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 신들의 열매
소피 도브잔스키 코 외 지음, 서성철 옮김 / 지호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왜 하필 여자가 사탕을 받고 남자는 초콜릿을 받아야 하느냐는 불평을 매년 화이트 데이마다ㅡ그렇다고 내가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하는〈-데이〉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ㅡ빼먹지 않고 늘어놓는 나는 초콜릿 광이다. 당연히, 이 책의 제목을 서점에서 보는 순간 나는 선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당장에 빼서 사버려, 진작 필요했던 책은 구입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한 마디로 이 책은 어디에 살건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라는 책 뒷 표지에 씌어 있던 말 그대로였던 셈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식품 등이 우리가 용이하게 접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어떠한 처절한 과정들이 있었는지 잘 모르고 그것들의 이로움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식탁에서 단연 구심점인 음식이라고 할 만한 밥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 민족은 몇 백, 혹은 몇 천 년 동안 밥을 먹어왔고 지금도 밥을 먹지 않으면〈한 끼〉식사를 했다고 말하기 껄끄러울 정도로 밥은 중요한 음식이지만, 도시의 한 어린이가「쌀은 쌀나무에서 자라는 것 아닌가요?」라고 부모님에게 물어 농촌 출신의 부모님이 한탄했다는 우스갯소리를 그 예로 들면 지나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의 실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커피숍에 가면 주로 핫쵸코를 즐겨 마시고, 초콜릿 케이크를 매우 좋아하며, 공부할 때 이따금씩 오백원짜리 납작한 초콜릿을 한 조각씩 부러뜨려 먹고,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옷이 입혀져 있는 막대바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초콜릿의 원료가 '카카오'라는 것은 알았지만 카카오 열매가 나무 줄기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고, 카카오도 커피의 원료인 원두처럼 콩의 일종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원료는 카카오 과육을 긁어 낸 씨앗이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학명은 테오브로마 카카오)가 어떤 식물이며 어떤 공정을 통해 초콜릿으로 태어나는지 간단한 소개를 거친 뒤, 이 책은 삽화와 관련 문헌과 사례들의 인용을 곁들이며 카카오를 최초로 이용한 올멕인들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까지 이르는 3천여년의 초콜릿의 역사를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는 몇 가지 사실들이 소개된다. 카카오 씨앗이 고대의 중앙아메리카에서는 화폐로 이용되었다는 사실, 현재의 딱딱한 초콜릿과는 달리 원래의 초콜릿은 '마시는' 음료로써 애용되었다는 사실,〈달콤 씁쓰름한〉초콜릿의 맛에서〈달콤〉한 맛을 뺀〈씁쓰름한〉맛이 카카오 본연의 맛이라는 사실, 고대 마야와 아스텍인들은 '달콤'한 설탕보다는〈매콤〉한 다른 향료들을 곁들여 초콜릿을 애용했다는 사실 등이다.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초콜릿을 먹는다는 것은〈화폐〉를 먹는다는 사실인 것만큼 고급스러운 음식문화인지라, 주로 상류층이 애용했다는 것이다.

마야와 아스텍인들을 거쳐〈신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인들을 통해 초콜릿은 유럽으로 전해지고, 이 무역의 과정에서 노예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는 이후의 역사는 초콜릿의 맛처럼 매우 씁쓰름하다. 초콜릿의 약리적 기전에 대한 논쟁과 상류 계층에서의 유행 등의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초콜릿은 커피·홍차와 함께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고,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와 결부되면서 더이상 특권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계인들이 애용하는 먹거리가 된다.

앞서 썼듯이 우리는 우리가 이용하는 문명의 이기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알지 못하고, 반드시 알 필요도 없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그런 소소한 것까지 신경쓰며 살아가기에 현대인은 너무 바쁘며, 이〈경쟁의 시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주변에 보이는 것대로만 알기를 원치 않고 능동적인 정보를 알고 싶으신 분, 거시사보다는 미시사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 그리고 단연 초콜릿을 매우 사랑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뱀발달기. 죽은 아내의 펜을 이어받아 이 책을 완성한 남편의 감동적인 사연이 읽는 이의 마음 훈훈하게 한다. D.코 부부는 너무나도 성실한 학자의 자세로 자료들을 수집했으며, '초콜릿'이라는 단어의 기원 등의 '신뢰할 만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려고 애쓴 흔적들이 책의 여러 부분들에서 발견된다. 또한,〈마야골드Maya Gold〉라는 초콜릿 제품의 에피소드를 에필로그로 하여 책을 맺으면서 원래의 주인인 마야인ㅡ초콜릿의 역사와 더불어 침입자들에게 학대받은 역사를 겪어온ㅡ들에게 초콜릿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감동적인 맺음도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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