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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2
이민정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4학년인 혜연이는 잠잘 시간이 지난, 밤 11시쯤 갑자기 학교에 가져가야 할 치약 생각이 나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내일까지 학교에서 치약 가져오래요. 치약 사 주세요."
여러분이 혜연이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부모1
"그래, 알았어. 혜연아 엄마가 사다 놓을게. 너는 걱정 말고 빨리 가서 잠이나 자."
부모2
"지금 얘기하면 어떡해. 준비물은 미리미리 챙겨야지. 4학년이나 됐으면서 아직까지도 미리 챙기는 습관이 안 되어 있으면 되겠니?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엄만 몰라. 네가 벌을 받더라도 그건 네 책임이야."
부모3
"넌 맨날 엉뚱한 데 정신 팔고 다니다가 밤늦게 얘기하더라. 오늘은 엄마가 봐 주는 거야. 다음엔 네가 선생님께 매를 맞든 벌을 서든 절대로 안 사 줘. 알았어?"
부모4
"으응, 깜빡 잊었구나.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나갈 수도 없고 어떡하나. 내일은 집에서 쓰던 치약 가져가면 어때? 아니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는 길에 사든가."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4번 같죠?^^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어떤 말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만 어떤 말은 상대방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방해될 때가 있습니다. 저자가 분류한 방해되는 말 10가지는 이렇습니다.
- 넌 낮에 텔레비전 보면서 놀기만 하더니 꼭 밤늦게 얘기해서 엄마를 힘들게 하더라. (비난)
- 얘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녀. 넌 뭘 까먹는 데는 아주 도사야, 도사. 그 머리로 무슨 공부를 하겠니.(욕하기)
- 다음에는 이렇게 늦게 얘기하면 아무것도 안 사 줄 거야.(위협)
- 그런 얘긴 미리미리 해. 꼭 잠잘 시간에 얘기하지 말고.(명령)
-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하고 숙제 끝나면 준비물을 챙겨야지. 이 밤중에 얘기하면 엄마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가게 문 닫을 생각도 하고 그걸 사 올 엄마 생각도 해야지.(훈계)
- 준비물을 혼자서 미리 챙기지 못하면 학교 가지 마!(경고)
- 왜 잊어버렸어? 왜? 텔레비전에 빠지면 준비물 같은 건 다 잊어버리는 거야. 아니면 엄마가 밤늦게 치약 사러 가다가 납치라도 되길 바라는 거야?(질문,탐색,심리분석)
- 승태는 학교에서 오자마자 준비물부터 챙기는데 너도 동생 좀 닮아 봐라.(비교)
- 선생님께서 준비물은 밝을 때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하셨지. 잠옷 다 갈아입은 다음에 하라고 하셨구나. 새벽 2시에 얘기하라고 하지 않으시던?(빈정거림)
- 이런 식으로 해 봐라. 뻔하다 뻔해. 이 담에 시집가서 쫓겨나기 딱 알맞지.(예언)
사실 우리가 당했던(?) 경험이나, 저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반응할 것같은 모든 표현들이 위 10가지에 다 포함되어 있지 않나요?
"으응, 깜빡 잊었구나.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나갈 수도 없고 어떡하나. 내일은 집에서 쓰던 치약 가져가면 어때? 아니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는 길에 사든가."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열등감을 갖게 하며, 욕구가 무시되어 좌절감을 느끼게 하며, 상대방에게 적개심이나 불만을 품게 만들고, 반항하고 대화하고 싶은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일부러 대화에 방해되는 표현을 쓰는 건 아니겠죠? 지금이라도 알았다면 바꾸어야 하는데 30~40년 된 습관이 한번에 바뀌기가 힘들 겁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거겠죠. 남일이 아닙니다. 당장 저부터 연습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말을 했는데 혜연이가 이렇게 반응하면 어떡하죠?
"쓰던 치약은 싫어. 그리고 난 아침에 늦게 일어날지도 모른단 말이야."
이 정도 상황까지 갔다면 대개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의 방법을 쓸 것입니다. 부모가 원하는 쪽으로 해결하든지, 아니면 자녀가 원하는 쪽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두 방법 모두 이긴 자와 진 자가 있기 때문에 진 쪽은 이긴 쪽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또 자기중심적이어서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심성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이 때 사용해야 하는 방법이 바로 '무패 방법'입니다. 이 책에서는 '무패 방법'이라는 표현은 따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대방(자녀)과 나(부모)의 갈등 해소 방법'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녀의 감정과 욕구를 들으면서 자녀의 욕구를 정의한다.
2. 부모의 감정과 욕구를 말하면서 부모의 욕구를 정의한다.
3. 서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각자 생각나는 의견을 말한다.
4. 해결방법들을 평가하여 선택한다.
5. 선택된 해결방법을 실행한다.
6. 실행한 후에 재평가한다.
"쓰던 치약은 싫어. 그리고 난 아침에 늦게 일어날지도 모른단 말이야."
"아침 일찍 일어날 자신은 없지만 새 치약을 가져가고 싶구나."
"응, 애들이 다 새 치약 가져온단 말이야.'
"그래, 너도 친구들처럼 꼭 새 치약을 쓰고 싶다고?"
"그래요.(1단계 : 혜연이의 욕구 확인)
엄마는 엄마 일에 방해되지 않게 네가 치약을 가져가길 원해.(2단계 : 부모의 욕구 정의) 그러면 우리 둘 다 좋은 방법을 생각 나는 대로 얘기하며 적어 보자.(3단계 : 의견을 얘기하며 적기)
그래서 생각한 방법들이 ① 어머니가 혜연이를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② 아침 일찍 운동하러 가시는 아버지께 부탁한다 ③ 오후반인 승태가 새 치약을 사가지고 좀 일찍 학교에 가서 누나네 교실로 갖다 준다 ④ 옆집 지은이네가 미리 사다 놓은 치약이 몇 개 있었는데, 알아보고 빌려 온다.
혜연이와 어머니는 ①번으로 하되 계획 대로 안 되면 ②번으로 하기로 했다. (4단계 : 실행하여 선택하기) 그래서 실제로 해보고(5단계 : 실행), 나중에 그 결과에 대해 서로 얘기해 볼 기회를 가지면 됩니다.(6단계 : 실행 후 재평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 서로의 욕구를 존중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상대방(자녀)은 어려운 문제에 처했을 때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며 창의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느 누구 하나 이기고 지는 것이 없는 '무패 방법'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2》도 1권과 마찬가지로 매우 풍부한 사례가 담겨 있습니다. 비단 부모와 자녀 사이의 문제가 아닌 고부 간의 갈등, 부부 간의 문제까지 갖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이야기들입니다.
1,2권의 풍부한 사례에 비해 이론적인 정리가 부족해 아쉬웠는데, 2권 권말 부록으로 <따뜻한 부모가 되기 위한 기본 방법>이 있습니다. 위의 글을 그 중 일부를 정리하여 옮긴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로 화내지 않는다.
화내지 않고도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분의 이름은
나의 어머니다.
어느 중학생이 부모 교육을 받고 달라진 어머니에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