 삶, 우리들의 삶에 충실한 시를 쓰자, 이렇게 마음을 정하면서 나는 시 쓰는 일이 조금씩 편하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통일이나 노동 문제를 다루지 않은 시가 어찌 오늘의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라는, 강풍처럼 몰아치던 일부 과격한 질타를 차단하니 시 쓰는 일에 비로소 신명이 났고, 시에 활기도 생겼다.
고희를 넘긴 시인이 하는 말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번 시들은 모두 여행하면서 깨달은 바를 엮은 것입니다. 그러니 골방에 앉아 쓴 것이 없다는 시인의 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허전합니다. 허전한 걸 보니 저는 아직 늙음의 초입에도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냥 곱게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그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독하리만치 외로웠던 그 시절에 나를 일으켜세웠던 시인이었음을 잊지 않습니다. 늙음을 가슴으로 받아 들일 때, 그때 다시 읽으면 시인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늘 시인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져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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