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 모리를 만나다 - 아람샘과 함께한 행복한 인문학 수업
인디고아이들 지음 / 궁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한 권 내는 것이 평생 소원인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바쁘디 바쁜 고등학생이 벌써 책을 냈습니다. 무서운 아이들입니다. 이름하여 '인디고 아이들'.

인디고 아이들이란, 원래 인지심리학자 낸시 앤 태프가 쓴 『색깔을 통한 삶의 이해』라는 책에 소개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미술에서 인디고는 남색, 쪽색 물감을 뜻합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드릴 책의 저자들인 인디고 아이들은 '인디고 서원'에서 함께 책을 읽고 사유하며 토론하고 실천하는 쪽빛 아이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인디고 서원(www.indigoground.net)은 부산 수영구 남천동 학원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인문학 서점입니다. 중고생이 주된 독자인데 거기에는 참고서나 문제집 따위는 없습니다. 철학·문학·예술·교육·생태환경 등 인문학 서적만 빽빽히 꽂혀있을 뿐. 2004년 문을 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전문 서점' 인디고 서원의 대표는 허아람 선생님. 인디고 아이들은 인디고 서원에서 아람샘(아람 선생님)과 행복한 책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문을 연 지 겨우 1년여 만에 이 서점은 유명해졌습니다. 이 서점의 대표적인 독서토론 프로그램인 '주제와 변주' 덕분이었습니다. 장영희, 최재천, 진중권, 도정일, 박홍규, 한홍구 등 내로라하는 저술가들이 청소년들과 토론을 벌이기 위해 이 작은 서점을 찾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디고 서원의 대표 아람샘의 의지의 결과입니다. 아람샘은 인디고 서원을 열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올해로 벌써 18년째 독서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인디고 서원의 '주제와 변주' 내용을 묶어 『주제와 변주』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두 권씩이나.

참, 오늘의 주인공은 아람샘이 아니라 인디고 아이들입니다. 아람샘과 함께한 인문학 수업 내용을 인디고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써서 책을 냈습니다. 그것도 세 권씩이나.
열일곱살 고1 학생들은 『인디고 서원에서 행복한 책읽기』를, 열여덟 고2 학생들은 『토토, 모리를 만나다』를, 열아홉 고3 입시생들은 『창조적 열정을 지닌 청소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를 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노력과 용기, 열정, 책임감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에 세 권 세트로 샀는데, 그 중 고2 학생들이 매주 일요일 아람샘과 함께한 수업을 책으로 엮은 『토토, 모리를 만나다』를 먼저 읽었습니다. 출근길 버스에서 첫장을 펼쳤는데, 감동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엮어 냈다니, 비록 내용은 좀 떨어지지만 그 뜻이 갸륵하여 읽어보자고 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의 속은 깊었고 글솜씨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읽는 내내 어른인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토토는 순수한 어린이, 모리는 좋은 어른의 대명사입니다. 그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토토라고 불리기엔 너무 늙었고 그 좋은 어른도 모리라고 불리기엔 너무나도 젊다. 게다가 한 가지 고백하자면, 사실 우리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생들이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새벽까지 무언가에 매달리는, 문제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우리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의 순수를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토토도 모리도 아닌 그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제발.
아직 우리 마음속에서 꺼질 듯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는 그것을 순수라고 믿어준다면, 아직 우리의 눈에서 메마를 듯 희미하게 반짝이는 그것을 눈물이라고 믿어준다면, 그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는, 그 눈물이 마르기 전까지는 우리를 토토라고 불러주길 부탁한다.
그리고 부탁할 것은 이것뿐이다. 우리는 진짜 모리를 만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리는 다름 아닌 아람샘입니다. 토토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은 고2 학생들과 모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아람샘이 만나 나눈 이야기를 이 땅의 청소년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싶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 책에는 그들이 먼저 고민했던 내용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마치 유리로 된 회의실 바깥에서 지켜보듯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다만 그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그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요.

데미안의 입을 빌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는 문구로 편지에 써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새가 알을 깨는 순간, 새는 그 순간부터 타락하게 된다. 알 속에서 상상했던 아름다운 세상과는 다른 위험하고 타락한 세상을 인지하게 되고 실망하며,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비열함, 거짓말, 배신 등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새는 그가 가진 순수함을 잃게 된다.
나는 세상에 나가서 비열함, 거짓말, 배신으로 물든 새가 되기보단, 차라리 알 속에서 안주하며 자기의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 새가 되고 싶다. 세상에 익숙해지는 것이 과연 성숙일까? 아니면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 끝까지 새다운 새로 사는 것이 성숙일까? (p.57)

그 순수함, 끝까지 지켜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생각만큼 세상이 비열하고 거짓말과 배신이 난무하는 그런 곳이 아님을 또한 알아주길 바랍니다. 결국은 알을 깨고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알 껍질이 지켜주는 순수함은 진정한 의미의 순수함이 아닐 테니까요. 알을 깨고 나와 그 순수함을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흩어진 개인이 뭉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그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거죠. 조병준 선생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