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1
이민정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든 어머니가 아들에게서 파워포인트를 배웁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어머니는 자주 잊어버렸고 또 어떨 때는 작업한 문서를 홀랑 날려버려 아들에게 다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며 즐겁게 어머니를 위해 문서를 만듭니다. 그도 분명 바쁜 일이 있을 테고, 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귀찮았을 텐데 말입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고마워. 귀찮을 텐데도 이렇게 잘 가르쳐주니."

아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어머니는 아세요?"

어머니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만질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컴퓨터를 할 때마다 행복해. 네 생각이 나서."

아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어머니한테서 배웠습니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돕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어머니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어머니는 다름아닌 이민정 선생님입니다.

어제 우연찮게 이민정 선생님을 만나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쓰신 분입니다. 제가 꼭 한 번 읽어 보시라고, 책에 담긴 사례 하나하나가 감동 그 자체라고 소개했던 그 책의 저자이십니다. 직접 만나뵙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어제 점심을 함께 하면서 몇 시간 얘기를 나눌 행운이 왔습니다.



아들이 돈을 벌었습니다. 월급을 타면 매번 어머니에게 50만원, 아버지에게 50만원, 집안 일을 돌봐주시는 아주머니께 30만원을 챙겨 드린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니니? 이렇게 주면 너는 어떻게...?"

아들은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이미 어머니에게서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꿈나라 이야기 같죠? 역시 선생님과 아들이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두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한없는 사랑을 받았고, 받은 만큼 또 베풀고 있습니다. 아들의 소원은 엄마처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성공과 아들의 성공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도 자녀 교육에 실패한 사례는 참 많습니다. 심지어 비폭력 평화의 상징 간디도 그러했고 교육학의 필독서 <에밀>을 쓴 루소마저 그러했습니다. 케네디, 헤밍웨이, 처칠, 에디슨, 고갱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사례만 따로 모아놓은 책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부러 그런 책을 찾아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례는 '나'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대신 지금의 내 모습, 지금의 나와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배우고 그렇게 닮아가며 나와 자녀, 나와 내 가족,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행복한 이야기만을 모아 놓은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1>을 소개합니다.


   제   목 :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1
   지은이 : 이민정
   펴낸곳 : 김영사 / 1997.8.11 초판 발행, 2006.12.26일刊 초판 15쇄를 읽음  ₩9,900

이 책은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1,2>의 후속편입니다. '부모'들의 이야기도 두 권이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두 권입니다. 모두 이민정 선생님이 <월간 생활성서>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선생님은 글을 쓰시는 것이 참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원고 청탁이 있어도 수락하기가 힘이 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모든 글은 소설이나 창작이 아닌 실제의 사례를 토대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도 잔잔한 감동들의 연속입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책장 속에 모셔둘 책이 아닙니다. 마르고 닳도록 보고 느껴야 합니다. 부모 스스로 완전히 변할 때까지 보고 또 봐야 합니다. 버럭 화가 날 때, 일단 화를 참고 이 책 아무 곳이나 펴서 읽어보면 마음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옆에 끼고 보고 또 봐야 할 책입니다. 최소한 내가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말입니다.

슬기 엄마, 이제부터 세뱃돈은 뺏어 가지 마세요.
어머니 언제 엄마가 네 돈 뺏었어, 네 이름으로 저금했지. 얘가 엄마를 아주 이상한 사람 만드네.
슬기 엄마가 맡아서 보관한다고 하고 은행에 다 넣어 버리니까 난 돈을 쓸 수 없잖아요.
어머니 엄마가 심부름값으로 주는 돈으로 네가 사고 싶은 것 다 사잖아.

얼마 전에 설날이었는데 혹시 이런 일이 없었나요? 만약 아이가 슬기처럼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버지 (더 얘기하려는 아내의 말을 막고) 슬기야, 그동안 네가 받은 세뱃돈을 엄마가 몽땅 저금해서 서운했구나.
슬기 그래요. 다른 애들은 인형도 사고, 학교에 돈도 갖고 와서 자랑하는데...
아버지 세뱃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친구가 부러웠구나.
슬기 예, 돈을 쓰지 않아도 그냥 갖고 있고 싶어요.
어머니 그러면 돈을 잃어버린단 말이야.
슬기 아냐,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아요.
아버지 그러니까 슬기는 돈을 쓰고 싶은 것보다 갖고 있고 싶구나. 그런데 엄마는 네가 돈을 함부로 쓸까 봐, 일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러면 아빠가 제안해 볼까? 이번 명절에 돈이 생기면 슬기가 잘 관리하는 거야. 그러다가 힘이 들면 엄마에게 맡기고, 당신은 어때?
어머니 알았어요.
슬기 아빠, 좋아요. 그런데 제가 사고 싶은 거 사도 돼요?
아버지 그럼, 네게 맡겼으니까. 그런데 네가 산 것은 우리에게 보여 줬으면 해. 왜냐하면 슬기가 돈을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을 샀는지 아닌지 보고 싶거든.
슬기 알았어요. 아빠, 난 아빠가 좋아요. (아빠가 슬기에게 엄마 쪽을 향해 눈을 씽긋하자) 엄마도 좋아요.
아버지 슬기에게 그 말을 들으니까 아빠 기분이 굉장히 좋은데!

그런 일이 있은 후 슬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슬기는 추석 때 친척들에게서 받은 돈 2만 7천원을 이틀간 가지고 있다가 지우개, 연필, 머리핀, 머리때 등 자질구레한 것을 사고는 학교에 가서도 돈이 걱정이 된다면서 제 엄마에게 맡기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아이에게 말을 할 때 아내가 끼어들어서 방해되는 말만 톡톡 하니까 아내에게 화나는 것을 참느라고 힘들었어요. 아내도 함께 배워야겠어요."

이 책에서 몇 안 되는 아빠 사례 중 하나입니다. 엄마의 역할이냐 아빠의 역할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이 먼저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실천의 대상도 반드시 자녀에 국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딸이나 아내나, 아들이나 남편이나 실은 똑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해하려 하고, 혹시 화가 난다면 일단 참고, 화로 표현되는 그 이면의 마음, 이를 테면 걱정이나 아쉬움, 안타까움 따위를 솔직히 말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몇 날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터득해야 할 지혜입니다. 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어디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가 슬기롭고 지혜롭게,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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