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1
이민정 지음 / 김영사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부터 따뜻한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부모들이 읽었습니다. 1995년 12월 26일에 초판이 나왔고 제가 본 책이 2007년 9월 27일 발행한 72쇄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이 책을 읽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먼저 권합니다.

이 책은 토머스 고든의 《부모 역할 훈련(P.E.T.)》의 한국판 사례 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토머스 고든이 제시하는 '적극적 듣기', '나-메시지', '무패 방법'의 실제 사례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원서격인 《부모 역할 훈련》보다 훨씬 더 많이 읽힌 것은 《부모 역할 훈련》 번역본보다 먼저 출간된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책에 담긴 사례 하나하나가 감동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순지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들어오면서 볼멘 소리로 말한다.
    순지 엄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엉망이야. 창피해서 학교에도 못 가겠어.
    어머니 괜찮아, 산뜻해서 보기도 좋고 예쁜데.
    순지 예쁘긴 뭐가 예뻐. 엄만 요즘 머리 모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모르면서.
    어머니 모르긴 왜 몰라. 고등학생이 외모에만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그러면 다 예뻐져.
    순지 엄마는 공부 빼면 할 말이 없어. 공부! 공부! 공부! 정말 지겨워.(문을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간다.)
보통 엄마들이 이렇게 말하죠? 순지와 엄마가 비록 대화는 했지만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평소에 이렇게 말했던 순지 어머니가 대화법을 바꾸었습니다.


    순지 엄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 엉망이야. 창피해서 학교에도 못 가겠어.
    어머니 저런! 머리가 네 맘에 들지 않아서 속이 상했구나.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도 싫을 테고.
    순지 그래요, 엄마. 내일 학교에 어떻게 가지?
    어머니 그래, 내일 학교 갈 일이 걱정이구나.
    순지 (잠시 침묵 후, 조용히 웃으며) 가끔 길에서 초등학교 때 짝했던 남자애를 만나기도 하는데.
    어머니 저런! 그래서 신경이 더 쓰였구나. 그럼 어떡하지.
    순지 (머뭇거리다) 할 수 없지 뭐. 며칠 동안 아침 일찍 학교 가는 수밖에.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듣고 정리만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 즉 머리를 짧게 잘라 속이 상한 것을 아이의 문제로 남겨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마음만 헤아려줬을 뿐인데 아이는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냈고, 어머니는 딸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비록 이 책에서 이론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바로 토머스 고든이 말한 '적극적 듣기'의 생생한 사례입니다. 머리를 짧게 잘라 속이 상한 딸에게 "괜찮아, 산뜻해서 보기도 좋은데."라며 미리 '판단'해버리는 행위, "고등학생이 외모에만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며 '충고' 또는 '명령'하는 행위, 이 모든 것은 아이로 하여금 저항만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민준이는 반에서 부반장입니다. 어느날 민준이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민준 (학교에서 돌아오자 책가방을 집어 던지듯 내려놓고)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인가 봐!
    어머니 왜? 왜 그래? 선생님께 야단맞았어?
    민준 (심통스럽게) 그래, 숙제 안 가져가서 선생님께 맞았단 말이야!
    어머니 몇 대 맞았어? 너 혼자만? 반장은?
    민준 (퉁명스럽게,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 몰라.
    어머니 그러기에 엄마가 뭐랬어? 미리미리 챙기라고 했지. 어이구, 잘했다, 부반장이나 되는 게. 그러니까 잘 좀 챙겨.
    민준 알았어! (퉁탕거리며 얼른 방으로 들어간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화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늘상 해오던 대화 방식입니다. 그러나 민준이의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충고하고 명령했으며, 아이는 퉁탕거리며 방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평소같으면 위와 같이 말했을 민준이 어머니가 대화 훈련 방법을 익힌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준 (학교에서 돌아오자 책가방을 집어 던지듯 내려놓고)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인가 봐!
    어머니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나 보구나.
    민준 그래요. 숙제 가져 오지 않았다고 손바닥을 다섯 대나 맞았어요.
    어머니 저런! 창피하고 손바닥도 아팠겠네.
    민준 애들이 놀리잖아요, 부반장도 맞는다면서.
    어머니 그래! 너 정말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했겠다.
    민준 …… 부반장 체면이 말이 아녜요. 다음부터는 숙제 꼭 챙겨야지. …… 엄마, 나 배고파요.

평소에는 손을 씻으라고 해야만 마지못해 씻던 민준이가 그날은 스스로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으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고 합니다. 위의 대화는 '적극적 듣기'의 아주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아이가 재수 없다고 말할 때 엄마가 앵무새처럼 "그래 너 재수 없는 일이 있나보구나."라고 말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나 보구나"라고 말한 것, 손바닥을 다섯 대나 맞았다고 했을 때 "그래 너 손바닥 다섯 대나 맞았구나"라고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창피했겠다"라고 그 마음을 읽고 전해주는 것이 바로 '적극적 듣기'에 해당됩니다.

이 책에서는 '적극적 듣기'라는 표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토머스 고든이 말한 '적극적 듣기'의 실패 사례, 잘못된 적용 방법 등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책을 읽다보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제대로 된 대화법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토머스 고든의 《부모 역할 훈련》과 함께 읽는다면 분명 더 큰 성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나-메시지'의 사례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는 '나-메시지'라는 단어 대신 '나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사례'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 역할 교육을 받은 어느 학부모의 이야기입니다. 조금 길지만 모두 인용하겠습니다.

지난 중간고사 때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아이가 공기 놀이와 고무줄 놀이에 재미를 붙여 손에서 공깃돌 떨어지는 날이 없고 고무줄을 거실에까지 매어 놓고 뛰어놀았습니다. 시험이 가까웠지만 딸은 놀이에만 열중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너 그렇게 공부 안 하고 시험 볼거야?"하며 문제집을 여러 권 사다 놓고 시간을 정해 주면서 강제로 풀게 하고, 채점해서 틀리면 틀린 숫자만큼 손바닥을 때리면서 공부를 시켰을 겁니다. 저는 마음이 조급해졌고 애가 탔지만 기다렸습니다. 시험을 이틀 앞두고 아이는 문제집을 사겠다고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니, 너 지금까지 놀다가 이제야 문제집 사서 언제 공부하려고? 너, 그렇게 공부하고도 좋은 점수를 바라니?'하고 반사적으로 쏟아져 나오려는 말을 삼키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그래, 지금부터 시험 공부를 하고 싶다고?"

부드럽게 말하고 돈을 주었습니다. 아이는 하루 만에 문제집 한 권을 다 풀었습니다. 채점해 달라고 가져온 문제집을 살펴보니 예상보다 많이 틀렸습니다.
'그래, 자~알 한다. 공부는 이렇게 엉망이면서 하루 종일 공기나 고무줄 놀이만 해? 노는 시험이나 봐라, 공부는 꼴찌 하고.' 이렇게 아이에게 면박을 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많이 틀렸구나, 엄마는 걱정이네."

그러자 아이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펴 놓고 왜 틀렸나 확인해 가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시험 결과가 다른 때보다 좋았습니다. 하루 이틀 스스로 공부했다고 해서 금방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면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아이와 제가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큰 소득입니다. 또한 아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교육을 통해 반성하게 된 점은, 자녀는 부모가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여 부모의 욕심대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며 억지로 끌고 가려 했던 것입니다. 또 모든 문제의 원인과 잘못이 아이들에게만 있다고 판단해 온 제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낳았지만 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는 인격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부모 역할을 하는 데 근본적으로 도움이 됩니다.(p.99~p.100)

여기서 어머니는 무턱대고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많이 틀렸을 때, "자~알 한다."라고 빈정거리지 않았고, "이러니 평소에 열심히 공부해야지"라며 훈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많이 틀려서 엄마가 걱정이라고, 엄마의 마음을 표현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토머스 고든이 말하는 '나-메시지'입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전할 때 '엄마'의 마음을 전하면 될 뿐, 아이가 어떻게 해야한다고 명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따져보면 화가 나는 건 2차적인 감정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 실망이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1차이고, 그것이 화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1차적인 감정을 잘 정리하여 말하는 것 그것이 곧 '나-메시지'의 핵심입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대화로 인해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되는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대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대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적극적으로 듣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대화를 방해하는 것을 쳐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느낌만 진솔하게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때때로 자녀와의 대화방법을 배우는 부모들은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뭐 일일이 생각하고 정리해서 얘기해야 하는가, 내 자식인데, 예전처럼 한두 마디 소리 지르면 쉽게 끝날 텐데. (p.85)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비록 어렵더라도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가 모두 남의 일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예전에 나의 부모로부터 겪었던, 내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 나와 내 자녀가 겪을 일들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내 자녀가 바르게 크고, 스스로 독립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공부도 잘하길 바란다면, 이 책을 정독하면서 뼈저리게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저부터 지금 그리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무패 방법'의 사례도 있지만, 그건 다음 시간,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2》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는 모두 두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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