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평점 :
올해는 일년 내내 바쁠 것 같습니다. 아침에 기분이 좋으면 하루가 즐겁고, 주초에 일이 잘 되면 그 주의 일이 잘 풀립니다. 마찬가지로 연초에 일이 많으니 일년 내내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일이 많다는 건, 경험으로 볼 때 즐거운 일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삿된 마음이 들 여유조차 없이 바쁠 때가, 훗날 돌아보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때였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책 읽는 것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쩌면 바쁠 때일수록 더더욱 책에서 손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일이 많다는 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에너지를 소진하는 과정입니다. 육체의 에너지야 밥을 먹어 보충한다지만 정신적 에너지는 책이 아니면 달리 보충할 방법이 없습니다. 바쁜데 무슨 책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험으로 볼 때 한가하든 바쁘든 책은 그 소임을 충분히 합니다. 대신 다소 여유가 있을 때 보는 책과 바쁠 때 보는 책의 종류는 조금 다릅니다.
여유가 있을 때는 어떤 책을 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쁠 때 읽는 책은 딱 두 종류입니다. 재미가 있거나 지금 일에 도움이 될만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재미있는 책은 정신의 윤활유 역할을 하며, 일에 도움이 되는 책은 업무의 질을 높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읽는 책과 바쁠 때 읽는 책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에 도움이 되는 책이란 게, 사실 좀 모호합니다. 현재의 업무와 연관된 책은 당연히 직접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에서 스티븐 코비는, 오늘날 상품과 서비스에 부가되는 가치의 80%가 지식노동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지식노동은 그 속성상 창조적 업무인데, 창조의 영역에서 필요한 지식은 그 경계가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혜'입니다. 지혜의 '여유'가 많은 사람이 창조적 업무에 적합합니다.
제 목 : 학문의 즐거움
지은이 : 히로나카 헤이스케 / 방승양 옮김
펴낸곳 : 김영사 / 1992.12.1 초판 발행, 2004.12.28일刊 개정2판 19쇄를 읽음 (7,900원)
지혜의 '여유'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 이는 <학문의 즐거움>을 쓴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개념입니다. 그는 공부하는 이유를 지혜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기억한 것의 극히 일부분밖에 끄집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뇌에 수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배우고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뇌에 축적한 후에 끄집어 내지 못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히로나카는 인간만이 가진 '여유'라고 말합니다. 수학적 의미의 '여유'입니다. 즉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정보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방대한 양의 정보가 '바로 꺼내 쓸 수 없는 형태'로 뇌에 축적되었을 때, 전자에 대한 후자의 비율의 크기를 '여유'라고 정의합니다. 바로 꺼내 쓸 수는 없지만 약간의 수고와 기회를 제공하면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으므로, '지혜의 넓이'라고도 하고, 이것이야말로 지식노동자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불연속적인 것을 연속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런 관용성 중의 하나가 연상(聯想)입니다. 연상은 여러 개의 다른 것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역할도 하는데, 이것은 실생활에서도 업무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이런 능력은, 사물 간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을 히로나카는 '지혜의 깊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동료 후배들에게 항상 책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특히 그 업무가 창조적 기획의 업무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깊이도 깊이지만 폭넓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깊고 넓은 지식은 발효되어 '지혜'가 됩니다. 그 지혜의 질이 지식노동자의 능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책에서 손을 떼면 안 됩니다.
저는 제가 창조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창조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창조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창조적 능력을 곧 발효된 지혜라 한다면, 먼저 지식을 쌓고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부단히 익히고 생각하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평범한 수학자, 그러나 끈기 하나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드상까지 받은 지독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독할지 몰라도 그는 스스로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공부하다 인생마저 도가 통한,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자전적 에세이가 <학문의 즐거움>입니다. 어떻게 해야 창조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창조란 과연 무엇인지, 왜 매번 잊어버리면서도 또 배워야 하는지를 이 책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배운 것은 곧잘 잊어버려도 계속 배워야 하는 이유, 시행착오가 성공보다 값진 이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체념하고 스스로 바보임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 그래서 궁극적으로 삶 자체가 즐거운 창조과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알려면 <학문의 즐거움>을 읽어 보세요. 인생이 즐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