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 천 가지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
조지 레너드 지음, 강유원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1860~1939)는 늙어서 죽음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죽으면 흰 띠를 둘러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흰 띠는 초심자의 상징입니다. 세계 최고의 유도 고수가 죽음에 임박하여 보인 이러한 겸손은, 겸손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전환의 순간에 우리는 누구나 흰 띠입니다. 초심자입니다.
반면 어린아이들은 그 자체로 초심자입니다. 아기는 단어 하나를 말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합니다. 엄마와 아빠의 말을 듣고 배우려는 아기는 행동심리학자 스키너가 말한 이른바 '자발적인 학습자'입니다.

아기와 가노 지고로의 공통점은 순진함입니다. 아기의 순진함을 원래의 순진함, 즉 제1의 순진함이라 한다면 가노 지고로는 제2의 순진함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잠재력이 비상하게 뛰어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린이처럼 순진한 행동 특성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제2의 순진함'이라고 칭했습니다.

조지 레오나르드가 쓰고 철학자 강유원이 옮긴 『달인』은 좀 이상한 책입니다. 분류가 모호합니다. '자기계발'서라고는 하는데 책 본문 어딜 봐도 '성공'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성공이 좋은 것인지 언급 없이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하라고만 말합니다. 산에 오를 때 정상이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말고 시선을 단지 길에 고정시키라고 합니다. 결과에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연습만 하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자기계발서냐고 항변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옮긴이가 철학자라는 것, 요령이 아닌 겸손이야말로 자기계발의 출발이라는 사실, 즉 처세가 아닌 자기 수행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입니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옮긴이가 고민 끝에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 서문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달인'에 대한 책인데, '달인'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의는 없습니다. 그저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달인, 마스터,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책에서 여러 이야기를 통해 달인이 사는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인이 되기 위한 몇 가지 방법과 팁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소개할 수 없으니 달인이 사는 모습과 일명 '호사가'가 사는 모습만 비교해 보겠습니다.

달인은 이렇게 삽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약간의 상승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이내 곧 쇠퇴하여 정체상태를 맞습니다. 정체상태는 한동안 지속됩니다. 그러다가 또 상승의 시기가 옵니다. 그러나 실력이 상승하면 거의 곧바로 쇠퇴하고 정체상태가 되어 그대로 지속됩니다. 이런 주기가 계속 반복됩니다.

달인이 되는 과정은 부지런히 연습하고 심지어는 연습 그 자체를 위해 연습해야 합니다. 정체상태에서 좌절하지 말고, 비약단계를 즐기듯 그 상태를 즐겨야 합니다. 달인이 되는 과정은 달인이 사는 모습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달인에게는 최종 종착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정 그 자체가 달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호사가의 곡선은 이러합니다.



호사가 타입은 새로운 운동이나 일, 대인관계를 시작할 때 엄청난 열정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 번쩍번쩍 빛나는 장비를 갖추고 요란하게 출발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발전이 있으면 아주 즐거워합니다. 가족, 친구, 심지어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까지 새로 익힌 자세를 보여주며, 다음 레슨 때까지 기다리는 것조차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열정적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나 정체시기는 있기 마련. 정체상태가 되면 바로 열정이 시들어버립니다. 레슨도 빼먹고, 그 행동에 대해 합리화합니다. 그 스포츠는 나에게 적당하지 않다고. 지겹다거나 위험하다거나 등등. 그리고 곧 다른 스포츠를 시작합니다.

업무에서의 호사가 타입은 새로운 일, 사무실, 동료들을 좋아합니다. 매번 기회를 잡으려 하고, 미리 예상한 수입에 침을 흘립니다. 일이 발전하는 신호가 오면 기뻐하고 그때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곧 정체상태가 옵니다. 또 이 일은 그에게 맞지 않습니다. 또다시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이러니 호사가는 이력서에 정말 쓸 게 많습니다.

연애에서의 호사가는 허니문 단계에서 아주 특출난 재능을 보입니다. 유혹에 몰두하고 인생사를 떠들어대며 현란한 사랑 기교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열정이 식어갈 무렵이면 한눈을 팔기 시작합니다.
호사가가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다른 침대로 뛰어들어가 모든 걸 다시 시작한다는 건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호사가 타입은 스스로 모험을 즐기며 새로움에 대한 감식안을 가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들은 심리학자 칼 융이 말했던 타입, 즉 '영원한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파트너가 바뀌어도 늘 똑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는 이 외에도 강박증 타입, 해커 타입, 끝없는 절정을 추구하는 미국식 삶의 모습도 아주 이해하기 쉬운 곡선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속가능한 성공과 삶의 조건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슬럼프를 사랑하는 것이며, 규칙적인 수련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며, 스포츠 신문에 곧잘 등장하는 환희와 고통의 순간이 아닌 성취 이후에 또다시 우리를 기다리는 새로운 정체상태를 받아들이는 고요한 모습입니다.

달인은 완벽함과 관련된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정에 관한 것이며, 하나의 여행입니다. 달인은 날마다 그 길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며, 자신이 살아있는 한 기꺼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초심자의 마음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가노 지고로처럼 말입니다.

삶이 지겨운가요? 현재의 일이 지겨운가요?
지겨움의 본질은 강박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만족이란 마음속에 새겨진 반복 속에 존재하며, 익숙한 주제를 미묘하게 변조하면서 끝없는 풍부함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오늘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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