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두 주만에 독서노트를 씁니다. 심신이 피로하여 잠깐 쉰다고는 했는데, 독서노트 쓰는 일만 쉬었을 뿐 오히려 더 고단한 날들이었습니다.
일이 고단하다고 하여 마음이 괴로웠던 건 아닙니다. 몸은 피로했지만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고, 일은 고단했지만 전진하는 조직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어 보입니다. 짬짬이 책을 읽고 정리하는 일만 쉴 뿐입니다. 쉬다 보니 또 그것에 익숙해집니다. 하루 한 두 시간 더 자봐야 뭘하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만 허전해질 뿐입니다. 숨어있는 1인치를 찾듯이 비어있는 1분의 시간이라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쉬면서 좋은 책 하나 읽었습니다. 산림환경학 박사인 차윤정의 <숲의 생활사>라는 책입니다. 분류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언뜻 보면 자연과학 서적인 듯한데, 읽어보니 문학보다 더 감동적입니다. 훌륭한 작가가 쓴 노년의 수필처럼 인생의 지혜가 녹아있는가 하면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잘 쓰여진 산문처럼 꽉 차있습니다.

한 마디로 저자는 글을 참 잘씁니다. 문체는 김훈을 닮은 듯합니다. 문장은 짧고 여운은 강합니다. 인터넷 서평을 보니, 어떤 이는 지나친 수사라고 말합니다. 기교라면 기교이고 수사라면 수사지만, 제가 보기에는 숲의 생활사를 통해 본 삶의 철학입니다. 딱딱하지만,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책 내용을 표현하자면 <숲의 생활사에 대한 철학적 이해>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인간도 자연입니다. 숲의 생활사를 통해 인간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억지 수사인지  비약인지 아닌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 판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을 직접 옮깁니다. (책 순서와는 상관 없이, 지금이 가을이니 가을 얘기부터 옮깁니다.)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라는 자연의 관용이다.
    숲에서 여름이 사라지는 것은 썰물을 빠져나가는 듯 휑하고 빠르다. 삶의 치열함이 물러간 숲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가을은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조정기간이다. 나무는 잎을 정리하고 짐승들은 먹이를 준비해야 한다. 헐거워진 숲을 통과한 빛은 짧은 가을 동안 새로운 희망이 되기도 한다. 여름 끝에 가을이 없었다면 자연은 훨씬 혹독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가을 바람은 나뭇잎의 아쉬움을 존중하며 당분간 얌전하게 군다.(p.140)

    낙엽은 나무의 살아가는 전략의 하나이다. 나뭇잎은 봄부터 여름까지 부지런히 생산 활동을 하지만 가을을 지나 겨울을 나는 동안은 주로 소비활동만 하게 된다. 나무로서는 나뭇잎을 그대로 두는 것은 하릴없이 재산을 축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들은 유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나뭇잎을 털어낸다. 하지만 그대로 버릴 수는 없다. 나무들은 낙엽을 떨구기에 앞서 투자한 양분들을 회수한다. (p.171)

    한 그루의 나무에 달리는 숱한 열매들이 모두 다음 나무로 자랄 수는 없다. 나무는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열에 아홉은 산짐승에게 먹힐 것이고 그동안 하나는 싹으로 자랄 시간을 갖는다. 싹으로 자라난 것 중 열에 아홈은 벌레에게 먹힐 것이고 그동안 하나는 나무로 자랄 것이다. 나무 열에 아홉은 다시 나머지 하나의 자리를 만들어주면서 희생할 것이다. (...)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이 여분의 희생이 어쨌거나 숲을 부양하는 근원이다. (p.179)

    생명은 제 몸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몸체를 줄이지 못한 생물들은 멸종했다. 식물은 몸체가 줄어들었으나 몸을 줄일 수 없었던 공룡은 멸종했다. 고사리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라. 나무보다 무성하고 영화로웠던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고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습하고 어두운 환경에 적응해왔다. 고사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인간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공룡처럼 거대해지고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p.129~130)

    복잡한 숲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빛의 부족이다. 깊은 숲에서 하늘은 나무숲이다. 숲의 층이 겹겹으로 포개지면 숲은 점점 어두워진다. 가장 무성해진 숲의 덮개는 하늘과 땅을 무겁게 가로질러 빛을 차단한다. 가장 빛이 풍부한 계절이라고 하지만 그 빛은 몇몇 나무들이 독점하고 있다. (...) 그래서 여름은 빛에 대한 불평등이 가장 심화되는 계절이다. (p.90)

    꽃의 발달은 이 지구 생물계에서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화려한 꽃은 처음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화려한 꽃을 피움으로써 더욱 확실하게 씨앗을 잉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꽃을 피우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나무는 소비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꽃잎이 없는 꽃을 피우는 나무들에 비해 대부분 수명이 짧다. 꽃을 피우기 위한 대가는 씨앗을 만들고 자손을 퍼뜨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대신 숲의 지배자 자리를 영원히 넘보지 말 것이며 긴 수명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p.45)

    나비는 그야말로 화려한 외형적 변신으로 인해 과거를 용서받는다. 꽃들에게 나비는 거부할 수 없는 방문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 나비 애벌레는 무서운 속도로 식물의 잎을 해치우는 존재들이었다. (p.60)

    숲의 생명들은 철저하게 자연의 지배를 받고 있다. 빛이 없는 밤은 철저한 휴식의 시간이다. 밤의 휴식이 없이는 한낮의 치열함을 견딜 수 없다. 생명들은 잠들고 시야도 꺼져버린다. 밤을 뜬눈으로 지새는 올빼미는 자연의 여백이다. 밤을 어슬렁거리는 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밤은 극단적인 반자연이다. (p.131)

    나무의 눈부신 성장은 뿌리의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한다. 포플러나무의 이런 습성은 불량한 토양을 개선하는 데 이용된다.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는 난지도에서, 붉은 물이 흐르는 폐탄광에서, 듣기에도 마음이 무거운 중금속 오염지에서 포플러나무는 씩씩하게 자란다. (...) 가지를 잘라도 뿌리를 잘라도 잎을 잘라도 본래의 나무로 자라는 기적 같은 능력은 포플러나무의 또 다른 서글서글함이다. (p.138)
읽기 쉬운 글이라고해서 쉽게 쓰여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글쓴이에게는 매우 혹독한 작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가 혹독할수록 읽는 이는 즐겁습니다. 게다가 저자가 정성껏 찍은 사진들이 눈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듭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