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 마음이 멍든 아이들을 위한
이지성 지음 / 성안당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살 시도에 관한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어떤 3학년 아이는 과일칼을 목에다 대고 찌를까 말까 망설였다고 했는가 하면, 또 다른 3학년 아이는 지나가던 차에 치여 죽으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어떤 5학년 아이는 단독주택 옥상에 올라가서 실제로 뛰었는데, 몸이 건물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지나가던 아저씨가 달려와서 구출했다고 적었고, 또 다른 5학년 아이는 중학생 형에게 목을 졸라달라고 부탁했는데, 중학생 형이 목을 조르다가 도망을 가서 죽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부탁한 말이 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전혀 모른 채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로 우리 부모님께 오늘 쓴 이야기를 말하면 안 되요." (p.23)

이 부분을 읽을 때 참 놀랐습니다. 믿기 힘들었습니다. 겨우 초등학교 3학년 또는 5학년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니. 《마음이 멍든 아이들을 위한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인 이지성 선생님이 3학년, 5학년 영어과 교과 담임을 맡고 있을 때 약 600명의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주며 부모님께 꼭 하고 싶은 말을 적어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위와 같이 '죽고 싶다'는 말을 쓴 아이가 3학년은 열 명에 한 명, 5학년은 열 명에 두세 명꼴로 나왔다고 합니다. 죽고 싶은 이유 중에서는 학원 스트레스가 압도적이었다고 합니다. "학원에 불을 지르고 나도 함께 죽고 싶다."는 표현까지 한 아이도 있었다고 하니…….

선생님은 결국 학교에 상담실을 차렸습니다. 이름하여 '상원 피노키오 어린이 상담실'. '상원'은 그가 재직중인 초등학교 이름이고 '피노키오'는 학교를 싫어하는 아이들, 그러나 제페토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결국에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뜻합니다.

윤정이는 3학년이다.
윤정이의 고민은 자살 충동으로 원인은 학원 스트레스인데, 다니는 학원이 네 개나 된다. 윤정이는 엄마가 무서워서 이런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며 선생님이 대신 말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나는 곧장 윤정이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윤정이의 심리 상태를 말씀드렸다. 하지만 윤정이가 학원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머니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러면서 우리 윤정이는 절대로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는 내심 윤정이 어머니도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첫 통화였기 때문에 그쯤에서 끝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통화에서도 변화가 없었고, 심지어는 윤정이에게 학교 가서 엉뚱한 짓 하지 말라며 꾸중까지 하셨다.
나는 차선책으로 윤정이 아버님과의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다행히 아버님과 얘기를 잘 나눈 후 마지막에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까지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부터 윤정이가 울상이 된 얼굴로 상담실에 찾아왔다. 아빠한테 아주 세게 한 대 쥐어 박혔다는 것이다. (p.48)


부모의 역할을 선생님이 대신 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부모를 대신해 그저 계속해서 윤정이의 말을 들어주었고 마침내 윤정이 입에서 자살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정말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에 모든 선생님이 저러하지는 않을 텐데, 가정에서 부모가 제대로 역할만 한다면 아이가 어떤 선생님을 만나고 어떤 환경에 접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텐데…….

이 책은 두어 시간이면 읽을 정도의 분량입니다. 페이지 수도 그리 많지 않고 몇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흑백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이 짧은 글 안에 요즘 초등학교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한 교사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교사가 부모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부모님들께 매일 삼십 분 이상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단, 대화의 주인공은 부모가 아니고 아이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다가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말을 자른 후 하고 싶은 말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인데, 이런 경우가 바로 대화의 주인공을 부모로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들은 이런 일을 몇 차례 당하고 나면 더 이상 부모와 대화할 의욕을 잃는다. 그러므로 이런 습관을 갖고 있는 부모라면 자녀와의 대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을 읽거나 자녀와의 대화법을 가르쳐주는 세미나 등에 참가해서 자신이 먼저 노력할 것을 권하고 싶다. (p.92)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이 책을 통해 초등학교 아이들의 속 마음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모 앞에서는 얌전하게 있는 척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살 충동을 느끼고 음란물에 중독된 아이로 키우지 않으려면 현실을 먼저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하셨다면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저자가 권유한 것과 같이 자녀와의 대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을 읽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멍든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책으로는 토머스 고든의 《부모 역할 훈련》, 이민정의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하임 기너트의 《부모와 아이 사이》를 추천합니다.

*
저자 이지성 선생님은 현재 분당 성원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비록 젊은 총각 선생님이기는 하지만 이미 여러 책을 통해 꽤 알려진 선생님입니다. 《학원 과외 필요 없는 6.3.1 학습법》, 《솔로몬 학습법》,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 《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18시간 몰입의 법칙》 외에도 여럿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3년에 《학원 과외 필요 없는 6.3.1 학습법》 이후에 매년 서너권의 책을 내고 있네요. 그간에 책을 낸 성향을 보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녀를 경영하라》는 책도 있고, 《솔로몬 학습법》도 재수생 때 “주님 안에서 나도 공부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기쁜 마음으로 공부한 결과 상위권 학생만이 갈 수 있다는 교육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본인의 경험담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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