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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읽는 내내 시종일관 웃음보를 터뜨려 주위의 사람들이 (주로 지하철에서 읽었기에) 미친 사람 취급을 해서 전철에서 승무원에 의해 강제로 내려져야만 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튼 계속 피식피식 웃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 것은 사실이다(밑의 두 분 처럼 이 소설『69』에 자주 나오는 문장을 패러디해봤다. 하하하)

사실 나는 류의 소설은 완독한 것이『코인로커베이비즈』와『69』이 두 편밖에 없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중학교 때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심적 쇼크가 커서 반도 못 읽고 덮어야 했지만).  몇 달 전 시도했던『코인로커베이비즈』는 매우 고통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남는다. 소설을 지배하는 등장인물들의 파괴적 행동들과, 비현실적으로 뒤틀린 배경과 인물·사건의 묘사들이 끈적끈적하게 손 끝에 묻어나 완독하기 정말로 힘겨웠다(거부감이 들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에 예전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 후 쉽사리 어떤 책에 손을 대야할 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69』는 매우 유쾌한 내용이라는 평을 심심찮게 듣게 되어 읽고 싶었는데, 오 마이 갓…, 너무나도 적나라한 소설의 제목. 류는 SM을 즐겨 다루기로 유명하지 않았던가. 저걸 어떻게 들고 다니면서 읽나 하고 고민하던 차에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것이었다. 제목이 덜 두드러지는 디자인으로^^; ‘어디 한번…’하고 구입해서 읽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 소설에는 섹스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1969년을 살아간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역시, 제목부터 독자들에게 깜찍한(?) 장난을 친 류의 장난기가 느껴져서 푸훗, 하고 웃었다.

정작 내용 서평은 없는 서두가 쓸데없이 길었다. 이 소설은 제도권 학교의 부조리함에 대해 준엄하고 비장하게 비판하고 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_-; 다만 ‘즐겁게’ 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일상에 대한 발랄한 저항(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기도 쑥스럽다)을 말 그대로 유쾌하게 보여준다. 섹스와 여자에 대한 관심과 상상으로 가득찼으면서도 정작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적당한 말도 찾지 못하고 쩔쩔매며, 무용담을 허풍으로 늘어놓지만 실제로는 겁에 질려 몸을 사리기도 하는 고등학생 소년들의 세계를 너무나도 신나게 그리고 있다. 작가 류 자신의 캐릭터를 보는 듯해서 너무나도 즐겁게 읽었다(실제로 류가 경험한 사건을 그린 소설이라고 한다). 모험심이 강한 고등학생 특유의 짓궂음과 허풍 속에서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언뜻언뜻 보인다.

[초등학교 때 감기에 걸려 사흘간 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친구들과 교실이 그리웠다. 119일 동안이나 결석을 했음에도 이 교실에 대해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은, 이곳이 선별과 경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나 소, 돼지도 어릴 때는 그냥 놀면서 지낸다. 북경요리의 돼지새끼 통구이용 돼지새끼만 빼고.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눠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p.117.) ]

나는 학창시절을 너무나도 재미없게 보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풋풋한 젊음과 혈기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합리한, 부조리한 상황과 인물들에 대해 복수하는 방법은 정말로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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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8-0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IshaGreen 2004-08-0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소설을 너무너무 좋아한답니다^-^

urblue 2004-08-0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

IshaGreen 2004-08-1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감사합니다^^ 이런 비문투성이의 글이 이주의 마이리뷰에 당선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뜻밖이네요...^^; 아무튼 너무너무 기쁩니다^^

久遠 2004-08-1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립니다 ^^
저도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많이 읽어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코믹한 작품입니다. :)
무라카미류의 소설은 두무더기(?)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섹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고(한없이 투명한 블루, 피지의 난쟁이 같은...)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작품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섹스얘기가 없는 작품들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트레인지 데이즈]를 제일 좋아하고 [교코]와 [69]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코인로커 베이비즈]도 앞의 작품들처럼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 강렬함을 아주 좋아합니다. 시간 나시면 이 작품들도 한번 읽어보세요 :)

IshaGreen 2004-08-1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구원님 반갑습니다^-^
『스트레인지 데이즈』는 도어즈 노래의 제목이더군요. 제가 도어즈의 음악을 아주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꼭 읽어봐야겠군요.
『코인로커베이비즈』는 정말 힘겹게 읽었어요. 조만간 다시 읽어볼 생각이랍니다.
아무튼 제 서재를 방문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소굼 2004-08-1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두권밖에 못읽어봤는데 반갑네요^^ 이주의 리뷰축하드려요~:)

IshaGreen 2004-08-1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1t님 감사합니다^^ 닉네임 한번 멋지시네요 저두 반갑습니다!^-^
 
예수는 神話다 - 기독교 탄생의 역사를 새로 쓰는 충격보고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여 년 동안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의심없이' 믿을 것을 강요당했고,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강요에 의해 훈련된 마음으로 억누르기 급급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진리를 찾고 자유를 얻으려는 회의가 억지로 누른다고 해서 그쳐진 것은 아니었고, 결국 지금의 나는 오만한 독선적인 神을 버렸다. 그리고 오강남 교수, 버틀런드 러셀, 니체, 라즈니쉬 등 여러 서적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와중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고대의 이교 신앙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섬기던 신인(神人)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로마 시대에는 바쿠스나 미트라스 등으로 불리우며 여러 지역에서 폭넓게 퍼져서 믿어져 온 미스테리아 신앙의 신인은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믿어졌다. 이 신인에 대한 신앙 상징 체계(동정녀 탄생, 사도들, 성찬 의식, 수난과 죽음, 부활 등)는 놀랍게도 비슷할 정도로 예수의 그것과 일치하며,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 아니라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비유적으로 영적 가르침을 주는 존재로 숭배되어 왔다는 것이다. 폭넓은 지역에서 지지되었던 미스테리아 신앙이 유대인들에게 전해졌고, 예수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초기에 이 미스테리아 신앙을 받아들여 예수 신인을 섬긴 기독교인들은 성서와 예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비유적으로 영적인 깨달음과 성장을 돕는 것으로 믿은 영지주의자였다고 한다.

 예수의 활동기로 알려져 있는 시기보다 3~4세기는 전에 이미 너무나도 예수와 비슷한 미스테리아 신앙의 신인의 행적들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은 골머리를 앓았고, 악마가 신의 아들의 성스러운 행적을 '미리' 예견해서 본뜬 것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저자들은 AD 4세기의 기독교 문자주의자(영지주의와는 달리 예수의 행적과 기적들 등 성서에 기록된 사실들을 문자 그대로 믿는 주의이다)들이 의도적으로 이 이교신앙의 흔적들을 말살하고 성서를 왜곡하여 현재의 기독교를 세웠다고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주장한다.

 당연히 이 책은 발간 당시부터 뜨거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인류의 위대한 성인 중 한 사람이며,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 신앙의 초점인 예수 그리스도가 신화적 인물이었다고 하며, 신약 성경의 대표적인 저자이자 초기 기독교의 전파에 핵심적인 인물인 바울이 영지주의자였다고 '발칙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우리 나라 번역 발간 당시에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기독교인들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기독교계의 반발과 출판사에 대한 압력으로 절판되어 현재 구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둠의(?) 경로로 이 책이 본인의 손에 쥐어졌으며, 현재 내 방 책장 한 쪽 구석에 가족들 몰래 얌전하게 꽂혀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도그마를 건드린 것이니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절판까지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표현과 출판의 자유의 보장은 민주주의 법치 사회에 있어 필수적인 사항이다. 하지만 집단의 압력에 의해 이 책이 절판된 것을 보고 매우 씁쓸했다.

 아무튼, 내게 중요한 것은 예수가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었다. 문화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물론 특출난 누군가가 간간이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우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뒷 세대로 전달해주며 덧붙이고 살을 바르기도 하면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구전 문학의 예를 들어도 그러하다. 우리 나라에 전해지는『콩쥐팥쥐전』이 여러 판본으로 존재하고, 세계 각국에 비슷한 모티브의 설화(대표적으로『신데렐라』설화가 있다)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이렇게 되면 말할 수 없는 독단으로 치닫게 된다...) 종교적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믿으며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다.

 '의심없이' 믿는 것이란 매우 위험하다... 의심없이 맹종하는 것이기에 훈련된 차단적 사고방식에 의해 창조적인 자유로운 사고가 마비되는 것이다. 문자주의적 기독교(성서를 의심없이 문자 그대로 믿는 주의이다)가 지배한 지난 중세기의 암흑시대를 보면 그러하지 않은가...

 이 책에서 또한 흥미있었던 사실은 신의 어머니에 관한 주제이다. 지상의 생명있는 것들을 잉태하며 품어주고 감싸는 신의 여성성은 이교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인간의 모성에의 동경과 향수라는 원초적 욕망 때문일까, 이것이 기독교에서도 '성모 마리아'로 나타나는 것이다(물론 기독교 중 개신교에서는 마리아에 신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소설『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도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신의 여성성에 관심을 가져 이것이 소설의 모티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11분』의 서두에 부친 이시스 여신에 대한 찬가를 올리며 글을 맺는다.

 

나는 최초의 여자이니 마지막 여자이니

나는 경배받는 여자이자 멸시받는 여자이니

나는 창녀이자 성녀이니

나는 아내이자 동정녀이니

나는 어머니이자 딸이니

나는 내 어머니의 팔이니

나는 불임이자 다산이니

나는 유부녀이자 독신녀이니

나는 빛 가운데 분만하는 여자이자 결코 출산해본 적이 없는 여자이니

나는 출산의 고통을 위로하는 여자이니

나는 아내이자 남편이니

그리고 나를 창조한 것이 내 남자라

나는 내 아버지의 어머니이니

나는 내 남편의 누이이니

그리고 그는 버려진 내 자식이니

언제나 날 존중하라

나는 추문을 일으키는 여자이고 더없이 멋진 여자이니

ㅡ〈이시스 찬가〉, 기원전 3~4세기경.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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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1-1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인간 위에 올라서는 종교는 개인적으로 두루마기 휴지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IshaGreen 2005-01-1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 공감입니다 발톱의 때만도 못하다고 생각해요~ㅋㅋㅋ

samna57 2006-02-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원한 주제--에 관해 쓴 서평에 깊이 공감합니다. 한가지 부탁 말씀. 제 조카가 여기 주립대학에 다니는데 비교 종교학 이란 시간에 이 책을 읽어야 한댜는데 한국어판을 꼭 구하고 싶다는군요. 다 보신 책이라면 제게 좀 양도해 주실 의향이 있으신지. 지불은 송료 포함 크레딧 카드로 해 드리고 원하신다면 Three Rivers Press 에서 발행한 원본을 보내 드릴 수 있읍니다. 미리 감사드리고 연락은 samna57@hotmail.com 부탁드리겠읍니다.

IshaGreen 2006-02-2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책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책을 읽을 때 잘 빌려보지 않는 편이고 맘에 드는 책들은 웬만하면 소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양도해드리긴 어려울 것 같구요, 어느 사이트에선가 구한 한글파일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이 한국어판을 모두 한글파일로 옮겨놓는 수고를 하신 분이 있더군요. 이 한글파일을 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도못해 드리는 점 죄송합니다^^;;

samna57 2006-06-13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르바시님. 늦은 감사의 말씀을 양해해 주십시오. 한글 파일을 구해 컴퓨터에 넣고 보내주신 메일로 삼백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권 만들었읍니다. 한장 한장 아껴 가면서 잘 읽고 있읍니다. 진리에 대해서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적지않은 위안이 아닐 수 없지요. 아울러 이런 노작의 가치를 알아 주는 귀하같은 독자가 있다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귀하의 셔펑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그리고 보내주신 한글 파일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008-12-27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콜릿 - 신들의 열매
소피 도브잔스키 코 외 지음, 서성철 옮김 / 지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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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하필 여자가 사탕을 받고 남자는 초콜릿을 받아야 하느냐는 불평을 매년 화이트 데이마다ㅡ그렇다고 내가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하는〈-데이〉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ㅡ빼먹지 않고 늘어놓는 나는 초콜릿 광이다. 당연히, 이 책의 제목을 서점에서 보는 순간 나는 선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당장에 빼서 사버려, 진작 필요했던 책은 구입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한 마디로 이 책은 어디에 살건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라는 책 뒷 표지에 씌어 있던 말 그대로였던 셈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식품 등이 우리가 용이하게 접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어떠한 처절한 과정들이 있었는지 잘 모르고 그것들의 이로움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식탁에서 단연 구심점인 음식이라고 할 만한 밥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 민족은 몇 백, 혹은 몇 천 년 동안 밥을 먹어왔고 지금도 밥을 먹지 않으면〈한 끼〉식사를 했다고 말하기 껄끄러울 정도로 밥은 중요한 음식이지만, 도시의 한 어린이가「쌀은 쌀나무에서 자라는 것 아닌가요?」라고 부모님에게 물어 농촌 출신의 부모님이 한탄했다는 우스갯소리를 그 예로 들면 지나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의 실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커피숍에 가면 주로 핫쵸코를 즐겨 마시고, 초콜릿 케이크를 매우 좋아하며, 공부할 때 이따금씩 오백원짜리 납작한 초콜릿을 한 조각씩 부러뜨려 먹고,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옷이 입혀져 있는 막대바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초콜릿의 원료가 '카카오'라는 것은 알았지만 카카오 열매가 나무 줄기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고, 카카오도 커피의 원료인 원두처럼 콩의 일종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원료는 카카오 과육을 긁어 낸 씨앗이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학명은 테오브로마 카카오)가 어떤 식물이며 어떤 공정을 통해 초콜릿으로 태어나는지 간단한 소개를 거친 뒤, 이 책은 삽화와 관련 문헌과 사례들의 인용을 곁들이며 카카오를 최초로 이용한 올멕인들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까지 이르는 3천여년의 초콜릿의 역사를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는 몇 가지 사실들이 소개된다. 카카오 씨앗이 고대의 중앙아메리카에서는 화폐로 이용되었다는 사실, 현재의 딱딱한 초콜릿과는 달리 원래의 초콜릿은 '마시는' 음료로써 애용되었다는 사실,〈달콤 씁쓰름한〉초콜릿의 맛에서〈달콤〉한 맛을 뺀〈씁쓰름한〉맛이 카카오 본연의 맛이라는 사실, 고대 마야와 아스텍인들은 '달콤'한 설탕보다는〈매콤〉한 다른 향료들을 곁들여 초콜릿을 애용했다는 사실 등이다.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초콜릿을 먹는다는 것은〈화폐〉를 먹는다는 사실인 것만큼 고급스러운 음식문화인지라, 주로 상류층이 애용했다는 것이다.

마야와 아스텍인들을 거쳐〈신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인들을 통해 초콜릿은 유럽으로 전해지고, 이 무역의 과정에서 노예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는 이후의 역사는 초콜릿의 맛처럼 매우 씁쓰름하다. 초콜릿의 약리적 기전에 대한 논쟁과 상류 계층에서의 유행 등의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초콜릿은 커피·홍차와 함께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고,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와 결부되면서 더이상 특권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계인들이 애용하는 먹거리가 된다.

앞서 썼듯이 우리는 우리가 이용하는 문명의 이기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알지 못하고, 반드시 알 필요도 없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그런 소소한 것까지 신경쓰며 살아가기에 현대인은 너무 바쁘며, 이〈경쟁의 시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주변에 보이는 것대로만 알기를 원치 않고 능동적인 정보를 알고 싶으신 분, 거시사보다는 미시사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 그리고 단연 초콜릿을 매우 사랑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뱀발달기. 죽은 아내의 펜을 이어받아 이 책을 완성한 남편의 감동적인 사연이 읽는 이의 마음 훈훈하게 한다. D.코 부부는 너무나도 성실한 학자의 자세로 자료들을 수집했으며, '초콜릿'이라는 단어의 기원 등의 '신뢰할 만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려고 애쓴 흔적들이 책의 여러 부분들에서 발견된다. 또한,〈마야골드Maya Gold〉라는 초콜릿 제품의 에피소드를 에필로그로 하여 책을 맺으면서 원래의 주인인 마야인ㅡ초콜릿의 역사와 더불어 침입자들에게 학대받은 역사를 겪어온ㅡ들에게 초콜릿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감동적인 맺음도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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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소설을 한 권 독파했다. 브렘 스토커의 《드라큘라》.수없이 영화화되고 소재화되면서 아예 흡혈귀=드라큘라 라는 공식을 성립시킬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해졌고, 오히려 그 캐릭터에 의해 작가인 브렘 스토커는 묻혀버리고 만....그런 소설.

요즘 개인적인 소재들을 다루고 있는 현대소설들만 읽었더니 머리가 굳은 듯 하다. 고전을 읽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되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고전은 고전만의 매력이 있다. 사물, 인물, 배경, 풍습 등등의 상세한 묘사와 주인공들의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긴 사상적인 대화들. 읽는 속도가 더디게 나가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런 점들이 매력을 주기도 한다. 감각적으로 치우친 현대 소설들과는 달리 말이다.

그래서 드라큘라와의 긴박한 혈투를 기대하고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읽고 나서 정말 재미있었다. 흡혈귀와의 싸움과 관련된 서찰, 전보, 신문기사, 일기 등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긴박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듯 하여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의외로 드라큘라 백작은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여인 루시 웬스트라가 드라큘라 백작에게 습격당해서 흡혈귀가 되는 과정이 특히 흥미진진했다. 반 헬싱 박사와 존 수어드 박사, 그의 약혼자 아서 홈우드 등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루시가 흡혈귀가 되는 과정에서는 안타까우면서 거역할 수 없는 악마적 힘이 느껴졌다. 그러므로 그녀의 친구인 윌헬미나 하커가 흡혈귀의 운명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과정이 더욱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고전....많이 읽어야겠다...현대소설에 빠진 지난 1년간 감각만 살고 뇌는 텅 비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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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8-0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어떤 책을 봤거든요?
그런데 루시가 드라큘라 되는 모습이 가장 무섭던데,
그 부분이 흥미진진하다니...휴우~~
담력이 세시군요..;;

IshaGreen 2004-08-0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력이 그다지 센편은 아녜요^^; 브렘 스토커의 묘사력이 뛰어나서 흥미진진했던거죠^^ 겁이 많아서 공포영화도 제대로 못 본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까뮈가 『시지프의 신화』에서 밝히듯이 사람들은 생각하는 습관보다 육체가 추구하는 본능적인 살아가는 습관을 먼저 배워서 익힌다.
롤러코스터의 노래 〈Last  Scene〉의 가사처럼 우리는 '습관이란 건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습관이란 건 내가 왜, 무슨 이유로 그것을 하는지 깊은 성찰없이 마냥 그 행위만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 나의 존재의 근원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성찰하며 살아가기에는 현대 사회의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바쁘고 우리는 그 바쁨 가운데에서 생활의 습관에 젖어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누구나 가끔씩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이든 우연에 의해서이든 하던 일을 멈추고 익숙치 않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때가 있고, 그 때 자신의 존재와 그 가치에 한없는 만족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의 존재의 가치에 대해 참을 수 없게 된다.

20대의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나의 정신은 황야에 내맡겨진 야생 짐승처럼 포효하며 한없이 방황하거나, 혹은 도저히 심연의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구덩이 속에 던져넣은 돌멩이처럼 한없이ㅡ영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ㅡ추락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절망적으로 느끼는 한편, 너무나도 방관적으로 쳐다보며 우습게 느끼기도 했다.

알고 지내던 30대인 언니가 했던 말에(나는 30대가 아니므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젊어지는 게 물론 좋은 거긴 하지만 아무리 진짜로 젊어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그 무서운 방황은 또 한 번 겪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해."
그렇다. 너무나도 끔찍하다, 이 방황은.

 자연스레 이런 상황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뭔가 멋져 보이는 문구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은 마음에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학과 과제를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만났고,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제목조차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진정한 의미에서 읽고 느낀다'기 보다는 '읽었다는 것에 의미를 둔' 독서였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다.  하지만 때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에세이 같은 인상적인 어구들은 '20대의 방황'을 하고 있는 나의 삶의 정곡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다가왔다.

작중인물인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에게 뿐만 아니라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테마는 인간들이 겪는 영원한 고민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ㅡ다만 쿤데라와의 차이점은 우리는 그냥 본능적으로 느끼는데 비해 그는 언어로 형상화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고로 풀어나간다는 점에 있겠지만.
인간은 이 테마에 있어서 누구나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존재의 가벼움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는 존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고픈 그런 욕망을 또한 갈망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두 여인의 대조적인 사랑과 삶이 제시된다.  물론 토마스와 프란츠라는 남성 주인공들도 있지만,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나에게는 그녀들의 상황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테레사의 무거운 사랑은 내 마음에 연민의 정으로서 아프게 다가왔다.  작품의 효용론적 감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테니깐(물론 나도).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토마스는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릇된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존재의 무거움이라는 부담감으로 다가오지만 거부할 수 없는, 테레사에게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자그마한 토끼가 되어 테레사의 품에 안긴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그의 세계 전부를 포기한 셈인 것이다.

 사랑을 하면 이기적이 된다ㅡ맞는 말이다.  상대방을 감싸고 포용하며 언제까지나 한없이 베푸는 그런 것이 사랑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상대방의 언행을 구속하고 자신의 것만으로 그를 잡아두려고 하는 이기적 속성도 분명 사랑의 한 일부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범주에서 정의되느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테레사가 카레닌(강아지)을 사랑하는 것은 조건없이 그냥 그 존재로서의 카레닌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토마스를 사랑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서 그에게 사랑받는 것을 또다시 더 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은 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마음이 지치고 내 존재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여 패배감에 휩싸여 괴로워 견딜 수 없을 때,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고 사랑으로 감싸주면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 다름 아닌 그것이다.  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내게도 과거에 사랑이 있었다. 그와 나는 처음부터 존재의 무거움으로서 만났다. 사랑이라는 것으로 인해 행복하고 의지가 되며 삶이 힘들 때 위안이 되는 것도 있지만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 제목도 있듯이 때로는 존재의 무거움이 나를 쇠사슬로 매듯이 단단하게 옭아맬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의 영혼은 숨막힐 듯한 답답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비나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존재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물론 그녀는 때로는 정말로 그 존재의 가벼움에 '참을 수 없어 하기도' 하지만,  나의 삶은 대체로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쪽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다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엄격했던 우리 집안은 너무나도 구속하는 것이 많았고,  나중에는 타의에 의한 자의의 포기로 인해 너무나도 무거운 삶을 살았다.

그 때문일까, 어렸을 때부터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유난히도 많이 꿨다.  꿈에서 깨어나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나는 여전히 무거운 존재 그대로이다.  내게 이 존재의 무거움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다. 가벼움만으로 산다는 것 역시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의 나는 가벼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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