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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神話다 - 기독교 탄생의 역사를 새로 쓰는 충격보고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여 년 동안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의심없이' 믿을 것을 강요당했고,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강요에 의해 훈련된 마음으로 억누르기 급급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진리를 찾고 자유를 얻으려는 회의가 억지로 누른다고 해서 그쳐진 것은 아니었고, 결국 지금의 나는 오만한 독선적인 神을 버렸다. 그리고 오강남 교수, 버틀런드 러셀, 니체, 라즈니쉬 등 여러 서적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와중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고대의 이교 신앙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섬기던 신인(神人)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로마 시대에는 바쿠스나 미트라스 등으로 불리우며 여러 지역에서 폭넓게 퍼져서 믿어져 온 미스테리아 신앙의 신인은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믿어졌다. 이 신인에 대한 신앙 상징 체계(동정녀 탄생, 사도들, 성찬 의식, 수난과 죽음, 부활 등)는 놀랍게도 비슷할 정도로 예수의 그것과 일치하며,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 아니라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비유적으로 영적 가르침을 주는 존재로 숭배되어 왔다는 것이다. 폭넓은 지역에서 지지되었던 미스테리아 신앙이 유대인들에게 전해졌고, 예수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초기에 이 미스테리아 신앙을 받아들여 예수 신인을 섬긴 기독교인들은 성서와 예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비유적으로 영적인 깨달음과 성장을 돕는 것으로 믿은 영지주의자였다고 한다.
예수의 활동기로 알려져 있는 시기보다 3~4세기는 전에 이미 너무나도 예수와 비슷한 미스테리아 신앙의 신인의 행적들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은 골머리를 앓았고, 악마가 신의 아들의 성스러운 행적을 '미리' 예견해서 본뜬 것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저자들은 AD 4세기의 기독교 문자주의자(영지주의와는 달리 예수의 행적과 기적들 등 성서에 기록된 사실들을 문자 그대로 믿는 주의이다)들이 의도적으로 이 이교신앙의 흔적들을 말살하고 성서를 왜곡하여 현재의 기독교를 세웠다고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주장한다.
당연히 이 책은 발간 당시부터 뜨거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인류의 위대한 성인 중 한 사람이며,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 신앙의 초점인 예수 그리스도가 신화적 인물이었다고 하며, 신약 성경의 대표적인 저자이자 초기 기독교의 전파에 핵심적인 인물인 바울이 영지주의자였다고 '발칙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우리 나라 번역 발간 당시에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기독교인들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기독교계의 반발과 출판사에 대한 압력으로 절판되어 현재 구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둠의(?) 경로로 이 책이 본인의 손에 쥐어졌으며, 현재 내 방 책장 한 쪽 구석에 가족들 몰래 얌전하게 꽂혀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도그마를 건드린 것이니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절판까지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표현과 출판의 자유의 보장은 민주주의 법치 사회에 있어 필수적인 사항이다. 하지만 집단의 압력에 의해 이 책이 절판된 것을 보고 매우 씁쓸했다.
아무튼, 내게 중요한 것은 예수가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었다. 문화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물론 특출난 누군가가 간간이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우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뒷 세대로 전달해주며 덧붙이고 살을 바르기도 하면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구전 문학의 예를 들어도 그러하다. 우리 나라에 전해지는『콩쥐팥쥐전』이 여러 판본으로 존재하고, 세계 각국에 비슷한 모티브의 설화(대표적으로『신데렐라』설화가 있다)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이렇게 되면 말할 수 없는 독단으로 치닫게 된다...) 종교적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믿으며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다.
'의심없이' 믿는 것이란 매우 위험하다... 의심없이 맹종하는 것이기에 훈련된 차단적 사고방식에 의해 창조적인 자유로운 사고가 마비되는 것이다. 문자주의적 기독교(성서를 의심없이 문자 그대로 믿는 주의이다)가 지배한 지난 중세기의 암흑시대를 보면 그러하지 않은가...
이 책에서 또한 흥미있었던 사실은 신의 어머니에 관한 주제이다. 지상의 생명있는 것들을 잉태하며 품어주고 감싸는 신의 여성성은 이교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인간의 모성에의 동경과 향수라는 원초적 욕망 때문일까, 이것이 기독교에서도 '성모 마리아'로 나타나는 것이다(물론 기독교 중 개신교에서는 마리아에 신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소설『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도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신의 여성성에 관심을 가져 이것이 소설의 모티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11분』의 서두에 부친 이시스 여신에 대한 찬가를 올리며 글을 맺는다.
나는 최초의 여자이니 마지막 여자이니
나는 경배받는 여자이자 멸시받는 여자이니
나는 창녀이자 성녀이니
나는 아내이자 동정녀이니
나는 어머니이자 딸이니
나는 내 어머니의 팔이니
나는 불임이자 다산이니
나는 유부녀이자 독신녀이니
나는 빛 가운데 분만하는 여자이자 결코 출산해본 적이 없는 여자이니
나는 출산의 고통을 위로하는 여자이니
나는 아내이자 남편이니
그리고 나를 창조한 것이 내 남자라
나는 내 아버지의 어머니이니
나는 내 남편의 누이이니
그리고 그는 버려진 내 자식이니
언제나 날 존중하라
나는 추문을 일으키는 여자이고 더없이 멋진 여자이니
ㅡ〈이시스 찬가〉, 기원전 3~4세기경.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