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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 대학강의
김석진 지음 / 한길사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주 금요일에 지나치게 과음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마시기도 오랜만입니다. 그날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길 바랄 정도로 힘이 들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습니다.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 갔습니다.
바깥 출입이 불가하여 집에서 책을 보며 주말을 보냈습니다. 지난 주에 여러 권의 책을 사놓은 게 있지만, 몸이 아프고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을 때엔 오히려 고전을 보는 편이 낫습니다. 이해가 되면 다행이고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아주 편하게 보면 됩니다. 책장을 살피다가 《대학(大學)》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학》에 대한 책도 몇 권 있길래 그 중 대산 김석진 선생이 쓰신 《대산 대학 강의(한길사)》를 골랐습니다. 관옥 이현주 목사가 쓴 《대학·중용 읽기(다산글방)》는 기독교적 생각이 많이 묻어 있었고, 윤홍식의 《大學, 인간의 길을 열다(봉황동래)》는 대종교(단군을 교조로 하는 종교)적 생각이 짙어 원전의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할 것 같아 나중에 읽으려 미뤄두었습니다. 홍승직이 역해한 《대학·중용(고려원북스)》와 이가원 감수의 《大學·中庸(홍신문화사)》도 있었지만 대산 선생의 해설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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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은 사서삼경 중 가장 기초가 되는 책입니다. 사서삼경을 배우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대학》→ 《중용》→ 《맹자》→ 《논어》→ 《시경》→ 《서경》→ 《역경》 순입니다. 《역경》 은 주역입니다. 앞의 네 책이 사서이고 뒤의 세 책이 삼경입니다.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인이 쓴 것을 '경(經)'이라 하고, 현인이 쓴 것을 '전(傳)'이라 합니다. 삼경에 속하는 《시경》,《서경》,《역경》은 공자가 직접 손을 대었으므로 '경'이라고 합니다. 사서는 공자의 제자들이 지은 글로서 '전'에 해당되는 것인데, 그저 '서(書)'라고도 합니다.
《大學》은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지은 글입니다. 증자가 손수 지은 부분을 '경'이라 하고, 증자의 뜻을 그 제자들이 기록한 것을 '전'이라 하여, 《大學》 안에도 '경'과 '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후대의 주자가 설명과 주를 달아 내용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그 핵심 내용은 증자가 직접 쓴 '경'에 모두 담겨 있는데, 본문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아래에 그 전문을 모두 옮깁니다. (한자에 울렁증이 있으신 분들은 SK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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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길지 않지요? 짧은 이 문장을 후학들이 덧붙이고 덧붙여 길어진 것이 현재의 《大學》입니다. 제가 따로 밑줄을 그어 표시한 곳은 《大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3강령(三綱領)과 8조목(八條目)입니다.
3강령은 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이고,
8조목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들 보셨죠? 격물치지라는 말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도 교과서에서 한번 들어봤음직합니다. 옛적에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그리도 고리탑탑하던 말이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그 뜻을 하나씩 새겨 가며 익히니 가슴에 절절히 와닿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온갖 사물과 사건, 사람들과 관계하는데, 이들과 부딪치는 것이 격물(格物)입니다. 부딪쳐야지 알 수가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부딪쳐야죠. 그런 다음에야 치지(致知) - 앎에 이르게 됩니다. 알았으면 뜻을 성실히 해야죠, 이게 성의(誠意)입니다. 뜻을 성실히 하면 마음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심(正心)입니다. 마음을 바로하여 몸을 닦는 것, 이것이 수신(修身)이고, 자신의 몸을 닦은 다음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치하는 것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입니다. 이를 하나 하나 설명한 것이 《大學》입니다.
제 목 : 대산 대학 강의
지은이 : 대산 김석진
펴낸곳 : 한길사 / 2000.6.25 초판 발행, 2006.3.20일刊 초판 2쇄를 읽음 (15,000원)
그러나 아무리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들, 옛 현인들의 말인 만큼 지금 시대에 그대로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해야 어리석은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해석해버리면 원문의 그윽한 맛을 보기가 또 힘들어집니다. 골동품이 낡았다고 덧칠을 해버리면 그게 어디 골동품의 가치가 있을까요? 옛글을 그대로 공부한 다음에 현대적으로 응용해야 제대로 적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경계를 오가며 옛글의 맛과 뜻을 제대로 전달해 주는 해설본이 바로 대산 김석진 선생의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산 김석진 선생은 주역학자로 유명합니다. 한길사에서 펴낸 <대산 주역 강의 1,2,3>이 가장 대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80 평생 중 20년을 주역 강의를 하셨습니다. 지난 해 10월에는 팔순연과 회고록 출판 기념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80 평생을 회고하며 <대산석과>라는 책을 내셨다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팔순연에서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께서도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는데, 저도 인터넷으로만 이런 소식을 알 뿐, 아직 한 번도 만나뵌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선생이 남기신 책이 있어 가끔 펼쳐보며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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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의 핵심이 삼강령과 팔조목을 설명한 부분이라 하지만, 제가 가장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부분은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팔조목 중 성의(誠意)를 설명한 구절입니다.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ㅣ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
이른바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악취를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해야 하니, 이를 '스스로 쾌족함'이라 한다. 따라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라도 반드시 삼가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하며, 그리하여 홀로 있을 때조차 삼가 부끄러움이 없도록 성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홀로 있을 때조차 삼가야 한다는 '신독(愼獨)'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신독할 줄만 안다면 그것이 곧 군자요,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평생을 두고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