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이화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TV는 지금 가히 사극 열풍입니다. <주몽>과 <연개소문>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고, 지금도 <대조영>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얼마 전 <왕과 나>(세조)가 시작됐고, 곧이어 <이산>(정조), <태왕사신기>(광개토대왕), <홍길동>도 방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 첫 북한 합작 드라마라는 <사육신>도 방송중입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 사극은 비록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역사 대중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단 몇 줄의 역사적 기록에서 수십회 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비록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부터의 지나친 이탈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을지라도 역사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해야할 것입니다.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진부하지만,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반복될 질문일 것입니다.
평생을 역사의 대중화에 몸바쳐 온, 전 역사문제연구소 이이화 소장의 최근작 『역사』의 머리말 첫마디도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이 질문은 간단하지만 그 답은 단순명쾌할 수 없습니다. 이이화 선생도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고대사를 왜곡하는 저의와 일본이 우리의 근대사를 부정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면 알 것이다라고만 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왜 알아야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라는 구태의연한 대답이 결코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500쪽이 조금 넘습니다. 단숨에 읽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긴 하지만, 인류의 기원에서 1980년대 6월민주항쟁까지의 기나긴 역사를 단 한 권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이화 선생 특유의 읽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큰 흐름, 즉 '맥'을 짚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히 최적의 역사서라 할 만합니다.

비교적 사실의 전달에 충실하고자하여 그 표현이 밋밋한 일반 역사서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선생의 서술 방식이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892년 보은에서 집회를 가졌다. 남루한 옷차림의 교도들 수만 명이 보은 장내리에 모여들었다. 비록 행색은 다들 초라했으나 눈에는 형형한 빛을 띠고 걸음걸이는 힘찼다. 괴나리봇짐에는 며칠 먹을 양식이 들어 있었고 허리에는 짚신이 몇 결레 매달려 있었다. 장내리의 산과 들에는 '척왜양창의(일본과 서양세력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다)'가 씌어진 오색 깃발이 나부끼고 외국 상품을 거부하자는 외침도 들렸다. 좁은 골짜기에 깔려 있는 흰옷은 마치 함박눈이 내린 듯하였다. 그리고 떡·엿·국수장수들이 북적댔다. (p.348)

마치 소설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구절은 동학농민전쟁 발발 직전의 보은 집회를 묘사한 장면입니다. 역사적 사실의 나열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심지어는 역사서에서 쓰면 안 될 것 같은 표현도 종종 보입니다. 개화기 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갈등을 설명하는 대목 중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1899년 1월, 줏대라고는 한푼어치도 없는 고종 황제가 또다시 수구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만민공동회의 지도자들을 체포하게 했다. (p.372)

때로는 늘 쓰던 역사적 용어의 잘못됨을 지적하고 올바른 용어의 사용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따위입니다. 엄연히 국가 간의 전쟁이니 '조일전쟁', '조청전쟁'이라 불러야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듣고 보니 그러합니다. 무신의 난, 홍경래의 난과 같은 나라 안의 소요 사태와 국가 간의 전쟁을 똑같이 '난'이라 표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 존속 기간의 길고 짧음과는 무관하게 선생이 생각하는 역사적 중요성에 따라 분량이 들쭉날쭉한 것도 특징입니다. 흔히 통일신라라 부르는 '후기신라'의 문화 이야기는 고작 7쪽 분량인데 반해, 잊혀진 과거 '발해'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서는 장장 39쪽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이화 선생의 『역사』는 신선하고, 쉽고, 재미있습니다. 너무 짧은 역사서에서 빈곤함을 느꼈거나, 너무 방대한 역사서의 분량에 질려 감히 읽지 못했던 분들에게 최적입니다(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는 22권입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우리 역사의 큰 흐름을 잡길 원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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