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


리뷰나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화면에 국어사전을 함께 띄우는 건 오랜 습관이다. 다른 나라 언어를 공부할 때 사전을 필요로 하는 것과는 다르게 나만의 선택적 차용이다. 전자사전과 스마트폰이 사전기능을 탑재해도 내가 사용하기에 가장 빠르고 편리한 건 역시 노트북 켜서 들어가는 한 포털 사이트의 것. 적어도 맞춤법에서만은 꼬리잡히지 말자는 말단 문청의 호기로운 다짐에서 시작됐지만 나중에는 검색 한번 없이 리뷰 한 편을 쓰면서도 없으면 불안하다. 내가 늘 서울 사람 앞에서 '억양 빼고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박박 우기지만 사실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 파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사흘을 함께 보내며 베르사유 궁전의 삽질 추억을 쌓은 다섯 살 위 어떤 언니의 촌철살인적 표현에 의하면 '바로 그 억양'이 문제라는 것도 안다. 몰라서 우겼던 건 아니다. 


"김태희, 최지우, 손예진, 문채원, 고아라도 경상도 출신인데 서울말 저렇게 잘 해, 나도 할 수 있어. 문근영, 수지, 박신혜는 전라도 출신인데도 잘하잖아, 물론 나도 맘만 먹으면 할 수 있지." 하지만 결혼해서야 비로소 서울에 간 시골출신의 부산소녀 막내이모의 억양은 사촌동생이 제대를 했어도 여전히 밀양과 부산 특유의 사투리와 서울 억양이 뒤섞인 어디쯤이다. 중학교 때 전학 온 익산 출신 베프도 여전히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 어디쯤에서나 가능할 법한 화개장터어를 쓴다. 제법 오래 살았다. 서울 억양 하나쯤 자연스럽게 구사하지 못해도 나는 나를 인정해야 한다. 촌년이어도 어쩔 수 없지. 사투리는 현빈(친구, 우리들의 전설)도 김우빈(친구2)도 완벽하게 못하는 거니까 자부심을 느낀다. 경상도 도처에 친척이 널린 나도 부산, 울산, 밀양, 창원, 대구 억양의 깨알같은 차이를 구별한다(우왕, 몇 개 언어냐). 앞으로의 인생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됐다. 부산 사투리는 내가 현빈보다 잘하는 걸로 정리 끝(이걸 자랑이라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사투리와 살짝 억센 억양이 창피하다고는 여긴 적은 없다. 열아홉의 내가 우연히 원서를 넣어 합격한 서울의 한 대학교 공대에 진학했다면 과감히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투리 퇴치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간간이 남긴 했어도. 시시때때 다른 말을 쓰는 이들 앞에 섰을 때의 아찔해지는 이방인의 지위를 무겁게 인지하는 편이다. 그들 역시 내 언어영역에 들어올 때 그러하듯이. 입에 배고 몸에 깃든 평생의 습관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적어도 티나지 않게만 하자는 게 목표고, 그런데도 표현력이 이 모양이니, 라고 비난하면 쏘아줄 말이 없다는 슬프고도 잔혹한 사실은 일단 접어둔다. 자책은 남몰래 하겠다. 퍼뜩 생각나는 표현이 표준어인지 방언인지를 검열하고, 같은 뜻으로 쓰인 비슷한 표현을 찾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멀리 못간다.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미묘하게 흩트렸고, 나는 나를 고민한다. 그리고 내 글도. 이윤기 선생님의 글(창작물 비롯한 번역물)을 많이 읽지 않았다. 유명한 그리스 신화 초반 몇 권과 <장미의 이름>을 포함한 에코의 몇 작품 그리고 소설 몇 편이 다인데, 작년 재발간된 <하늘의 문>을 읽다가 그제서야 그의 별세가 조금은 진심으로 아쉬워졌다. 


요즘 이런저런 생각으로 흔들리는 내게는 글 잘 쓰는 법이 절실하다. '잘'의 의미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내 안에 있는 어떤 의문들을 밖으로 밀어낸 결과라는 것만 제외하면 '잘'은 일반적인 의미의 '잘'과도 상통한다. 종종 현재형과 과거형, 인칭과 시점이 마구잡이로 변하는 희한한(자유로운) 리뷰가 마음에 걸렸다. 만약 완벽한 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다면 거기 도달하고자 하는 내 의지는 그다지 나쁜 게 아니잖아. 실은 없거나 모른다는 게 함정일 뿐. 이론, 글감, 경험 등을 골자로 하는 글쓰기 방법론이 쏟아져 나오지만 대다수는 장바구니에서 선택을 기다리는 처지다. 쉬어가기 삼아 펼친 이 책도 사실 처음에는 글쓰기 방법론인 줄 알았다. 왜 이제야(별세 후에) 나온 거지. 의아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작가이자 번역가로서의 이윤기라는 브랜드 파편을 '글쓰기(문학으로서, 언어로서, 번역으로서, 창작으로서, 직업으로서)'라는 주제로 재구성한 책이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적 단상과 사유를 모았다. 글쟁이의 고뇌와 기쁨, 자유를 엿볼 수 있으며, 체험과 생각에 바탕한 진솔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다. 


"... '나비가 바다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그 수심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는 제 몸무게를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하늘을 더 잘 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디를 향하고 어떻게 올라가고 있는지 모를 때 어쩌면 가장 높이 올라갈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남북은, 사랑에 빠지는 줄도 모르는 채 사랑에 빠질 수는 없는 것인가? 그렇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에 빠지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에 빠지게 하는 일, 나는 예술이 이것을 성취시키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솔깃한데.


"아이고, 살았구나."

그로부터 한 주일 뒤, 세계 도서 축제가 열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은 시인을 만났다. 

마음고생 많이 하셨지요?

이런 의례적인 인사 끝에, 발표 당일 내가 했던 마음고생과, 발표를 듣는 순간 내가 보였던, 이기적인 반응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긴장했다. 그가 이런 말로 나를 야단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내가 수상에 실패했는데, 모국어 문학에, 모국어에 돌아올 수도 있는 영광이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데도 자네가 보인 반응이, 뭐? 아이고 살았구나? 신문 원고 쓰는 부담에서 놓여났다고, 뭐? 아이고 살았구나? 자네가 그러고도 한국의 작가야? 한국인이야?"

그러나 아니었다. 고은 시인은 나의 고백을 듣고는 한동안 탁자를 치면서 박장대소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안 섭섭해. 이 사람아, 그게 인간이야. 우리는 그런 인간에 대해서 써야 해!"


언제부턴가 내가 말을 영어순으로 한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 이어가야 하는데 나는 거꾸로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사귄대. (쉬고)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 갔다가 머리에서 발 끝까지 커플룩 입고 공항 출국 게이트에서 손 꼭 잡고 나오는데 옛날에 본 만화 <풀하우스>의 한 장면 같았어. (쉬고) 물론 만화에서는 남자만 연예인인데 현실에서는 둘 다 톱스타라는 게 다르지만. (쉬고) 그럼 상대가 반드시 묻게 되어있다. 누가? 내가 대답한다. A랑 B가. 잘못됐다. 우리 말에는 우리 순서가 있고, 미국 말에는 미국 순서가 있다. 국문법을 파괴했고, 무의식적으로 호기심을 끌어 내 말에 관심 갖도록 꼼수를 부렸고, 일상 대화를 이런 식으로 도배하면서 내가 정보를 가졌다고 인식시켰다. 일상생활 아닌 곳에서 이렇게 쓰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 나는 고치려는 의지없이 계속 이러고 있다. [상속자들]에서 탄(이민호)이가 은상(박신혜)이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드러내던 극장씬에서의 대사, "나 너 좋아하냐?"를 방송 보면서 못 알아들었다. 어젯밤 옆동네 사이트에서 기획이벤트 광고글로 "나, 이 책 읽고싶냐?"라는 문구를 띄웠더라. 처음에 그렇게 귀를 의심하다가 다음 날 기사를 읽고 다시보기를 하면서 제대로 들었다. "나 너 좋아하냐?" 아, 이건 뭐지. 이게 무슨 문법파괴, 인칭파괴, 대화파괴야. 색다르고 좋네. 


글쓰기 관련 에피소드 모음집을 읽으며 발전을 꿈꾼다는 건 꿈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애초 고민해본 적도 없는데 마치 엄청난 스타일을 고수해온 것처럼 심각한 척하는 것조차 우습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비문을 만들지 않고 인칭, 시점, 배경을 통일시키려 노력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내가 뱉어놓은 글은 늘 주관적으로만 개성적이어서 불안하게 비틀거린다. 굉장한 확신이 있는 것처럼 속이지만 사실 보편과 억지의 어디쯤에서 주저앉는다. 고민하지 않는 시간은 막상 기회를 만났을 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쓴 글이 어떻게 보일까보다는 내가 더 예쁘고 매력있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에서 좀체 놓여나질 못한다. 우선, 이론을 쏟아내는 착실한 글쓰기 책보다는 내가 무엇을 쓸 것인지를 찾아줄 듯한 <글쓰기 좋은 질문 642>를 살까 말까. 그냥 나만의 질문 642를 만들까. 고민을 오래한다고 더 좋은 선택지나 정답이 있을 리는 없다. 주어진 상황과 낼 수 있는 용기의 게이지를 조절할 의지가 없다면. 밀린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찍을 쉼표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3-11-2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윤기님의 책은 뭘 읽어도 실망시키지 않으니까.
이 분은 좀 더 오래 사셨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아이님 제목 읽고 깜짝 놀랐어요. 뭐 당분간 글을 안 쓰시겠다는 뜻인가 해서...ㅎㅎ

아이리시스 2013-12-01 08:28   좋아요 0 | URL
아깝지 않은 죽음은 없으니까요. 육십대에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50대 중반이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요. 조부모님들이 양가 모두 85세 이상 건강하신 편이어서 (이제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안계시지만) 유전적으로는 장수할것 같고, 사고만 없었으면 싶어요. 요즘은 특히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사고를 달고 다니는 사람은 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것 같아서. 연세가 그러니 여기저기 병원 아니면 약을 달고 사시고. 근데 저희 부모님은 그렇지는 않거든요. 스트레스를 안받아야 하는데 저희 가족은 스스로 고민을 달고사는 편이어서 걱정은 걱정이에요. 내일은 어떻게 되든 오늘은 웃자, 이건 절대 될 수가 없거든요. 오늘 일은 오늘 끝장을 봐야 하고 뭐 그렇게 성격이 급한 편.. 건강에는 안좋을 것 같아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읽어보자 한지 좀 됐는데 실천을 안하네요, 제가.
애티커스님 자주 좀 오세요. 주말에 뭐하세요? (이런 사생활 침해--)

가연 2013-12-0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좋은 리뷰네요ㅎㅎㅎ 다만 여담이지만 사투리 퇴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

아이리시스 2013-12-02 00:56   좋아요 0 | URL
제가 쓴 글은 항상 좋죠, 제게는ㅎㅎ 이제 가연님에게도 좋은 건가요? 사투리는 '억양'은 아닌걸로.. 올해도 서울에 몇 번 갔었는데 저도 그사람들 말투 들으면 이상하니까(닭살이니까) 그게그거인것 같아요. 가서 살게 되면 또 거기에 맞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예전에 제가 좋아한 사람도 전주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서울말을 엄청 잘했거든요. 그런데 따라하고 싶어도 제가 쓰는 서울억양에 제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 어쩔 ㅋㅋ

2013-12-04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4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